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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란 말이 유행했다. 하지만 이젠 '확' 달라졌다. 우리 것, 한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인으로, 그 대상이 크게 넓어진 것이다. 미국, 일본에서 '한국식 때밀이' 열풍이 부는가 하면 폭탄주, 노래방 등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유통·패션 분야에서도 한국식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코리안 스타일'이 세계에서도 통하는 모습을 찾아본다.
1. 때밀이 서비스
2주 전 미국 뉴저지를 방문한 대구 봉무신도시 개발사 이시아폴리스의 박형도(50) 대표는 한국식 사우나가 미국인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적잖게 놀랐다. 그는 1년 전 뉴저지에 오픈한 이른바 한국식 찜질방에 미국인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는 얘기를 현지인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찜질을 하고 때를 밀 수 있다는 미국의 한국식 사우나에 직접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며 "한국적인 것이 세계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는 게 박 대표의 귀띔이다.
실제 지난해 말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한국 사우나의 유혹(The Lure of Korean Sauna)'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목욕 문화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한국식 찜질방을 '웰빙 문화'라고 언급하고, 특히 한국식 때밀이(Korean body scrub)를 받고 나면 피부가 매우 부드러워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다른 한 주간지도 한국의 때밀이 서비스를 받고 나면 각질이 제거돼 피부가 보들보들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당초 한인 동포들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한국식 찜질방이 미국인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끄는 데 대해 현지에서도 매우 놀랍다는 반응이다. 또 찜질방 광석에서 나오는 복사열이 피부 미용에 좋을 뿐 아니라 치료 효능이 있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멀리 캐나다에서도 손님이 찾아오고 있다.
국적을 불문하고 한국식 목욕 문화의 매력에 빠져들기는 일본, 중국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도쿄에서는 한국식 때밀이 서비스가 일본인들에게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코리언 스크럽을 도쿄에서 꼭 해볼 만한 경험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한국식 때밀이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 대구시 달성군에 있는 스파밸리 경우 1주일에 중국인 관광객 10여 명이 때밀이 서비스를 받고 있다. 1시간 30분에 걸쳐 마사지를 받고 때를 미는 데 5만 원으로, 중국인들에게 적잖은 비용이지만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박진석(35) 대리는 "때밀이 서비스를 받고 난 중국인들은 '재미있다.' '깨끗해지는 느낌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때가 나오는 것을 직접 보고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얘기했다.
2. 한국식 손님접대
얼마 전 한국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티모시 맥해일 미 19지원사령부 사령관(소장). 그는 미국 이름 맥해일이 아닌 한국식 이름 '김성구(金星邱)'가 적힌 명예시민증을 대구시로부터 받았다. 맥해일 사령관은 시민증에 김성구란 이름을 써달라고 직접 요청했고, 재직 중 전국 어느 곳에 갈 때마다 김성구란 이름을 자랑하고 다녔다.
이 미국 장군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준 주인공은 당시 김석기 대구경찰청장. 김 씨로 한 것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이라서, 성 자는 '앞으로 별을 더 달라.'는 의미, 구 자는 대구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았다. 이 이름 때문에 대구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맥해일 사령관은 지인들에게 수차례 털어놓기도 했다.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대구에 유치한 데에도 한국식 손님 대접이 큰 공헌을 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실사단이 대구를 방문했을 때 보여준 수천여 시민들의 호응과 열기가 유치에 원동력이 됐다.
헬무트 디겔 실사단장은 "대구 시민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고 무슨 일이 있는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며 "호텔과 실사장, 이동하는 거리에서도 시민들의 환대가 계속되는 것을 보고 대구의 유치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걸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나왈 국제육상경기연맹 집행이사는 23년 전 LA 올림픽에서 자신이 뛰는 모습을 낯선 이국 땅인 대구에서 지켜보고 '감동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두 달여 전 대구를 방문한 미국 투자자들을 약전골목으로 안내한 박형도 이시아폴리스 대표도 진심이 담긴 작은 선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털어놨다.
"약전골목을 '허브 메디슨 스트리트'라고 소개하며 자세하게 안내를 했더니 미국 사람들이 "한국의 전통 의약에 관심이 많았다."며 흥미를 보이더군요. 이어 인근 다기판매점에서 차문화를 직접 체험하게 한 후 비싸지 않은 다기세트를 선물했더니 매우 좋아했습니다. 우리 문화 체험을 통해 외국인들이 대한민국과 대구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된 셈이지요."
박 대표는 "불고기를 대접했던 한 캐나다 컨설턴트는 '너무 맛이 좋아 공항 면세점에서 불고기 양념을 사 캐나다에 가 가족들과 직접 불고기 요리를 해먹었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며 "우리에겐 평범한 것도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이국적이고 감동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3. 폭탄주·노래방
비판을 많이 받지만 폭탄주가 가진 '매력'에 주목하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한국에 와 근무하는 다국적 기업의 최고경영자들 가운데에는 폭탄주를 돌리는 한국식 회식문화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현장을 점검한 후 직원들과 폭탄주를 돌리면서 직원 간 화합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를 돌리고 마이크를 잡다 보면 어느새 '너와 나'가 아닌 '우리'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는 게 ‘폭탄주 애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폭탄주는 한·미 FTA 협상에도 등장했다. 우리 측 한 고위 관계자는 핵심 요구사항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미국을 설득하느라 양국 협상단 전원을 데리고 가 한국식 폭탄주를 돌렸다. 폭탄주를 주고 받으며 친해지자 정말 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되더라는 게 폭탄주 대화를 주도한 고위 관계자의 후일담.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를 맡고 있는 투수 제이미 브라운은 노래방에서 ‘비상의 실마리’를 잡았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성적 부진으로 퇴출이 거론될 정도로 위기에 처한 브라운은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한 성격에 더욱 위축됐다. 그 무렵 통역이 브라운을 노래방으로 데려갔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본 적이 없는 브라운은 망설이다 "겨우 십여 명이 모인 곳에서 노래도 못한다면 어떻게 수많은 관중 앞에서 야구를 할 수 있겠니?"라는 말을 듣고 무대로 나가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를 불렀다. 그날 모두 6곡을 노래했다. 노래방에서 자신감을 찾은 브라운은 이후 10승을 넘어서면서 믿음을 주는 투수로 변했다.
할인점 성공신화의 주역으로 꼽히는 신세계 이마트. 월마트 등 외국계 할인점들이 물건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창고형 할인점을 표방한 데 반해 이마트는 백화점처럼 물건을 진열·판매하는 한국식 영업 형태로 성공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로부터 "세계 유통의 장단점을 한국식으로 선보인 하이브리드 경영의 성공모델"로 평가받는 이마트는 우리나라에 진출한 월마트 점포를 인수한 데 이어 중국에까지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또 우리나라 치킨 업체들은 프라이드 치킨의 본고장인 미국에 진출, 미국인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파리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에서는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한글 디자인 옷이 외국인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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