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렇게 조선인이 되었다” |
김경욱씨, 벨테브레(박연)의 삶 그린 ‘천년의 왕국’ 펴내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
“세상에서 제일 낯선 이방인은 자기 자신이다.” 소설가 김경욱(36)씨가 조선 인조 때(1627년) 제주도 부근에서 배가 난파돼 조선에서 삶을 마친 네덜란드인 박연(朴淵·본명 얀 야네스스 벨테브레)의 삶을 재구성한 장편역사소설 ‘천년의 왕국’(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최근 역사소설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이 소설은 이방인의 눈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천년의 왕국’이란 이방인의 눈에 비친 조선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박연을 찾아보면 “인조 26년(1648) 8월25일 정시(庭試)를 설행하여 문과에 이정기(李廷夔) 등 9인을, 무과에 박연(朴淵) 등 94인을 뽑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의 박연이 벨테브레다. 그는 최초의 귀화인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에 대한 확실한 외부의 기록은 1653년 조선에 표착(漂着)했다가 13년 만에 탈출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의 ‘하멜표류기’에 들어있는 몇 줄 속에 있다. 살아남은 36명의 하멜 일행을 맞은 조선 국왕의 사자가 바로 그보다 26년 전 조선 땅에 닿았던 박연이었다. 작가는 “벨테브레는 인조의 군사고문관으로 활약했고, 조선 여자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으며, 인조가 54세의 그를 무과에 급제시킬 정도로 아꼈던, 조선인으로 이 땅에 뼈를 묻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국적과 국경이 무의미해지는 이 시대에 비춰, 그는 380년 전 세계시민으로 살았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몇 줄 남지 않은 기록 이외의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19일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벨테브레가 조선에 도착한 이후 10년간의 삶을 재구성해본 것”이라며 “이방인이었던 박연이 진정한 조선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었을 법한 내적 고뇌를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박연의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다. 그들이 보고 겪은 이교도의 땅 조선은 우리의 시선과는 한참 달랐을 것이다. 만삭의 아내를 고향에 두고 낯선 땅에서 살게 된 벨테브레와, 같이 살아남은 두 일행-어린 선원 데니슨과 요리사 에보켄-이 겪었을 절망과 운명에 대한 비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 이들은 몇 차례 탈출을 시도하고 그로 인해 데니슨은 죽임을 당했다. 작가는 “박연은 아마 오랫동안 신이 왜 내게 이런 장난 같은 운명을 주었을까를 고민했을 것이지만 결국 그 불가해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조선에서의 삶을 사랑하게 됐던 것 같다”면서 “그러지 않았으면 하멜 일행이 조선을 떠날 수 있었을 때 함께 가지 않았겠는가”라고 얘기한다. 역사소설에는 의고체의 단문형식 문장이 적절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남한산성’의 김훈의 문체와 비슷한 느낌도 있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영향을 받았다”고 부인하지 않으면서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의 영향을 받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1993년 ‘작가세계’에 중편 ‘아웃사이더’로 등단한 뒤 등장인물이 전부 외국인인,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패러디한 역사 추리소설 ‘황금사과’ 등 여러 문제작을 발표해왔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ISD(협동과정) 서사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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