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성(sex)
1. 신성한 제단
성(性), 이것은 남녀 간의 제일 자연스러운 관계다.
소위 ‘제일 자연스런 관계’란 바로 제일 천연적이고, 제일 당연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천성적으로 제일 잘 맞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관계다. 그러나 이 제일 자연스런 관계가 언제부터인가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는 고상한 자리에 오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 통속적인 말이나 속어, 민요, 가요, 수수께끼, 속담 등 형식을 통해 비유법이나 은유법으로 표현된다. 중국의 정규적인 교육과정에는 아직 성교육이 없다. 성이란 본능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특별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어서 선생이 없이도 스스로 통달하는 것 같다. 성에 관한 지식은 주요하게는 결혼 전에 어머니를 통하여 구체적이지는 못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수습을 받는다. 오랜 기간에 걸쳐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해 온 것은 비정상적인 심리를 조성 하였다. 때문에 성에 대한 말을 주고받을 때는 바로 신비스럽게 변하거나 혹은 긴장해 진다. 자연스런 표정도 금방 부자연스럽게 변해버린다.
사실, 상고시대의 성은 신비롭지도 않았고, 가리지도 않았으며, 무서운 것도 아니었고, 저질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밥 먹고, 잠자고 배설하는 등과 같은 자연적인 생리행위였다.
후에 이런 성은 변화를 일으켰는데 신비롭게 변한 게 아니라 신성하게 변했다. 신석기시대 초기에 접어들면서 성은 특별히 주목받는 대상이 되었다. 즉, 생식기나 성행위가 신성한 제단에 오를 정도로 변해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성숭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숭배의 목적은 성이 아니고 생육이었다. 때문에 그의 정확한 명칭은 ‘성숭배’가 아니라 ‘생식숭배’이다.
생식숭배는 원시시대에 있어서는 장엄하고 신성하며 지극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의 궁극적 목적은 종족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것인데 그렇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사망의 위협이었다. 원시인의 수명은 매우 짧았으며 사망률도 아주 높았다. 연구에 의하면 네안데트랄(Neandete Ren)인의 평균수명은 20세도 안된다고 한다. 산정동인의 성인은 30세를 초과한 사람이 없는데 사망률은 50%에 달했다. 자연재해, 불의의 사고, 야수의 상해, 적의 공격 등은 수시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약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을 때이므로 유행성 급성전염병이 만연하고 전쟁은 전 부락에 치명적인 재난을 가져왔다. 사실상 50%라는 사망률은 우리에게 번식률 또한 절반밖에 안되며, 멸족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겠는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사망에 저항할 수 없고, 50%란 멸족의 위협 앞에서 우리조상들은 아주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것은 죽음에 항거하는 것은 생명을 창조하는 것만 못하고, 죽음을 구걸하는 것은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생식은 종족의 생사와 관계되는 제일 큰 일로 간주됐다. 그러나 원시 선인들은 생식의 원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생식에 대한 신비가 생겼으며 생식은 여전히 신비의 역량이라고 여겼다. 이 신비의 힘을 얻기만 한다면 새로운 생명체가 끊임없이 창조될 것이므로 종족은 그로 인해 보전되고 연속된다고 여겼다.
생식 숭배는 이렇게 해서 나타나게 되었다.
생식숭배의 시작은 여성숭배로부터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면 여성보다 여성의 생식기를 더 숭배했다. 그것은 모든 애기는 여인이 낳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인과 여성생식기는 그 당시 신비로운 생식역량의 원천이거나 신비한 생식력이 임시로 사는 곳으로 보여 졌다. 그래서 여성 생식기를 각종 형상과 모형으로 제작하여 숭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후에는 남성 생식기로까지 확대 되었다. 여성생식기의 우상은 모두 긴장과 이완상태로 만들어 졌고, 남자 생식기의 우상은 발기상태로 만들어 졌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신통력을 발휘’하는 상태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인체를 이탈하여 형상화 했을 때도 사람들이 그것을 의의 깊게 생각하고 특별히 숭배하게 될 수 있다.
여성생식기를 숭배하는 것은 결국은 사람 자신에 대한 숭배이다. 이런 숭배의 유효성은 에누리가 많다. 신비의 생식력은 응당히 자연 속에 있어야하고 자연을 표현해야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눈은 생식력이 특별히 강한 자연으로 돌아갔는데 그것이 바로 물고기이다. 물고기는 여자 음부의 상징이다.
물고기가 어떻게 여자의 음부를 상징할까?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외형으로 볼 때 물고기 두 마리가 접힌 모양은 여성의 외음부와 매우 흡사하다. 물고기 배에는 알이 많고 생식력이 매우 강하다. 그들의 몸은 꼭 신비스런 생식력이 기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한다. 때문에 자손이 많은 물고기는 선인들의 선망이 되어 존경받고 숭배하는 대상이 되었다. 원시 선인들은 이런 숭배를 통해 물고기의 왕성한 생식력이 자기들 몸에 전이될 것을 갈망하거나 혹은 자기의 이런 능력이 증강되기를 바랐다.
앙소문화(仰韶文化)의 물고기 제품과 물고기 문양은 바로 이런 숭배의 형상이다. 인더스강문명 채색도자기 위의 비목어(比目鱼), 인도 사시(史詩) 중의 천녀변어(天女變魚), 또 유럽의 인어신화도 어쩌면 모두 이런 숭배가 알게 모르게 표현된 유물일 수도 있다. 물고기를 숭배하기 때문에 물고기는 씨족의 조상으로 여겨졌다. 하족(夏族)의 조상 전욱(顓頊)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불고기인 어부 이다. 다시 말하면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인어다. 전욱(顓頊)의 아들이고 우왕(禹王)의 아버지인 곤(鯀)은 ‘백면인어(백면人魚)’이다.
문명시대에 들어선 오늘까지 물고기에 대한 숭배는 계속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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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귀부인들이 타던 수레차를 ‘어혼(魚혼)’이라고 부르고, 사랑을 전달하는 서신을 ‘어서(魚書)’라고 부르며, 자손을 가져다주는 관음 손에 든 것은 ‘어람(魚籃)’이라고 부른다. 정월 15일에 걸어 놓는 채등을 ‘어등(魚燈)’이라고 하고, 섬서 농촌에서는 결혼할 때 잔칫상에 나무로 된 쌍어(雙魚)를 차린다. ‘년년유어(年年裕魚)’의 세화는 거의 전국각지에 붙어 있다. 그 외 물고기는 또 여성이나 사랑을 상징하는데 예를 들면 당나라 때 여시인 이치(李治)는 시에서 “편지 그림은 잔설같이 한 쌍의 잉어로 결합되고, 마음속 일 알려면 몸 안에 있는 편지를 꺼내보라”고 했고, 원진은 시에서" 重叠鱼中素,幽缄手自开, 斜红余泪渍,知著脸边来"라는데 모두 그렇다.
물고기는 외음부를 상징하지만 개구리는 자궁을 상징한다.
개구리도 중국 원시시대 여성생식 숭배의 상징물 중의 하나이다. 외적으로 볼 때 개구리의 배는 임신부의 배처럼 둥글고 크다. 개구리도 번식력이 매우 강해 하루 밤 사이에 올챙이가 떼를 이룬다. 때문에 개구리도 신비한 생식력의 상징으로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때문에 신화 속에 나타난 우리민족의 어머니는 "와녀(蛙女)"로 상상 됐으며 이것이 바로 여와(女娲)이다. 와(娲)는 사실 와(蛙)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조상으로서 신성하기 때문에 蛙로 쓰지 않고 娲로 썼다. 娲자는 여자라는 이외 더 이상 다른 의미가 없다. 이것으로 볼 때 娲는 ‘성와(聖蛙)’ 혹은 ‘모신(母神)’을 위해 특별히 창조해낸 것이다. <說文>에서 ‘娲’는 옛적에 ‘성녀’이고 ‘조물주’였다."라고 한다. 왕일(王逸)의 <초사주(楚辭注)>에서도 ‘娲’는 "하루에 70개로 변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화(化)는 모두 생육이나 낳아 기른다는 의미다.
사실, “여와가 사람을 만든다.”와 “하늘을 막는다.”란 이야기는 개구리의 형상에서 변화 발전한 것이다. 강재(姜寨)에서 출토한 채색도자기에는 개구리 도안이 하나 있는데, 개구리 몸이 둥글고 위에 점으로 가득하다. 이런 점들의 본의는 개구리 배에 자식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이 점은 후에 신화에서 하늘을 깁는 오색 돌이 되었다. 우리의 선민들은 땅에 앉아서 하늘을 관찰하며 천공이 개구리 배처럼 둥글다는 것을 상상했고 그 많은 별들이 바로 개구리 배속에 있는 자손 이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다리는 천공을 받치는 4개의 기둥이라고 상상했다.
선인들의 상상력은 매우 풍부하다. 그들은 천공을 개구리 배로 상상했을 뿐만 아니라 달 까지도 개구리로 상상했다. 달이 커지고 작아짐은 마침 개구의 임신한 배처럼 규칙적으로 팽창하고 수축되고 성인 여자의 경혈도 한 달에 한 번씩 달과 같이 동그랗게 보이기에 "월경"이라고 했다. 월은 매월 한 번이란 뜻이고 경은 경상적인 상규라는 뜻이다. 월경이 매월 규칙적으로 한 번씩 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달과 여성의 생식 특징이 서로 신비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하였다.
사람들은 또 달은 하나의 규칙적으로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개구리거나 혹은 달 안에 이런 신비로운 개구리가 있다고 상상했다. 이 신비스런 개구리의 이름을 ‘섬여(蟾蜍)’라고 한다. 이 섬여(蟾蜍)가 ‘상아(嫦娥)’로 변했는데 이것이 아름다운 여신이다. 달 속에 이런 여신이 있기 때문에 혼인을 주관하는 신은 신화에서 ‘월하노인(月下老人)’ 또는 ‘월로(月老)’라고 부른다. 중매인을 ‘월로’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그가 전설 가운데 나타난 것처럼 달을 마주하고 앉아 혼인에 관한 문서를 뒤지며 검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또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 아래 정원에서 연애하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다. 달도 원래는 생식숭배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상아(嫦娥)나 여와나 그 원형을 따지면 모두 개구리다. 바로 모친이 "개구리"이기 때문에 여자를 "와(娃)"로 부른다. 娃는 여와가 낳은 작은 개구리이고 "교와(嬌娃)로 부른다. 그러나 교와(嬌娃)는 때로 귀여운 여자애를 비유할 때도 있다. 애기가 탄생하면 “와~와~”하고 우는데 꼭 개구리 소리 같다. 때문에 달빛아래 연못에서 그 와~와~ 우는 개구리 소리는 생명의 교향곡으로 변했다.
‘개구리 신’과 ‘모친 신’인 여와는 기나긴 신화의 변천 과정에서 배후자를 맞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복희(伏羲)이다. 복희는 뱀이다. 한나라 때 돌을 깎아 만든 석화에 여와와 복희는 두 꼬리를 같이 감고 있는 뱀으로 그려졌다. 서로 감은 꼬리의 형식은 성과 생육을 암시한다. 그러나 여와를 뱀으로 그리긴 했지만 그렇게 정확하지는 않다. 사실 복희만 뱀인 것이다. 여와는 개구리여야 한다. 그것은 뱀은 남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뱀은 평시에 부드럽고 무기력 하지만 진공이 필요할 때는 딱딱하게 발기하여 아주 굳세고 힘이 있는데 마치 음경과 같다. 그는 수풀 속에 숨어 평시에는 보이지 않고 가끔 얼굴을 내미는데 이것을 남자의 성기에 비교하면 그 이상 적합한 것이 없다. 때문에 중국의 복희는 뱀이고 인도의 韦须奴, 유럽의 아폴로도 뱀이다. 마찬가지로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인해 원죄를 짓게 유인한 것도 뱀이다. 이런 신화 속에서 우리는 약간의 실마리를 찾아 낼 수 있다.
뱀 이외 새도 남성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알이 있다는 것이다. 선민들은 새 새끼들이 알에서 나오는 것과 영아가 태반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인류의 신생명도 대개 남자의 알이 여자의 배속으로 들어간 결과라고 연상했다. 그래서 또 알을 많이 낳는 새를 숭배 대상으로 여겼다. 때문에 후에 속담에는 남근은 조(鳥)라든가 계(鷄)로 불렀다. 바로 영국의 속어에서 말하는 cock과 같다.
후에 개구리는 달에 갔고 새는 태양으로 날아들어 일종의 신조(神鳥)인 금오(金烏)가 되었다. 금오는 태양 속의 삼족오이다. 왜 삼족오일까? 그것은 바로 두 다리에 남근 하나를 끼운 탓이다. 달에는 섬여(蟾蜍)가 있고 태양 속에는 금오(金烏)가 있다. 여와와 복희가 손에 받들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새와 뱀, 이런 상징적인 형상의 출현은 남성이 생식활동에서의 작용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여와는 개구리에서 나오고, 그 개구리가 뱀으로 변한 것은 모두 부계가 모계를 대체한 결과이다. 많은 학자들은 부계제도가 모계제도를 대체한 데는 역사상 한 차례의 잔혹한 투쟁이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투쟁에서 뱀으로 상징되는 남성의 생식기는 투쟁의 무기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남자들은 그것으로 여성을 정복했고 그로부터 남녀 불평등의 역사적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
현실 속에서 뱀은 원래부터 공포를 느끼게 하는 존재이다. 뱀이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음모와 폭력을 의미한다. 원시 선인들은 뱀을 아주 무서워했다. 평시 산림을 걸을 때는 서로 "그것이 있어, 없어?"하고 물었지 감히 뱀이란 말을 쓰지 못했다. 이것으로 보아 그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후에는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它)라는 대신에 충(虫)이란 말로 뱀(蛇)이란 말을 대신했다. 그러나 남근은 여전히 ‘그 (它)’이거나 ‘그 물건’으로 불렸다. 그 외 현실생활에는 개구리는 종종 잡혀 먹힌다. 때문에 부계제도가 모계제도를 대체한 후 신성한 ‘여와’는 핍박에 못 이겨 실신(失身)했으며 ‘사인(蛇人)’으로 변했다. 중국 부녀자들의 수난은 서서히 시작됐다.
당연히 이 과정은 아주 느리게 시작 되었다. 그 연대도 아주 먼 옛날이다. 만약 원시 신화에 대한 해독이 인류학적이 아니라면 우리는 여와가 정말 복희와 똑 같인 뱀의 형태를 하고 있는 여자로만 알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역사상 고대부터 지금까지 죽 ‘남존여비’라고 여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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