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해석.오종찬]
“그저 한적하고 평범한 바닷가였는데… 세계가 알아 주는 곳이라 하고 매일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 오니, 우리도 놀랍소.”
순천만 인근 대대마을에서 14대째 산다는 한석주(68)씨는 “지금 논 자리들도 옛날엔 다 갈대밭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뻘과 갈대가 이렇게 구경거리가 돼 관광객을 몰고 올 줄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순천만 초입은 오래전부터 갯벌이 발달하고 은빛을 머금은 갈대가 우거져 각종 새가 많았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습지·조류 전문가와 환경운동가들이나 찾는 곳이었다.
1996년에는 순천시가 홍수 때 동천 하류의 물이 잘 빠지게 한다며 준설을 시도했다. 전남지역동부사회연구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골재를 파 내면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결국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 98년 9월 준설을 중지시켰다.
이때부터 순천시도 갯벌·갈대·조류 등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다. 간척해 논으로 변한 곳들을 사들여 습지로 되바꾸는 등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97년 모두 1㎢가량이었던 갈대 군락이 현재 2.3㎢로 불어났다. 먹이 섭취와 휴식을 보장하는 환경 수용능력이 커짐에 따라 서식하고 도래하는 새의 종류와 개체 수도 늘어났다.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의 경우 월동 개체 수가 97년 약 70마리에서 2003년 130여 마리, 2007년 270여 마리로 늘어났다.
순천시는 보전에 그치지 않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나섰다. 2005년 갈대밭 사이에 보행 데크를 놓는 등 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기본 편의시설을 갖췄다. 그리고 2006년 1월 람사르협약에 우리나라 연안(갯벌) 습지 가운데 처음으로 등록한 후부터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집중 홍보했다.
◆자연과 개발의 상생=순천만은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규모 연안 습지 가운데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 있다. 낙동강·금강·영산강과 달리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동천은 하류를 둑이나 하구언으로 막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하천 민물과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에 다양한 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다. 그 결과 두루미·백로·오리·갈매기류 등 20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도래한다.
갯벌과 갈대는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기능도 한다. 순천만과 인근 벌교 해역에 고막·피조개 등 수산물이 풍부하고 질이 좋은 것도 이 덕분이다. 김학수(43)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사무국장은 “도심과 자동차로 15분 거리밖에 안 되고, 사람들이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살면서도 자연생태를 잘 보전한 점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탐방객 급증에 부작용 우려도=순천만 탐방객은 2000년대 중반까지 연간 10만~20만 명이었다 2007년 180만 명으로 급증했다. 겨울철에는 월동하는 새떼를 구경하러 오는 탐조객이 줄을 이어, 전국에서 겨울철 탐방객이 가장 많은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다.
주변 음식점들은 손님이 3~4년 전에 비해 평일은 50%, 휴일은 배 이상 늘었다. 순천시는 앞으로 관람료를 받기 시작하면 연간 수십억원씩 세 수입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갈대를 이용한 차·와인·술 등도 개발하는 등 '순천만 산업'의 볼륨을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탐방객 급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갯벌연구센터의 고병설(40) 박사는 “순천만은 잘 보전해 지금 빛을 보고 있다”며 “역설적으로 이를 훼손하면 그 빛을 잃는다는 얘기며, 세계적인 생태 관광지의 꿈도 무너진다”고 말했다.
조계중(44·공원휴양학) 순천대 교수는 “관광객 유치에 집착해 개발을 많이 할 경우 순천만의 매력인 흑두루미 등이 더 이상 오지 않을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순천만 주변엔 목포~광양 고속도로를 건설 중이고, 태양광발전소와 비닐하우스가 들어서고 있다.
이해석 기자
◆람사르협약='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1971년 이란의 해안도시인 람사르에서 채택, 75년부터 발효된 국가 간 협약이다. 람사르사무국이 중요성을 인정한 우리나라 습지는 순천만 등 연안 습지 2곳과 창녕군 우포늪 등 내륙 습지 6곳이다.
노관규 순천시장 “생태관광의 힘, 우리도 놀랐다”
“갯벌과 갈대 군락, 철새 모두 매력적인 자원입니다. 남들이 개발로 갈 때 역으로 이를 보전하고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한 게 주효했습니다.”
노관규(48·사진) 순천시장은 “더 자연적으로, 원시적으로 가야 한다”며 “순천만이 세계적 생태관광지로 발돋움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노 시장은 매산고 졸업 후 서울에서 세무 공무원 생활을 하다 32세 때 제34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대검 중수부 검사 시절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김현철씨 수사에 참여했다. 변호사 생활을 하다 2006년 7월부터 민선 시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매립 국가'로 낙인이 찍혀 있다. 그러나 순천시는 매립해 농경지로 쓰고 있는 곳들을 습지로 되살리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동천 하류 양쪽의 농경지 104만4000㎡를 사들여 수생식물을 심고 물고기들을 넣었다. 이 내륙 습지에 왜가리·중대백로가 날아들고 있다. 밀물 때도 새들이 쉬고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습지와 연접한 논 1만㎡를 매입해 조류 쉼터로 내놓았다.”
-생태관광이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데.
“우리도 놀랍다. 3년 전 자연 생태관을 연간 관람객을 70만 명으로 잡고 지었는데, 이미 곱절을 넘었다. 21세기 들어 관광 추세가 생태 쪽으로 가고 있다. 2012년 여수엑스포는 순천만을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계박람회장까지 차로 15분 거리밖에 안 된다.”
이해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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