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생물 이름풀이 사전
해삼, 진짜 인삼 성분…대학자 문어, 지능 높아재미난 유래·과학적 통찰력·성적 비유 등 다양
‘물텀벙이 전문’이란 간판이 붙은 식당에선 뭘 먹을까. 과메기와 메기의 공통점은? 홍어 수컷이 괄시당하는 까닭은? ‘어’로 끝나는 생선과 ‘치’로 끝나는 생선의 차이는? 김씨의 자랑 김….
건강식품으로 사랑받으면서도 우리는 수산물의 이름에 관해 모르는 게 많다. 오랜 세월 우리의 삶과 밀착한 바다생물들의 이름에는 갖가지 재미난 유래와 선조들의 과학적 통찰력, 성적인 비유 등이 숨어 있다.
박수현 국제신문 기자가 펴낸 <바다생물 이름 풀이 사전>(지성사, 2만2천원)은 이런 궁금증을 단숨에 풀어주는 책이다. ‘사전’이란 제목이 달렸지만 딱딱한 학술용어는 찾을 수 없고, 필자가 취재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수중촬영 전문가이기도 한 필자가 찍은 생동감 있는 사진도 볼 만하다. 수산물 코너에 장보러 가기 전에 한번쯤 알았으면 하는 내용을 간추려 본다.
잡히면 재수 없어 내던져버려 ‘텀벙’ 소리나 물텀벙
연말 음주가 잦아지면서 누구나 개운하고 시원한 맛으로 속을 풀어줄 식당을 찾게 된다. 거기서 마주치는 ‘물텀벙이’는 뭘까. 다름 아닌 꼼치와 아귀의 다른 이름이다. 이 둘은 모두 입이 크고 흐물거리는 몸이 흉하게 생겼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고급 어종이 많던 과거에 어부들은 그물에 이들이 딸려오면 재수 없다고 뱃전 너머로 내던졌다. 그때 물에서 나던 소리가 바로 ‘텀벙’이다.
꼼치는 물메기 또는 곰치라고도 불리며 요즘 탕이나 찜용으로 인기다. 아귀는 살아서 탐욕스럽던 자가 죽어 떨어진다는 불교의 ‘아귀도’에서 유래했다. 목구멍이 바늘구멍처럼 작아 먹어도 삼키지 못해 늘 굶주림에 시달리는 천형을 받았다지만, 실제 아귀는 큰 먹이도 잘 삼킨다.
물메기가 메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겨울철 별미인 과메기도 메기와 무관하다. 요즘은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지만 전에는 청어가 재료였다. 한겨울 지천으로 잡히는 청어를 배도 따지 않은 채 바람이 잘 통하는 해안 덕장에 걸어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 자연 건조시킨 영양 만점의 식품이 과메기다. 청어의 눈을 꿰어 말린다 해서 관목어(貫目魚)로 부르던 것이 과메기로 바뀌었다. 청어는 가난한 선비를 살찌우는 고기라 하여 비유어(肥儒魚)라고도 불렸다는 기특한 생선이기도 했다.
용왕 아들 포뢰가 무서워 소리 질러 두드릴 ‘고’에 포뢰 ‘뢰’ 붙여 고뢰(→고래)
친숙한 수산생물이지만 듣고 나면 무릎을 칠 유래를 가진 이름도 적지 않다.
1957년 우리나라의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가 인도양에서 크고 맛좋은 시커먼 생선을 처음으로 잡아왔다. 일본에서 검다고 해서 마구로(眞黑)라고 부르는 물고기였다. 참 진(眞) 자에 물고기 치를 붙여 참치가 탄생했다. 현재 참지는 다랑어와 새치류를 통칭하는 말이다.
장어도 참치처럼 하나의 종을 가리키지 않는다. 네 가지 장어 가운데 먹장어는 흔히 곰장어 또는 꼼장어라고 부른다. 가죽을 벗겨내도 한동안 살아있고, 불판에서도 꼼지락거려 스태미나식으로 인기가 높지만, 서구에서는 사체에 몰려드는 징그러운 모습을 떠올려 먹지 않는다. 사실 곰장어는 장어도 아니고 아예 물고기도 아닌 턱뼈 없는 원구류에 속한다. 먹장어란 이름은 눈이 퇴화해 눈이 먼 장어라는 뜻이다.
옆구리에 수십개의 옆줄구멍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특징인 붕장어는 속칭 아나고로 불린다. 아나고(穴子)란 구멍에 산다는 뜻으로, 모래속에 숨는 습성에서 온 이름이다.
갯장어는 붕장어 비슷하지만 주둥이가 길고 뾰족하며 이빨 날카롭다. 바다에서만 살아 ’개’ 자가 붙었다. 뱀장어는 장어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와 강을 오가 민물장어로 불린다.
고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의 고래는 뿌리가 같다. 중국 명나라 때 호승지가 쓴 책 <진주선>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용왕의 셋째 아들로 포뢰가 있었는데, 겁이 많아 고래를 보면 놀라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용의 아들 포뢰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동물이란 뜻에서 두드릴 ’고’(叩)에 포뢰의 ’뢰’(牢)를 붙여 ‘고뢰’라 불렀다.
‘고뢰’의 자취는 종각에 남아 있다. 종을 매다는 곳에 용의 아들인 포뢰를 조각해 놓고 고래를 조각한 당목으로 친다. 고래에 놀란 포뢰가 종소리를 크게 울려퍼지게 하라는 의도다.
명천의 태씨가 처음 잡은 고기 명태…비굴함이 아니라는 뜻의 굴비
민어는 생선 중 유일하게 백성 민(民) 자를 쓴다. 요즘엔 비싼 생선이지만 백성의 고기로 널리 사랑받았다. 민어의 담백한 맛을 죽어서나마 맛보라고 제삿상에도 올린다.
수산물 가운데 가장 학식이 높은 것이 문어다. 이름에 글월 문(文) 자를 달고 있다. 아마도 큼직한 머리와 위험할 때 내뿜는 먹물 덕분이겠지만, 실제로 과학자들이 미로찾기 등의 실험을 한 결과 문어는 포유류 못지않은 지능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름도 많다.
조기(助氣)는 몸의 기운을 돋우는 생선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말린 굴비라는 이름은 이자겸과 관련된다. 고려말 난을 일으켰다가 정주(지금의 전북 영광)로 귀양 간 이자겸은 해풍에 말린 조기 맛에 감탄해 왕에게 보내면서, 비굴함 때문이 아니란 뜻에서 ‘정주굴비’(靜州屈非)라고 써 보냈다고 한다. 여기서 뒤의 두 글자만 따 굴비가 됐다.
조선 후기 이유원의 <임하필기>는 명태의 유래를 이렇게 적었다. 인조 때 함경도 관찰사가 명천군 초도순시 때 맛있는 생선을 대접받고 이름을 묻자 명천 사는 태씨 성 가진 어부가 처음 잡은 고기인데 이름을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명천의 ‘명’과 태씨의 ‘태’를 따 명태로 지었다는 것이다. 어민들이 부르는 이름이 분명히 있었을 터인데, 오스트레일리아를 탐험한 쿠크 선장이 원주민이 ‘모른다’는 뜻으로 대답한 캥거루를 이름으로 삼은 것과 비슷한 혐의가 있어 보인다.
실제 인삼 성분이 발견된 해삼…미주알의 뜻 가진 말미잘
선조가 피난길에 맛보고 ‘은어’라는 근사한 이름을 하사했다가 환궁 뒤 도로 ‘묵’이란 옛 이름으로 돌렸다는 도루묵에서도 비슷한 양반의 작위가 엿보인다.
김은 바다 이끼라는 뜻에서 해태(海苔)라고 쓰였다. 그런데 김이라고 널리 부르게 된 것은 김씨 성 가진 사람이 처음 이 해초를 양식했기 때문이다. 1606년(선조 39년) 전남 영암 출신인 김여익이 섬진강 하구 태인도에서 양식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태인도는 나중에 매립돼 광양제철소가 들어섰는데, 이제는 김이 아닌 쇠(金)가 생산된다.
반면 조상의 과학적 통찰력이 엿보이는 이름도 있다.
아귀를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낚시하는 물고기란 뜻의 조사어(釣絲魚)라고 불렀다. 실제로 아귀는 등지느러미 첫번째 가시를 미끼처럼 흔들어 먹이를 유인한다.
이 책은 또 해삼을 바다의 인삼이란 뜻에서 해삼(海蔘)으로 적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해삼에서 인삼의 성분인 사포닌이 발견됐다. 서양에서 부르는 ‘바다 오이’나 일본의 ‘바다 쥐’보다 훨씬 격조가 있고 과학적이다.
말미잘은 ‘미주알’이라 했는데, 이 말은 구멍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 곧 항문을 닮았다는 뜻이다. 미주알 앞에 민망한 뜻을 가리기 위해 ‘말’을 붙였는데 ‘말미주알’이 말미잘이 됐다. 실제로 강장동물인 말미잘은 입과 항문이 동일하다는 특징이 있어 서양의 ‘바다 아네모네’보다 본질에 가깝게 다가선다.
‘개’자로 가렸지만 남자의 그것을 가리키는 개불
수산물 이름에는 성적인 묘사도 과감하게 쓰인다.
개펄에 사는 무척추동물인 개불은 앞에 ‘개’ 자로 가렸지만 남자의 음경을 가리킨다. 달짝지근하고 오돌오돌 씹히는 맛으로 인기 있는 이 동물은 붉은빛이 도는 유백색의 길쭉한 모습이 남자의 성기를 빼닮았다. 조선 말 김려가 지은 <우해이어보>도 해음경(海淫莖)이라 불렀다.
멍게의 표준말은 우렁쉥이이지만 널리 쓰이는 경상도 사투리 멍게가 표준말로 굳어졌다. 멍게의 본딧말인 ‘우멍거지’는 포피가 덮여 있는 포경상태의 어른 성기를 가리킨다. 멍게는 껍질에 싸인 채 작은 구멍을 통해 물을 쏘아 대는 습성이 있는데, 영어 이름도 ‘바다 물총’이란 뜻이다.
홍어는 몸의 폭이 넓어 넓을 홍(洪) 자를 썼지만 <본초강목>에선 해음어(海淫魚)로 적고 있다. 옛날 어부들이 홍어를 잡을 때 암컷을 묶어 바다에 던지면 수컷이 배지느러미 뒤쪽에 달려있는 두 개의 커다란 생식기로 교접한 것을 잡았다. 수컷 생식기에는 가시가 나 있어 잘 떨어지지 않는데, 잡힌 뒤에도 수컷은 암컷보다 맛이 떨어지는데다 가시가 조업을 방해해 생식기를 잘리는 수난을 당하곤 했다. ‘만만한 게 홍어 X’이란 속어는 여기서 유래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바다생물 이름풀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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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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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현 <한겨레> 환경전문기자로, EBS <하나뿐인 지구> 진행(2005년)
<환경과 생명의 수수께끼>, <프랑켄슈타인인가 멋진 신세계인가> 등 저술 조홍섭의 물바람숲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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