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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캐나다 미국을 노리다! - 국토 방위 계획 1번 (Defence Scheme No.1)

_______! 2009. 10. 14. 22:03

 

사우스 파크의 팬이란 사실은 이미 블로그를 통해 밝혔는데, 이 애니의 극장판엔 좀 뜬끔없는 소재인 캐나다와 미국의 전쟁이 그려집니다. 전쟁의 원인은 바로 이 악동들의 우상인 캐나다의 테렌스와 필립이란 코미디 듀오 때문인데 말 그대로 화장실 유머의 대가인 이들 때문에 아이들이 망가진다고 생각한 카일의 엄마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면서 일이 커지게 되고 어찌 저찌 사팍답게 전개되다 보니 결국 미국은 캐나다에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르죠. 캐나다 역시 사형을 언도받은 테렌스와 필립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데.....

 

 

 

 

얼굴이 점 3개로 묘사된 캐나다 인들.

 

 

 

사실 위 내용은 사팍의 작가들의 머리에서 허구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캐나다와 미국의 전쟁을 생각하기란 쉽지않습니다. 설령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캐나다의 승률에 배팅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역사는 가끔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미래가 불확실하니 이럴 땐 과거를 반추해 보는 것도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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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전쟁 계획 빨강War plan Red라고 들어보셨는지? 이 쪽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쯤은 어디서 들었거나 보셨을 건데, 이 전쟁 계획 레드는 바로 미국의 대영(對英) 개전 시나리오이고 이 계획안에서 지칭하는 크림슨은 바로 캐나다를 의미합니다. 이 전쟁 계획 빨강이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진 반면 이에 대응하는 캐나다의 국토 방위 계획국토 방위 계획 1번은 Defense Scheme Number One은 잘 알려져 있지 않죠.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과 캐나다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중 가장 긴 국경선으로 서로 접하고 있는 나라들이긴 하지만 그 길이만큼 서로간의 파인 골 역시 작지 않다고 합니다. 뭐, 사람들끼린 이웃사촌이네 뭐네 합니다만 그 대상이 국가라면 절친 보다는 서로 반목하며 으르렁거린다는건 예외가 아닌셈이죠. 특히 당하고 산 캐나다 인들의 입장에서 미국이 곱게 보일리는 만무하고.....

 

 

 

역사에 기록된 이들의 본격적인 대결의 시작은 1775년에 벌어집니다. 이 해에 바로 미국의 독립 전쟁, 즉 미국 혁명이 일어났는데 당시 대륙 회의는 2차례에 걸쳐 퀘벡에 연서를 보내 서로 통하고 싶다는 사연을 전달합니다만, 퀘벡의 반응은 콧대높은 그녀처럼 뜨뜨 미지근할 뿐이었죠. 그런데 마침 타이콘데로가 요새를 점령하고 기세가 올라있던 베네딕트 아놀드 (한때는 혁명군의 영웅, 하지만 나중엔 입에 담기조차 역겨운 배신자로....)는 자신에게 병력과 지휘권을 주면 퀘벡녀의 마음은 자신의 단단하고 늠름한 그것으로 (오해마시길....) 바뀌고 말거라는 호언장담을 늘어놓게 됩니다. 뭐 이왕 간 김에 라는 심정으로 이를 허가한 대륙회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승전보를 기다리는데, 초기 몬트리올을 점령하고 기세를 올리던 원정군은 퀘벡에서 대참패를 당하고 맙니다. 거친 자연 환경으로 인한 보급의 난관, 그리고 귀 카를레통(어떻게 일어야 하나?)Guy Carleton 걸출한 퀘벡의 민병대장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퀘벡을 공략하다 전사하는 몽고메리.

 

 

 

미국은 1만명의 원정군 중 2,500이상의 전사상자와 실종자가 나온 반면 민병대는 고작 930명의 전사상자....겉으로는 정규군의 모양을 갖췄지만 실상은 총좀 쏠줄아는 민간인들의 집합이란 한계도 있을수 있었겠지만 미국으로선 객기 한번 부렸다가 호되게 당한 셈이죠. 거기다가 같이 지휘를 맡았던 리처드 몽고메리 장군까지 전사했으니 비싸도 너무 비싼 수업료였던 셈입니다. 암튼 구애하러 간 여인에겐 온갖 몹쓸 짓을 당한것도 모잘라 이제 그 부모(영국 증원군)가 몽둥이를 들고 달려옵니다. 어쩔수 있나요? 왔던 길로 눈썹이 휘날리게 돌아가는 수 밖에요....

 

 

 

이렇게 미국의 첫 번째 캐나다 원정은 찬란한 영광 아니 참패로 끝이 났지만, 적어도 삼세번은 붙어봐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리턴매치는 1812년 미영전쟁으로 개막됩니다. 당시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인지라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이용 프랑스의 해상 무역로를 봉쇄하고 프랑스로 향하는 배는 먼저 영국을 기항하라는 가혹한 요구조건을 내밉니다. 미국 입장에선 이는 도저히 수용할수 없는 조건이었고, 더구나 프랑스는 자신들의 독립을 도와준 우방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더 미국의 분통을 터뜨리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건 바로 이런식으로 나포한 미 군함의 승조원들을 자국의 탈주병으로 간주 영국 해군의 수병명단에 포함시켜버린 겁니다. 아주 노골적인 납치였지요.

 

 

 

 

콘스텔레이션호의 전투

 

 

 

당시 집권중이던 메디슨 대통령과 내각은 원래 노골적인 반영감정을 드러내곤 했었는데,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다보니 미국내의 여론도 급속하게 악화되었고 결국 뉴욕과 뉴 잉글랜드 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터지게 됩니다. 미국은 이 시기에 후환을 없애기 위해 캐나다 정복을 시도했는데 글쎄 그게 뜻되로 잘 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2년동안 서로간의 이렇다 할 대승도 대패도 없이 주거니 받거니 지리한 전투를 계속하는데 우리가 아는 미국사의 극적인 장면들 즉 워싱턴 대통령관저의 전소, 콘스털레이션 호의 승리같은 일들이 이 때 벌어진 사건들입니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와중에 나폴레옹은 몰락을 하게되고 자연히 영국의 봉쇄도 풀리면서 이제 더 이상 싸울 이유는 없어졌습니다.

 

 

 

1814년 12월 24일 벨기에의 겐트Ghent에서 전쟁전으로 모든 걸 되돌린다는 내용의 겐트 조약을 맺으면서 이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느긋했던 영국의 협상단은 강철 공작 웰링턴 공의 성화로 일을 서둘러야 했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통신망이 미비했던 당시 사정상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고취시키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해를 넘겨 1815년 1월 8일에 벌어진 뉴올리언스 전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때까지 종전 사실을 몰랐던 양군은 첨예한 대치 상황에 있었고 이 날 영국군은 7,500의 병력을 동원 미군을 습격하지만 미리 만반의 대비를 했던 미군의 저항에 부딪쳐 무려 2,000명의 사상자(전사자 289명)를 낸 채 퇴각하고 맙니다. 이에 비해 미군의 사상자는 단 71명(전사자 31명)으로 말 그대로의 압승을 거둔것입니다. 이 소식과 종전 소식은 거의 동시에 워싱턴에 도착했고 침체되어 있던 미국인들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고 합니다. 이 전투를 지휘한 돌벽Stonewall Jackson 장군이 국가적인 영웅이 된 건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저러고도 무사한 돌벽장군님이라니ㅎㄷㄷ...

 

 

 

미영전쟁이 끝난지 20년도 안되서 양측은 또 한번의 전쟁을 치루는데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딴 아루스툭Aroostook war 전쟁이 바로 그겁니다. 다행히 이 전쟁은 이름만 전쟁이지 양측 정규군간 총알 한발 쏴보지도 못하고 종결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민간인들간의 충돌이 벌어져 수십명 정도가 사망했는데 전쟁이란 이름 치고는 좀 그렇지요. 혹자들은 이 이름 전쟁을 두고 양측의 손실은 국경을 거닐던 미국 소 한 마리와 캐나다 돼지 한 마리가 전부일 뿐이라고 하기도 했다지요.

 

 

 

 

결국은 쌤!쌤!

 

 

 

자 이것만으로도 굴직한 분쟁을 이미 세차례나 겪은 캐나다인데 더 기막힌 일인 1866년에 벌어집니다. 아일랜드의 무장 독립 조직인 아일랜드 형제단의 미국 방계조직인 페니안 형제단Fenian Brotherhood이란 조직이 있었는데, 이들의 기치는 당연히 반영국, 아일랜드의 독립이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캐나다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IRA란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그룹.)

 

 

 

사실 사병조직에 불과한 이들이 이렇게 자신만만한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들의 뒤에는 미국의 은밀한 협조와 묵인, 방조가 있었던 겁니다. 조국 아일랜드의 독립이란 대의를 위해 이들은 1866년 캐나다 침공을 개시합니다. 약 800명(캐나다 자료엔 1,000명)으로 구성된 형제단 용사들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 캐나다 내지로 진격 하면서 도중에 장애물로 등장한 캐나다군과 민병대들을 손쉽게 격퇴했는데, 대원들 중 상당수가 남북 전쟁의 베테랑들이었으니 민병대란 존재는 그들 앞에 오합지졸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소수의 병력으로 생각지도 못한 성과들을 거두지만 사태가 범상치 않음을 깨닳은 미국 정부의 증원군 체포와 지원 중단 그리고 믿었던 현지 아일랜드 교회의 비협조로 결국은 눈물을 머금고 퇴각해야 했습니다. (현지 아일랜드 교회들은 이 일로 오히려 자신들 즉, 캐나다의 주권이 제약되는 걸 우려했답니다.)

 

 

 

 

리지웨이에서 캐나다군과 페니안들의 전투 (레드코트가 캐나다)

 

 

 

이 퇴각행렬에서 이탈한 몇몇의 형제단원들이 민병대에 사로잡혀 교수형에 처해지는 것으로 이 침공은 막을 내리게 되는데 이들의 철수를 돕기 위해 미국 정부는 직접 기차표를 구매해서 나눠주는 친절을 베풀기까지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미군은 이들에 대해 동정어린 시선을 보냈고, 그들 중에는 아예 이들과 합류해 전투에 참가한 미군들도 있었다고도 하네요. 암튼 이 이후로도 페니안 형제단은 미국의 비호속에 그 세력을 확장하고 지속적으로 캐나다를 위협하지만 1871년 이후 영국이 증원군을 투입하고 확고한 대 캐나다 안보공약을 천명하면서 이 위협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이렇게 쓰다보니 원래 쓰려던 이야기가 아닌 캐나다와 미국의 분쟁사가 되어버렸는데-_-;; 이렇게 당하기만 한 캐나다인들의 눈에 미국이 곱게 보일리는 없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다 효도르 앞에서는 고분고분 해야죠. 어쨌거나 다시 시간은 흘러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루고 신흥 열강으로 떠오르면서 영국은 일본을 자신들의 파트너로 낙점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동방 예의지국의 거문도에다 함대를 파견하는 일 따위는 이제는 안해도 된다는 거죠. -_-;;

 

 

 

 

음으로 양으로 영길리의 도움이 있었으니 차르의 함대는 사라지고...

 

 

 

러시아의 남진저지와 지역에서의 헤게모니 장악이라는 그들만의 대의 앞에 굳게 뭉친 이들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그리 곱지 많은 못했습니다. 사사건건 자신들의 일에 트집을 잡고 물고 늘어지는 영국이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태평양의 패권을 노리는 일본, 이 둘 국가와 미국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치닫는다면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미국은 고립무원에 빠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는 있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영국과 굳건한 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윗동네인 캐나다도 역시 무시할수 많은 없었던 겁니다. 영국군이 미국을 침공한다면 바로 그 출발지가 될테니까요.

 

 

 

 

캐나다는 우리의 아이들을 망치고 있어요!

 

 

 

이런 정세 판단하에 탄생한 계획이 바로 영국과의 개전 시나리오인 전쟁계획 레드, 일본과의 충돌을 예상한 시나리오는 전쟁계획 어륀지라 불리는데, 후자의 경우는 현실화 되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알고 계실겁니다. 전쟁 계획 레드를 작성할 때 실제 영연방군의 상륙지로 예상되는 해안가를 싸그리 조사할만큼 미국은 진지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전쟁계획 레드에 딸린 캐나다 침공 시나리오를 잠시 보자면

 

 

 

선제공격으로 해군은 핼리팩스를 장악함으로써 영연방군의 증원을 저지하는 한편 태평양과 대서양을 봉쇄함으로써 캐나다의 목줄을 짓누르는 동시에 나이아가라의 수력 발전소를 점령함으로써 동력원을 차단한다. 오대호에 대한 통제권 역시 수립하여야 한다.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대 따위는 개무시 한다.

 

육군은 3방향으로 진격하며 각기 몬트리올과 퀘벡, 그리고 온타리오의 구리 광산지대를 점령한다. 또한 밴쿠버로 향하는 도로 99를 장악함으로써 카리브 연안의 영국 식민지들을 제압한다.

 

이 계획의 목적은 단순한 침공이 아닌, 영구 점령이다. “블루(미국)의 의도는 획득한 크림슨과 레드의 전 영역을 영구히 확보하는 것이다. 이 정책으로 크림슨과 레드의 영토는 블루 연방의 주와 영토로 귀속될 것이며 평화는 공고해 질 것이다.”

 

 

 

캐나다라는 국가를 영원히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는.....정말 ㅎㄷㄷ한 계획이 아닐수가 없습니다만, 이런 분위기를 캐나다 역시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력에서 월등한 차이가 나는 이상 ‘그저 눈치만 보고 있지~ 그저 속만 태우고 있지.’ (나미씨의 빙글빙글에서 인용.-_-;;)

하지만 캐나다에 용자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로 방금 동남아 순회공연 아니 그레이트 워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환한 제임스 서덜랜드 브라운James Sutherland Brown이라는 중령인데 이 이름보다는 버스터Buster 브라운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버스터란 별명에서 이 분의 기질을 알수 있을 겁니다.

 

 

 

 

고구려엔 개소문이 캐나다엔 버스터 브라운이...-_-;;

 

  

 

2,3차 이프르 전투, 솜므 전투, 비미 리지 전투, 그리고 최후의 100일 공세까지 참전한 이 역전의 용사는 전쟁 후 군 첩보당국의 담당자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캐나다의 안보를 위협할수 있는 갖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국토 방위 계획 1번‘입니다. 그의 구상은 아주 현실적인 정세판단에서 시작합니다. 즉, 미국과 정정당당하게 붙는 한 절대 이길수 없다. 우리가 이기기 위해선 영국과 영연방의 증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 전제하에 버스터 브라운은 움직입니다.

 

 

 

그래서 나온 구상이 마치 고구려의 수나라 선제 공격을 연상시키는 대담한 기습공격으로서, 간략한 선전포고 후 캐나다군은 급속 기동으로 시애틀, 그레이트 폴스, 미네아폴리스. 미네소타, 그리고 뉴욕으로 진격 이 도시들을 점령한다는 겁니다! (그레이트 폴스는 백안관과 지척간!!!)

 

 

 

 

이제 미 제국주의자들을 응징하겠소!

  

 

 

그럼 그 이후에는? 여기서 브라운의 의도가 잘 드러납니다. 그 역시 이 도시들의 점령은 일시적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에 부대를 철수시키면서 전쟁 수행에 필요한 그러니까 도로, 철도, 교량, 군수 공장, 경작지등을 싸그리 파괴시키는 겁니다. 미군이 이 뒷수습을 할 동안의 시간동안 캐나다엔 영국과 영연방의 증원이 이루어 지고 캐나다군이 철수를 완료할 무렵에는 미국이 오히려 수세에 몰릴 것이다. 라는게 버스터 브라운의 국토 방위 계획 1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대담한 계획임엔 틀림없지만 아무래도 윗선에서 영 못 미더웠나 봅니다. 브라운의 계획을 위해 배정된 예산은 단돈 1,500달러에 불과했으니까요. 이런걸 두고 꿈은 큰데 현실은 초라하다라고 해야 될겁니다. 당시 포드가 막 찍어내던 트럭한대 가격이 500달러였으니.....미국인 남한 만한 것도 아니고 그 큰 나라에선 교통비랑 식대도 안나올텐데 브라운씨는 오늘도 우울해 집니다.

 

 

 

 

요런게 500달러 정도 하던 시기

 

 

 

원래 이런 모종의 임무를 위해서 007같은 전문 요원이 딱 이지만, 브라운과 그 참모들은 자신들이 직접 하기로 합니다. 관광객 복장을 하고 눈엔 선글라스를 목엔 쌍안경과 카메라를 두른채 이들은 태연히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데....이들을 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풍채좋은 중년의 신사들이 스파이라는 생각을 그 누가 했겠습니까....이게 다 원수같은 돈 탓이지요. 걸렸다 그러면 캐나다와 미국의 적잖은 문제를 일으킬 이들이었지만 다행히 이들은 아무 탈없이 자신들의 임무를 착실히 수행해 나갑니다. 태연히 중요 시설을 쌍안경으로 관찰하고 사진까지 찍어도 미국인들의 눈엔 이들은 단순한 캐나다 관광객으로 보였나 봅니다. -_-;;

 

 

 

돈은 없고 할것많은 브라운 일행이 주유소에 들르면 꼭 챙기는 물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무료 교통지도였답니다. 그들에겐 이것도 매우 중요한 자료였던 겁니다. 후세의 어떤 역사가는 이들의 행태를 무성영화 시대의 코미디를 떠올리게 하는 광대놀이라고 평했는데, 정작 그들은 너무나도 진지했습니다.

 

 

 

 

캐나다의 용사들이여! 국경을 돌파하라! 당시의 캐나다군.

 

 

 

브라운의 기록중에는 버몬트주 벌링턴에 대한 것이 있는데 그들은 지금까지 브라운 일행이 만났던 이들과 다르게 상당히 친절하고 상냥했답니다. 그리도 또하나 발견한 사실은 그들의 음주량이 캐나다에 훨씬 못 미친다는 건데 (당시는 금주법이 있던 시대.)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어떤 미국인은 맥주 한잔을 위해 기꺼이 캐나다인이 되겠다고 까지 했다네요. 그가 보기엔 이렇게 상냥한 벌링턴 인들은 군인으로서 자격미달 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쓸모있는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딱 하나의 방법뿐이다. 술먹고 취하는 것...”

 

 

 

브라운의 입장에선 어쩌면 이렇게 나약한(?) 미국인들을 보고 자신감을 가졌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또 하나 특이 사항으로는 많은 미국인들이 영국과 엮어들어가는 캐나다에 대해 동정심을 표했다고도 합니다.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

  

 

 

하지만, 그가 이렇게 미국의 민심을 훓어가며(?) 헌신을 다 바친 국토 방위계획 1번은 1928년 폐기처분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그동안의 상황 변화로 영국과 미국의 격렬한 갈능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판단한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계획엔 중대한 결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 계획이 성공키 위해서는 진격로 상의 미군들이 하나같이 술이나 퍼마시고 잠이나 퍼질러 자고 있었야 한다는 겁니다. 모든 면에서 열세인 캐나다군이 격렬한 저항을 만난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죠. 또한 초기 계획이 대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후퇴하는 과정에서 역포위라도 당해 포위섬멸되 버린다면 미군은 그야말로 알래스카까지 관통하는 특급열차표를 얻는 겪이 됩니다. 이미 캐나다군의 주력이 섬멸된 마당에 영국의 증원군이니 뭐니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가 되는 거죠. 그리고 사실 그 정도로 기동하기 위해선 기계화가 필수적인데 이건 뭐....Orz 따져보면 그냥 참호파고 앉아서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을수도 있겠죠.

 

 

 

비록 계획은 폐기되었지만, 다행히도 그 후로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중요한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절친으로 보일 정도로 캐나다는 보조를 잘 맞춰왔는데 이건 눈에 보이는 거고 실제 캐나다인들고 그렇게 생각할까요?

 

 

 

2003년 캐나다군이 인터넷을 이용 군사현안을 두고 시민들과 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이 토론의 분위기를 짐작케 해주는 한 시민의 들어보자면 “이 토론회의 가장 중요한 현안중 하나는 미국의 침공 가능성입니다. 우리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고 미국은 이것을 노릴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이 가능성이 만약 실제로 이루어 진다면 나찌의 침공에 맞선 소련이 한 것처럼 우리 역시 초토화 작전scorched-earth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북아메리카 공영권???

 

 

 

가진건 많고(자원) 힘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캐나다 입장에서는 등을 맞대고 있는 미국이란 강력한 거인의 존재는 항상 불안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런데 그건 우리 역시 만만치 않아요. 통일 이후를 생각해 보면 바다 건너엔 미국과 일본이 국경 너머엔 러시아와 중국이.....이건 뭐....한국판 국토 방위 계획이라도 짜야 하나? ㅠㅠ

 

 

 

* 원래 짧게 쓸 요량이었는데 이것 저것 욕심을 부리다 보니 넘 길어졌네요.-_-;; 지금도 미국 펜타곤의 비밀 금고 어딘가엔 캐나다 침공 계획이 잠자고 있을수도....

 

출처 : Cigarette & Alcohol (⑮ )
글쓴이 : 祈遇 기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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