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울룽씽자이
九龍城寨, 홍콩 까울룽반도(九龍半島)에 있던 슬럼가.
구룡성채라는 한국식 독음으로 한국에선 더 유명하다. 구룡성이라고도 불린다. 까울룽씽자이는 홍콩의 공용어인 광둥어 발음. 중국어로는 주룽청자이라고 한다. 원래 이름은 까울룽자이씽(九龍寨城, 구룡채성)이었지만 주로 까울룽씽자이(九龍城寨)로 불렸다. 그냥 글자 하나 순서 차이. 영어로는 Kowloon walled city.
충킹맨션(重慶大廈, Chung king Mansions)[1]과 함께 외지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으면 두번 다시 나올 수 없다는 홍콩의 양대 마굴이었다.
1993년 철거되었다. 철거되기 전 불과 0.03㎢의 면적에 무려 5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인구밀도를 환산하면 190만명/㎢로서 역사상 최고의 인구밀도를 가진 곳이었다.
본래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면서 홍콩의 영국군을 감시하던 요새였다. 2차 아편전쟁 이후 까울룽반도까지 영국 소유가 되었지만 이 성채만큼은 중국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1941년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한 후 성벽을 헐어버렸다. 일본의 패퇴 이후 부랑민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고, 1948년에는 영국 관리들의 진입시도를 막아냈다. 그리고 홍콩 정부도 진입하지 못했고, 중국 정부도 관리를 거부하여 완전한 무법지대가 되어 버렸다. 국공내전 이후 난민들이 우후죽순으로 몰려들었고, 흑사회의 주 활동무대가 되었으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행위들이 벌어졌다.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섹스업소, 도박, 아편굴, 헤로인, 개고기식당, 무허가 한의원 등 불법업소들도 이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살인사건이 벌어져도 어떤 경찰도 손대지 않는 진정한 무법지대였다. 오직 흑사회의 룰만이 존재할 뿐... 홍콩 정부는 여러 차례 이곳을 쓸어버리려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사실 이건 소문이고 1986년 더이상 보다못한 홍콩정부가 경찰을 동원하여 범죄자들을 싹쓸이 했으며 철거한것도 노후화 되고 부동산가치가 떨어저서 철거한것이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마구잡이로 지어진 건물의 숲이다. 도시계획은 당연히 없었고, 외부로 뻗어나갈 수 없는 상태에서 인구가 계속 늘어나다 보니 자꾸자꾸 빌딩을 높이 세우게 되었다. 거기에 증개축을 반복하다 보니 미로와도 같은 골목과 닭장처럼 빽빽한 아파트가 들어차서 대낮에도 햇빛을 못 보고 전등을 키고 살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이런 독특한 환경 때문에 영화촬영지로도 많이 쓰였다.
이곳의 슬럼 이미지는 사진집 'City of Darkness'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수많은 만화와 영화, 애니메이션의 모델이 되었다. 성향기병, 아비정전과 같은 영화는 이곳에서 촬영되었고 SF소설가 윌리엄 깁슨은 뉴로맨서, 버추얼 라이트, 코드명J 등의 소설에 이곳의 이미지를 반영했다. 공각기동대의 홍콩도 이곳을 모델로 하였고, 그 외 겟 백커스의 무한성도 이곳을 모델로 한 곳이다. 주성치의 쿵푸허슬에 나오는 낡은 아파트는 이곳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아편굴 투성이에 더럽고 쥐가 득시글거리고 치외법권이고 무척 위험하죠. 홍콩의 'sin city'예요."
영원히 치외법권일 것 같던 까울룽씽자이였지만 홍콩의 중국 반환과 더불어 철거가 결정되었다. 1993년 철거 직전 중국 정부는 일본의 탐험가들로 하여금 지도를 작성하게 했다고 한다. 철거된 후 홍콩 정부는 이곳을 까울룽자이씽공원(九龍寨城公園, 구룡채성공원, Kowloon Walled City Park)으로 만들었다.
영원히 치외법권일 것 같던 까울룽씽자이였지만 홍콩의 중국 반환과 더불어 철거가 결정되었다. 1993년 철거 직전 중국 정부는 일본의 탐험가들로 하여금 지도를 작성하게 했다고 한다. 철거된 후 홍콩 정부는 이곳을 까울룽자이씽공원(九龍寨城公園, 구룡채성공원, Kowloon Walled City Park)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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