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축제들이 있다.
▲ 브라질의 삼바축제, 일본의 미츠리, 한국의 탈춤, 그리고 서양의 마녀사냥..
마녀사냥? 이라고 의문부호를 붙일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녀사냥도 어느 희생양을 가지고 군중들이 하나가 되어 스트레스를 해소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축제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앞의 셋은 공통의 적을 가지거나 희생시키지 않고서도 즐길 수 있는 축제이나 다른 하나는 공통의 적이나 희생양을 가져야만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축제는 2가지의 부류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탈춤과 같은 것을 비롯한 다양한 전통 축제가 존재하였다. 이 축제들은 양반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거나 하는 등의 약간의 적개심은 나타나 있었지만 그 풍자의 대상이 되는 양반들 역시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쾌한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전통적인 축제의 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하단 참고)
현재 각 지역에서는 이런 축제를 부활시켜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각종 꽃을 중심으로 하는 계절 축제와 머드 등 특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축제의 장에 가본 사람들은 느낄 수 있겠지만, 현재 지자체에서 만들고 있는 이런 축제들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여 내가 아닌 우리임을 실감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축제라기 보다는 단순히 소비자의 지감에서 돈을 털어내기 위한 먹거리 장터에 불과하다.
▲ 축제라고 가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먹거리 포장마차들
우리는 전통적인 축제를 잃어버리고 [축제가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린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꼭 축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축제는 있다. 바로 선거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선거를 각각의 소임에 맞는 인재를 뽑는다는 본래의 선거에서 벗어나서 국가가 분열되어 서로 편을 가르면서 필요한 인재나 지지하는 정책이 아닌, ~~심판이니 하는 대형담론을 수행하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렸다. 축제는 축제이나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하고 축제가 끝난 다음에도 감정의 골과 스트레스는 더욱 깊어지는 방식의 축제를 선택해 버린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대 4년에 한번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열린다. 바로 월드컵이다. 월드컵은 공동의 적을 필요로 하는 축제이나, 그 적에게 이기든 지든 감정의 골은 페이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희생양으로 희생되지도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이 시기에 식당들에 많은 매상을 올려주고, 식당들도 이 손님들을 선점하기 위해서 많은 서비스들을 제공하면서 손님들을 유혹한다.
▲ 대형 TV를 설치하여 생중계를 볼 수 있도록 한다거나, 술과 음료를 제공하는 등 선수들 만큼이나 치열한 손님끌기 경쟁을 하고 있다.
4년에 한번 이 때만큼은 사람들이 밖에서 밤새도록 나돌아 다니면서 소리를 질러도, 폭주족들이 [빠라바라바람] 소리를 내고 다녀도, 젊은 여자들이 헐벗고 다녀도, 욕을 먹지 않는다. 아니 욕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를 용납해 준다.
그리고 이에 편승하려는 듯 많은 기성/신인 아이돌,연애인 지망생들이 이를 따라서 한번 떠보려고 각종 거리응원장소에 출몰하면서 응원에 열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월드컵이라는 축제는 그들이 떠보려고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포용하도록 해주는 넓은 가슴을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이런 포용은 우리 나라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외국이나 상대방팀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과 포용이 넓어지며, 심지어는 적과 아군의 경계도 허물어지곤 한다. 오늘 새벽에 있었던 브라질과 북한의 경기 이후에는 보수언론들 마저도 북한팀의 선전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흥분한 군중들 때문에 도를 지나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차를 타고 있는 여자들은 제발 좀 비켜달라고 크락션을 눌러보지만 군중들은 이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런 훌리건들의 행동에 대해서 [박찬욱의 몽타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언급된다.
월드컵
지난 두 달, 이 고백을 과연 꼭 해야 하느냐를 놓고 무척 망설여 왔다. 내가 저지른 엄청난 죄악을 굳이 내 입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과연 이 양심선언을 통해 참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말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조국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친지들 낯을 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결단의 일요일, 나는 성당에 갔다. 신부님이 물었다.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저는, 그러니까, 아, 제 입으로는 말할 수 없어요!” “주께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그러우십니다. 얘기 하세요,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저는, 저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라구욧! 그렇다면, 월드컵 경기조차 보지 않았단 말입니까?” “단 일초도…” “오, 주여!”
그렇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니 어쩌면 지금이라도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축구, 특히 월드컵 축구 경기가 정말 싫었다. 왜냐고는 묻지 마라. 그건 당신들이 나의 최근 영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난 그저, ‘발로 공을 몰아 구멍에 집어넣는 놀이’를,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구경만 하는 일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다른 나라에서 했다면, 또는 한국이 일찌감치 탈락했다면, 고작 무관심한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홈그라운드에서 너무 잘했기 때문에, 무관심을 넘어 싫어하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건 당신들 모두가 축구 얘기만 하고 나하고는 전혀 놀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미난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는 무슨 약속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극장에 볼 만한 영화가 안 걸렸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놈들이 내 차 지붕에 올라가서 막 발을 굴러댔기 때문이다. 잠도 못 자게 경적을 울려댔기 때문이다.
나, 고독했다.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애들의 심정이 뭔지도 알게 되었다. 정상인들은 모른다. 음지에서만 숨어 살아가야 하는 이 민족반역자의 두려움을. 친일파의 죄책감이 이랬을까. 부역자의 공포가 이만큼이었을까. 급기야 어느 날 밤, “나는 월드컵이 싫어요!”라고 절규했다가 입이 찢어지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내이럴 줄 알았다. 그래서 월드컵 기간에 맞춰서 꼭 안 가도 되는 외국 영화제를 일부러 다녀왔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아니 안정환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금쯤은 탈락했겠거니 하고 귀국하는 날, 짐 검사 받고 공항 로비로 나오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저 유명한 골든골을 넣고 있었다. ‘… 다 끝났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집에 오는 길에 마주친 붉은 무리의 눈빛은 살벌했다. ‘대~’ 뭐라고 그들이 외칠 때 알맞은 박자로 손뼉을 쳐주지 않으면 몰매를 맞을 것 같았다. 결국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인적 드문 골목만 찾아 도둑처럼 우리 집에 숨어들어야 했다. 서울역 앞 노숙자들처럼 버려진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 나라 국민도 아니고, 내게는 휘날리는 태극기를 우러러볼 자격조차 없었다.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이 있다면 아내도 축구에 무관심하다는 점. 우리 부부의 결속력은 그 시련의 계절을 맞아 오히려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마저도 결국에는 무너지고 말았으니, 독일과의 4강전을 나 몰래 시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눈물로 호소했다. “당신은 밸도 없어? 흐흐흑… 어떻게 우리를 그토록 괴롭히고 멸시한 저 무리에 가담할 수가 있어?”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나를 또 한번 낙담케 하고야 말았다. 동네 사람들이 아홉살 난 우리 외동딸을 가리켜 월드컵도 안 보는 집 아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쑤군댄다는 그 말에 나는 그만 무너져 내렸고, 며칠 후 마침내 고백성사를 결심했던 것이다. 존경하는 신부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음, 형제여, 이건 그리 쉽게 용서될 사안이 아니군요. 보속으로, 월드컵 전 경기의 재방송을 세 번씩 보도록 하세요” |
월드컵,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이 축제의 장은 정말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이 축제의 장을 참여하도록 강요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글/사진 : 방위사업청 인터넷기자단 김 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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