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스」 : 오시이 마모루 눈에 비친 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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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을 달구는 유행어중 하나는 '마케이누(負け犬)'입니다.
'패배한 개'를 뜻하는 이 일본어는 37세의 컬럼니스트 사카이 준코(酒井順子)가 쓴 [패배한 개의 아득한 울부짖음(負け犬の遠吠え)]이라는 책에서 최초로 나온 말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마케이누는 '30대 이상으로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여자' 로 정의됩니다.
이들 30대 이상 독신 여성은 대부분 전문직의 커리어 우먼입니다. 10년 20년 가까이 전문분야에 종사하면서 능력도 인정받고 고액의 연봉을 받는 사람입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남자나 가정에 얽매일 일도 없습니다. 수입이 충분하므로 자신을 꾸미는데도 인색하지 않습니다. 일과 취미는 물론 식도락과 해외여행도 거리낄게 없습니다.
겉보기에 선망의 대상인 이들 커리어 우먼. 그런데 왜 '패배한 개'라고 불리는 걸까요.
다시한번 사카이의 책에서 인용해봅시다.
"아무리 일 잘하고 멋있게 살아도, 결국 결혼하지 못하면 '여자로서의 패배'다"
'마케이누'는 이른바 80년대 말 버블 경기의 산물입니다. 경기가 호황일수록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법. 당시 파릇파릇한 20대였던 젊은 여성들은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사회적으로 인정받습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해 럭셔리한 삶을 살수 있구요. 외국의 유명상표 장신구만 걸치는 이때 '명품족'도 나옵니다. 이때 유행한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을 꿈꾼다"는 책은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자연히 남자에게 얽매여 결혼할 필요도 없습니다. 피곤하게 애를 키울 일은 더더욱 없구요. 2000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30대 후반 여성 7명중 1명이 미혼 상태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90년대가 되자 버블은 붕괴했습니다. 경기가 위축되고 예전만큼 돈을 벌지도 못합니다. 돈씀씀이도 예전만 못합니다. 해외여행이나 식도락은 꿈도 못꿉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혼해 달라고 줄섰던 남자들도 사라지고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육체적 조건도 한계(리미트)에 다달았습니다. 인간관계도 줄어들고 외로워집니다.
결국 나이만 서른~ 마흔 먹고 정신차려보니 내 주위엔 벌어둔 돈도 남자도 아이도 가정도 없더라...이제 내 인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난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거지...이것이 바로 '마케이누'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결혼한 여자는 모두 '승리한 개'가 될까요? 사실 이들도 마케이누 예비군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죠. 핵가족에 이어 가족붕괴까지 벌어질 정도의 일본가정입니다. 결혼해서 맞벌이해도 남편은 무심하고 애새끼는 다 컸다고 혼자 놀고, 허망함을 느끼게 마련이죠.
많은 마케이누들이 선택하는 길은 두가지입니다. 한가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유학을 가는 것이죠. 모든 것을 리셋하고 먼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겁니다. 일종의 자기계발이라 할 수 있지만 현실도피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좋았던 과거'에의 노스탤지어 탐닉. 연애도 결혼도 돈벌이도 맘대로 할 수 있었던 젊었던 옛날을 회고하는 거죠. 현재 일본의 7~80년대 복고 바람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는 여기에 해당되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일본의 TV드라마는 10대 20대 여성의 취향에 맞은 달콤한 트렌디 드라마, 혹은 쿨하고 슬랩스틱한 코미디 드라마 정도죠. 30~40대가 10~20년전 누렸던 순애보적 신파 드라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겨울연가]가 나타났습니다. 20년전 일본 신파극 이야기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것도 첨단 촬영기법과 멋진 배우들을 동원해, 구닥다리가 아닌 세련된 21세기 신파극을 만들어낸 것이죠. 요모타 이누히코 교수는 "한국에는 일본에서 이미 끊어진 신파극과 엔카(트로트)의 전통이 살아있다"고 평합니다. 에비사와 가츠지 NHK사장의 지적은 더욱 상세합니다. "겨울연가는 20년전 일본에서 방송된 순애보 라디오 드라마를 연상케한다. 일본에는 그런 순애보 드라마가 사라졌다. 순수한 사랑에 목말라하던 일본 여성들에게 그것을 준 것이다."
[겨울연가]는 현재 일본 현지에서 젊은 여성이 아닌 30~40대 독신 또는 유부녀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한국을 찾는 일본 여성팬들의 수가 점점 늘고있다고 합니다. 아예 신촌 모대학 한국어학당은 학생의 80%이상이 일본 여성이라고도 하네요. 30~40대 여성 만학도, 애들을 일본 현지에 맡겨놓고 한국어를 배우러온 열혈 유부녀도 제 주위에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겨울연가]는 '마케이누'들의 두가지 도피처, 이국취향과 노스탤지어 를 동시에 자극하는 작품입니다. 골치아픈 현실 대신 잘나갔던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연애와 결혼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케이누 욕망의 자극입니다.[겨울연가]의 성공비결도 상당부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할 수도 있죠.
그렇다면 [겨울연가]의 일본내 인기에 마냥 희희낙락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첫째로 [겨울연가]의 인기는 작품 자체의 우수함보다 '마케이누'의 향수에 힘입었다는 사실.이런 유행은 사실 발전보다는 퇴행에 가깝습니다. 한국을 전통문화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10년 20년 정도 뒤쳐진 일본 사회 정도로 오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향수는 쉽게 미화되고 쉽게 사라지는 법. 지속적으로 유지 개발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두번째로 마케이누들의 한국행이 새로운게 아니라는 점. 그들에게 인생을 리셋하는 해외여행이나 유학이 사실 새삼스러운게 아닙니다. 최근 '냉정과 열정사이'같은 이탈리아, 유럽을 무대로 한 로맨스 소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일본 여성의 한국행은 미국, 호주, 유럽 등로 향했던 마케이누 유학생들이 방향을 잠시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을 붙들어놓을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개발하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고 한국을 다시 떠날 겁니다.
[파리의 연인]이 7000만엔에 일본에 팔리면서, '욘사마'에 이은 '신사마(박신양)'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기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저곳 골목을 떠도는 마케이누(패배한 개)들이 과연 파리에 제대로 안착할지 저 개인적으로는 불안합니다. [겨울연가]의 인기는 사실 일본 사회의 발전이 아닌, 추억과 퇴행에 기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패배한 개'를 뜻하는 이 일본어는 37세의 컬럼니스트 사카이 준코(酒井順子)가 쓴 [패배한 개의 아득한 울부짖음(負け犬の遠吠え)]이라는 책에서 최초로 나온 말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마케이누는 '30대 이상으로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여자' 로 정의됩니다.
이들 30대 이상 독신 여성은 대부분 전문직의 커리어 우먼입니다. 10년 20년 가까이 전문분야에 종사하면서 능력도 인정받고 고액의 연봉을 받는 사람입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남자나 가정에 얽매일 일도 없습니다. 수입이 충분하므로 자신을 꾸미는데도 인색하지 않습니다. 일과 취미는 물론 식도락과 해외여행도 거리낄게 없습니다.
겉보기에 선망의 대상인 이들 커리어 우먼. 그런데 왜 '패배한 개'라고 불리는 걸까요.
다시한번 사카이의 책에서 인용해봅시다.
"아무리 일 잘하고 멋있게 살아도, 결국 결혼하지 못하면 '여자로서의 패배'다"
'마케이누'는 이른바 80년대 말 버블 경기의 산물입니다. 경기가 호황일수록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법. 당시 파릇파릇한 20대였던 젊은 여성들은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사회적으로 인정받습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해 럭셔리한 삶을 살수 있구요. 외국의 유명상표 장신구만 걸치는 이때 '명품족'도 나옵니다. 이때 유행한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을 꿈꾼다"는 책은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자연히 남자에게 얽매여 결혼할 필요도 없습니다. 피곤하게 애를 키울 일은 더더욱 없구요. 2000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30대 후반 여성 7명중 1명이 미혼 상태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90년대가 되자 버블은 붕괴했습니다. 경기가 위축되고 예전만큼 돈을 벌지도 못합니다. 돈씀씀이도 예전만 못합니다. 해외여행이나 식도락은 꿈도 못꿉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혼해 달라고 줄섰던 남자들도 사라지고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육체적 조건도 한계(리미트)에 다달았습니다. 인간관계도 줄어들고 외로워집니다.
결국 나이만 서른~ 마흔 먹고 정신차려보니 내 주위엔 벌어둔 돈도 남자도 아이도 가정도 없더라...이제 내 인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난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거지...이것이 바로 '마케이누'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결혼한 여자는 모두 '승리한 개'가 될까요? 사실 이들도 마케이누 예비군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죠. 핵가족에 이어 가족붕괴까지 벌어질 정도의 일본가정입니다. 결혼해서 맞벌이해도 남편은 무심하고 애새끼는 다 컸다고 혼자 놀고, 허망함을 느끼게 마련이죠.
많은 마케이누들이 선택하는 길은 두가지입니다. 한가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유학을 가는 것이죠. 모든 것을 리셋하고 먼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겁니다. 일종의 자기계발이라 할 수 있지만 현실도피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좋았던 과거'에의 노스탤지어 탐닉. 연애도 결혼도 돈벌이도 맘대로 할 수 있었던 젊었던 옛날을 회고하는 거죠. 현재 일본의 7~80년대 복고 바람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는 여기에 해당되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일본의 TV드라마는 10대 20대 여성의 취향에 맞은 달콤한 트렌디 드라마, 혹은 쿨하고 슬랩스틱한 코미디 드라마 정도죠. 30~40대가 10~20년전 누렸던 순애보적 신파 드라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겨울연가]가 나타났습니다. 20년전 일본 신파극 이야기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것도 첨단 촬영기법과 멋진 배우들을 동원해, 구닥다리가 아닌 세련된 21세기 신파극을 만들어낸 것이죠. 요모타 이누히코 교수는 "한국에는 일본에서 이미 끊어진 신파극과 엔카(트로트)의 전통이 살아있다"고 평합니다. 에비사와 가츠지 NHK사장의 지적은 더욱 상세합니다. "겨울연가는 20년전 일본에서 방송된 순애보 라디오 드라마를 연상케한다. 일본에는 그런 순애보 드라마가 사라졌다. 순수한 사랑에 목말라하던 일본 여성들에게 그것을 준 것이다."
[겨울연가]는 현재 일본 현지에서 젊은 여성이 아닌 30~40대 독신 또는 유부녀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한국을 찾는 일본 여성팬들의 수가 점점 늘고있다고 합니다. 아예 신촌 모대학 한국어학당은 학생의 80%이상이 일본 여성이라고도 하네요. 30~40대 여성 만학도, 애들을 일본 현지에 맡겨놓고 한국어를 배우러온 열혈 유부녀도 제 주위에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겨울연가]는 '마케이누'들의 두가지 도피처, 이국취향과 노스탤지어 를 동시에 자극하는 작품입니다. 골치아픈 현실 대신 잘나갔던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연애와 결혼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케이누 욕망의 자극입니다.[겨울연가]의 성공비결도 상당부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할 수도 있죠.
그렇다면 [겨울연가]의 일본내 인기에 마냥 희희낙락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첫째로 [겨울연가]의 인기는 작품 자체의 우수함보다 '마케이누'의 향수에 힘입었다는 사실.이런 유행은 사실 발전보다는 퇴행에 가깝습니다. 한국을 전통문화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10년 20년 정도 뒤쳐진 일본 사회 정도로 오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향수는 쉽게 미화되고 쉽게 사라지는 법. 지속적으로 유지 개발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두번째로 마케이누들의 한국행이 새로운게 아니라는 점. 그들에게 인생을 리셋하는 해외여행이나 유학이 사실 새삼스러운게 아닙니다. 최근 '냉정과 열정사이'같은 이탈리아, 유럽을 무대로 한 로맨스 소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일본 여성의 한국행은 미국, 호주, 유럽 등로 향했던 마케이누 유학생들이 방향을 잠시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을 붙들어놓을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개발하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고 한국을 다시 떠날 겁니다.
[파리의 연인]이 7000만엔에 일본에 팔리면서, '욘사마'에 이은 '신사마(박신양)'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기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저곳 골목을 떠도는 마케이누(패배한 개)들이 과연 파리에 제대로 안착할지 저 개인적으로는 불안합니다. [겨울연가]의 인기는 사실 일본 사회의 발전이 아닌, 추억과 퇴행에 기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출처] [펌] 「이노센스」 : 오시이 마모루 눈에 비친 한국 그리고 마케이누 |작성자 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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