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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스 : 오시이 마모루 눈에 비친 한국.

_______! 2013. 8. 5. 19:29

 나의 화장실^^ | ????

원문 http://blog.naver.com/hjy311/140007025962

「이노센스」 : 오시이 마모루 눈에 비친 한국.

전두환과 도쿄 계엄령

일본 헌법에 '계엄령'이란 없다. 전쟁과 군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본 평화헌법이다. 군대가 비상시 치안을 유지하는 계엄이 규정됐을 리가 만무했다.
1991년 당시 [패트레이버2]를 제작하던 오시이의 고민도 여기서 출발했다. 도쿄에 계엄령이 떨어지고 자위대가 진주하는 '정치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싶었던 오시이다. 머릿속 상상의 가짜 계엄령으로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계엄령'이었다.
해답은 간단했다. 계엄령은 물건너 바로 옆나라에서 왔다. 본의아니게 모델이 된 주인공은 바로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계엄령이 떨어진 적이 없던 일본 도쿄지만, 오시이에 따르면 계엄령에 준하는 상황은 딱 한번 벌어졌다고 한다. 1982년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이었다. 당시 도쿄 경시청은 산하 기동대는 물론이고 도쿄 근처 특수기동대와 관할기동대, 하다못해 파출소 근무 경찰관까지 차출해 임시로 제2기동대를 편성했다. 이들은 방일 며칠전부터 가스미가세키 근처의 라면집마저 영업정지시킬 정도로 과잉 경호를 벌여 악명을 떨쳤다. 공전절후의 '계엄 아닌 계엄'에 투입된 총예산은 8억9,200만엔(한화 약 10억원)이었다. 무릇 독재자는 그나라 뿐만 아니라 물건너까지 이웃에까지 민폐를 끼치는 법이다.
이처럼 오시이는 82년 전두환 대통령 방일을 모델로 계엄령에 필요한 자위대 병력을 계산해냈다. 그 병력은 완전무장한 2개 보통과연대(보병연대) 1,800명, 전차 90량, 장갑차 및 정찰차량 120량, 지휘차 및 특수차량 30량으로 산출됐다. [패트레이버2]의 충격적인 '도쿄 계엄령'은 이렇게 재현됐다. 

오시이는 여기에 부인할 수 없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계엄은 머나먼 과거에 벌어진 극히 드문 사건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 나라의 이웃인 동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은 대부분 최근까지 계엄령 하에 있든지, 혹은 상시 계엄체제였다."

한국, 패배한 개가 갈 수 있는 곳

오시이에게 있어 한국의 의미는 당시 다른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일본의 모습을 간직한 동아시아 어딘가의 한 나라'에 불과하다. 그것은 굳이 한국이 될 필요는 없었고, 대만, 홍콩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특별히 구분되지도 않았다.
이는 때로 계엄령이라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연상시키는 독재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추억이라는 노스탤지어 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두환을 모델로 삼은 오시이의 도쿄 계엄령이 전자의 예라면, [총몽](1989)의 작가 키시로 유키토가 폐허가 된 서울의 청계천을 '고철마을'의 모델로 삼은 것은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의 작가들에게 있어 동아시아는 종종 60~70년대 일본으로 대표되는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 재발견되었다.
그것은 30년전 일본에서 혁명을 꿈꾸었던 무라카미 하루키나 오시이 마모루 등 실패한 혁명가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이 한창 혁명을 꿈꾸었던 30년전 일본은 이제 없다. 현대화된 21세기 미래도시 도쿄에 패배한 개들이 갈곳은 없다. 
길잃은 개는 그래도 본래 자신이 있던 옛 보금자리를 찾게 마련이다. 귀소본능은 개의 오랜 습성중 하나이니까. 보금자리를 찾던 개들은 노스탤지어를 찾아 때론 대만 타이페이의 시장을 찾는가하면, 때론 한국 서울의 뒷골목으로 흘러들어갔다.

오시이의 91년작 실사영화인 [케르베로스]의 어번 타이틀은 길잃은 개의 사진으로 시작된다. 제작진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대만 타이페이 뒷골목을 헤메는 개, 쓰레기통을 뒤지는 개, 길에서 낮잠자는 개,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는 똥개들이다. 현대화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진 지저분한 존재들. 말끔하게 정비된 오늘날 현대 도시 도쿄에는 있을수 없는 존재다. 
한국을 찾은 오시이가 서울과 부산의 거리에서 맨 처음 발견한 것도 바로 길거리의 똥개였다. 2000년 부산 국제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오시이는 부산 뒷골목의 잡종견을 발견하고 남달리 귀여워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2001년 서울을 찾았을 때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의 애완견 상점을 찾았다.
오시이는 93년 도쿄를 떠나 아타미로 이사갔다. "도쿄는 이미 개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라는 한마디를 남긴채...
패배한 개 오시이는 도쿄를 버리고 동아시아를 선택했다.

용가리와 한류

오시이에게 비친 또다른 한국의 첫인상은 '하청'이다. 오시이가 활약했던 80~90년대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하청작업이 한창이던 때이기도 하다. 한국은 저렴한 인건비와 뛰어난 손재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동화와 채색, 촬영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 하청을 주지 않는 애니메이션 회사나 감독은 드물었다. 하청작업 의뢰에 있어서는 오시이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 보낸 원화나 동화가 가끔씩 없어지는 일이 있었다"며 "마음에 드는 원화는 책상속에 따로 보관해두지 않으면 안됐다"고 술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대한 오시이의 인상은 이정도에 그쳤던 모양이다.

그러나 90년대 말 일본에 불어닥친 한국영화의 붐은 오시이의 생각도 바꾸게 된다. 오시이는 최근 일본에서 개봉된 한국영화에 대해 대체로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첫 타자는 엉뚱하게도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1999)였다.
오시이는 2001년 2월 자신의 영화 [아바론]의 한국 홍보차 내한한 자리에서 [용가리]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글쓴이에게 "[용가리]에 사용되는 디지털 장비 '도미노'는 [아바론]과 같은 것"이라며 "다만 도미노의 사용법은 용가리와 정반대"라고 강조했다. 당시 [용가리]는 아직 일본 개봉도 되지 않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용가리]에 대한 오시이의 관심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용가리]와 [아바론]은 서로 닮은 곳이 많다. 두 작품은 모두 SFX영화이며, 한국영화, 일본영화라는 범주를 뛰어넘은 국제적 영화다. 제작도 일본이나 한국이 아닌 외국 배우와 해외로케로 이뤄졌다. 대사도 자국어가 아닌 영어와 폴란어로 녹음됐다. 두 작품의 감독 역시 순수 영화계 출신이 아닌 애니메이션 감독과 연예인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작품 모두 2001년 초에 같은 영화사에 의해 국내 개봉됐다는 점도 이채롭다.

그가 최근 "대단하군. 한국영화는"이라며 호평한 한국 영화는 [반칙왕](2001)이다. 오시이의 [반칙왕] 평은 코미디 영화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된다. 그는 "불특정 다수를 웃겨야 하는 코미디 영화는 관객이 공유하는 시대 분위기를 잘 그려내지 않으면 안된다"며 전제한 후 "[반칙왕]의 시나리오는 매우 고전적이지만, 프로레슬링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코미디 영화"라고 높이 평가한다. 프로레슬링의 열렬 팬인 오시이 본인의 취향이 반영됐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영화속 레슬링 액션에 대해서도 "(김지운) 감독은 코미디 영화야말로 액션을 빼놓아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며 호평했다.
그는 또 [반칙왕]을 예로 들며 일본영화계에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시이는 "일본 사회에는 공유할 수 있는 시대 분위기나 일체감이란 것이 이미 사라졌다"며 "따라서 오늘날 일본영화계에는 코미디 영화가 나올 수 없다"고 혹평하고 있다.

한국의 핵잠수함이 일본을 핵미사일로 공격한다는 내용의 한국영화 [유령]도 오시이의 눈길을 끈다. 다만 그가 주목하는 건 영화속 반일감정이나 역사왜곡 문제가 아니다. 그 이전에 두루뭉실한 잠수함의 고증이 문제다. 그는 "[유령]에 등장하는 러시아제 잠수함이 아쿨라급인지 타이푼급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결국 끝까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며 "제대로된 폴리티컬 픽션(군사 영화)을 만들겠다면, 적어도 군사적 고증이나 디테일 정도는 확실히 해 두 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한다. [패트레이버] [공각기동대]등 정치-군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어낸 오시이다운 지적이다.

수많은 '김상'들

그의 최신작 [이노센스]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한국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중간에는 자신의 소설 [야수들의 밤]의 한국어 번역본이 살짝 등장해 보는 이를 웃음짓게 만든다. 또한 극중 중요 등장인물 중 하나로 해킹전문가인 '킴(KIM)'은 설정상 한국계로 묘사되고 있다.
극중에서도 바토가 용의자를 취조하는 장면에 재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김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싶은데..."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 거리에는 얼마든지 있는걸."
"김은 많을지 몰라도 내가 찾는 김은 오로지 하나뿐이야." 


프로덕션 IG의 이시카와 미츠히사 사장은 "오시이 감독은 이 장면의 힌트를 한국 여행중에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시카와에 따르면 오시이 감독이 2000년 한국에 처음 왔을때 일본어 통역은 김씨였다. 어느날 오시이가 일이 있어서 "김상"하고 불렀더니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절반이 뒤돌아봤다는 것. "한국에는 김이란 성씨가 그렇게 많은줄은 몰랐다"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연결되는 것 아닐까"라고 술회했다.

오시이가 그리는 미래 세계는 국경이 없어지고 문화가 뒤섞인 네트워크화이다. "미래가 되면 한국 일본 대만 중국 구분 없이 뒤섞이게 될 것"이며 "그럴수록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오시이의 전망이다. 오시이가 그리는 미래세계에는 이미 한국도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패배한 개'와 '겨울연가'

최근 일본을 달구는 유행어중 하나는 '마케이누(負け犬)'입니다.
'패배한 개'를 뜻하는 이 일본어는 37세의 컬럼니스트 사카이 준코(酒井順子)가 쓴 [패배한 개의 아득한 울부짖음(負け犬の遠吠え)]이라는 책에서 최초로 나온 말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마케이누는 '30대 이상으로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여자' 로 정의됩니다.

이들 30대 이상 독신 여성은 대부분 전문직의 커리어 우먼입니다. 10년 20년 가까이 전문분야에 종사하면서 능력도 인정받고 고액의 연봉을 받는 사람입니다.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남자나 가정에 얽매일 일도 없습니다. 수입이 충분하므로 자신을 꾸미는데도 인색하지 않습니다. 일과 취미는 물론 식도락과 해외여행도 거리낄게 없습니다. 

겉보기에 선망의 대상인 이들 커리어 우먼. 그런데 왜 '패배한 개'라고 불리는 걸까요.
다시한번 사카이의 책에서 인용해봅시다.
"아무리 일 잘하고 멋있게 살아도, 결국 결혼하지 못하면 '여자로서의 패배'다"

'마케이누'는 이른바 80년대 말 버블 경기의 산물입니다. 경기가 호황일수록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법. 당시 파릇파릇한 20대였던 젊은 여성들은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사회적으로 인정받습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해 럭셔리한 삶을 살수 있구요. 외국의 유명상표 장신구만 걸치는 이때 '명품족'도 나옵니다. 이때 유행한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을 꿈꾼다"는 책은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자연히 남자에게 얽매여 결혼할 필요도 없습니다. 피곤하게 애를 키울 일은 더더욱 없구요. 2000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30대 후반 여성 7명중 1명이 미혼 상태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90년대가 되자 버블은 붕괴했습니다. 경기가 위축되고 예전만큼 돈을 벌지도 못합니다. 돈씀씀이도 예전만 못합니다. 해외여행이나 식도락은 꿈도 못꿉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혼해 달라고 줄섰던 남자들도 사라지고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육체적 조건도 한계(리미트)에 다달았습니다. 인간관계도 줄어들고 외로워집니다.
결국 나이만 서른~ 마흔 먹고 정신차려보니 내 주위엔 벌어둔 돈도 남자도 아이도 가정도 없더라...이제 내 인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난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거지...이것이 바로 '마케이누'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결혼한 여자는 모두 '승리한 개'가 될까요? 사실 이들도 마케이누 예비군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죠. 핵가족에 이어 가족붕괴까지 벌어질 정도의 일본가정입니다. 결혼해서 맞벌이해도 남편은 무심하고 애새끼는 다 컸다고 혼자 놀고, 허망함을 느끼게 마련이죠.

많은 마케이누들이 선택하는 길은 두가지입니다. 한가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유학을 가는 것이죠. 모든 것을 리셋하고 먼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겁니다. 일종의 자기계발이라 할 수 있지만 현실도피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좋았던 과거'에의 노스탤지어 탐닉. 연애도 결혼도 돈벌이도 맘대로 할 수 있었던 젊었던 옛날을 회고하는 거죠. 현재 일본의 7~80년대 복고 바람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는 여기에 해당되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일본의 TV드라마는 10대 20대 여성의 취향에 맞은 달콤한 트렌디 드라마, 혹은 쿨하고 슬랩스틱한 코미디 드라마 정도죠. 30~40대가 10~20년전 누렸던 순애보적 신파 드라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겨울연가]가 나타났습니다. 20년전 일본 신파극 이야기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것도 첨단 촬영기법과 멋진 배우들을 동원해, 구닥다리가 아닌 세련된 21세기 신파극을 만들어낸 것이죠. 요모타 이누히코 교수는 "한국에는 일본에서 이미 끊어진 신파극과 엔카(트로트)의 전통이 살아있다"고 평합니다. 에비사와 가츠지 NHK사장의 지적은 더욱 상세합니다. "겨울연가는 20년전 일본에서 방송된 순애보 라디오 드라마를 연상케한다. 일본에는 그런 순애보 드라마가 사라졌다. 순수한 사랑에 목말라하던 일본 여성들에게 그것을 준 것이다."

[겨울연가]는 현재 일본 현지에서 젊은 여성이 아닌 30~40대 독신 또는 유부녀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한국을 찾는 일본 여성팬들의 수가 점점 늘고있다고 합니다. 아예 신촌 모대학 한국어학당은 학생의 80%이상이 일본 여성이라고도 하네요. 30~40대 여성 만학도, 애들을 일본 현지에 맡겨놓고 한국어를 배우러온 열혈 유부녀도 제 주위에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겨울연가]는 '마케이누'들의 두가지 도피처, 이국취향과 노스탤지어 를 동시에 자극하는 작품입니다. 골치아픈 현실 대신 잘나갔던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연애와 결혼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케이누 욕망의 자극입니다.[겨울연가]의 성공비결도 상당부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할 수도 있죠.

그렇다면 [겨울연가]의 일본내 인기에 마냥 희희낙락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첫째로 [겨울연가]의 인기는 작품 자체의 우수함보다 '마케이누'의 향수에 힘입었다는 사실.이런 유행은 사실 발전보다는 퇴행에 가깝습니다. 한국을 전통문화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10년 20년 정도 뒤쳐진 일본 사회 정도로 오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향수는 쉽게 미화되고 쉽게 사라지는 법. 지속적으로 유지 개발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두번째로 마케이누들의 한국행이 새로운게 아니라는 점. 그들에게 인생을 리셋하는 해외여행이나 유학이 사실 새삼스러운게 아닙니다. 최근 '냉정과 열정사이'같은 이탈리아, 유럽을 무대로 한 로맨스 소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일본 여성의 한국행은 미국, 호주, 유럽 등로 향했던 마케이누 유학생들이 방향을 잠시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을 붙들어놓을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개발하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고 한국을 다시 떠날 겁니다.

[파리의 연인]이 7000만엔에 일본에 팔리면서, '욘사마'에 이은 '신사마(박신양)'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기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저곳 골목을 떠도는 마케이누(패배한 개)들이 과연 파리에 제대로 안착할지 저 개인적으로는 불안합니다. [겨울연가]의 인기는 사실 일본 사회의 발전이 아닌, 추억과 퇴행에 기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