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봉
박 두 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人跡)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도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시구연구
♣ 산새도 날아와 ~ 오지 않는다 ; 절대적 고독과 적막감
♣ 홀로 앉은 : 주체가 화자일 수도 있고 산일 수도 있다
♣ 가을산의 어스름 : 소멸과 성찰의 시공간
♣ 호오이 호오이 : 고독감의 영탄적 표현
♣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보나 ; 부를 대상이 없음(외로움)
♣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 외로움의 확인
♣ 산그늘 길게 ~ 밤은 오리니 :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고독의 심화
♣ 삶은 오직 ~ 괴로울 뿐 :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에 대한 내면적 성찰
♣ 그대 : 절대적 구원의 존재
♣ 밤 : 근원적 고독에 대한 성찰의 시간,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
♣ 쉬느뇨 : ‘그대’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현
핵심정리
* 성격: 관조적, 사색적, 서정적
* 심상: 시각적, 청각적 심상
* 어조: 독백적 어조
* 구성
가을 산의 적막함(1-3연)-공간적 배경 묘사
외로운 심정(4-8연)
'그대'를 그리는 소망(9-10연)
* 출전: (시집 <해>, 1949)
* 주제: 인생 본연의 외로움과 적막함
그리움에 지친 절망감과 고독감
감상포인트
▶ 특징: 박두진의 시 가운데 산문적인 요소를 절제하여 나타냈으며 어미의 과감한 생략으로 시적 여운의 효과를 거둠, 명사 마감 →절제된 느낌
▶ 시상전개
①석양 무렵부터 황혼,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
②원경에서 근경으로 묘사됨
박두진 [朴斗鎭, 1916.3.10~1998.9.16]
1916년 3월 10일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 호 혜산(兮山).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1946년부터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래,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연세대·우석대·이화여대·단국대·추계예술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을 역임. 저서에 《거미의 성좌》 《고산식물》 《서한체》 《수석연가》 《박두진문학전집》 등이 있다.
참고(박두진의 시 세계]
평생을 지고한 윤리의식과 역사의식,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우주의식 속에서 살다 간 혜산의 ‘휘황한 빛’의 세계는 한국 문학사나 정신사 속에서는 매우 개성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세계다. 그의 시 세계 앞에서 한국 문학사나 정신사는 그 전통적인 ‘어둠’의 정신과 ‘음’(陰)적인 달빛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한국의 전통적인 ‘달빛’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그 나름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을 테이지만, 한편으로는 ‘양’(陽)적 세계를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상에 언젠가 내릴 천상의 세계가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인에게 ‘휘황한 빛’의 세계이다. 박두진은 모든 어둠과 그림자로 상징되는 인간의 나약성과 무지와 어리석음을 완전히 태워 내는 절대 정화의 빛, 천국의 빛을 휘황하게 노래함으로써 예언자적인 시적 이력을 마감했다.
참고
고독이 시 창작의 계기가 되는 작품들
삶의 외로움 : 박두진의 '도봉', 황동규의 '기항지'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삶의 쓸쓸함을 노래한 작품이다. '도봉에서는 '가을 산'의 고요함을 배경으로 하여, 실현되지 않은 소망으로 인해 삶은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갈수록 괴로울 뿐이라고 읊조리고 있다. '기항지'는 쓸쓸한 '겨울 항구'를 배경으로 하여, 삶의 쓸쓸함과 황량감을 표현하고 있다.
도시의 고독 : 김광균의 '외인촌', '와사등'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절망과 비애를 그린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시각적 이미지가 감각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감상적 색채를 띠는 형용사들(하이얀, 고독한, 가느란, 여윈, 퇴색한 / 슬픈, 창백한, 비인, 무거운)이 사용되어 시 전체의 분위기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아버지의 고독 :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 박목월의 '가정'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고독을 그린 작품이다. 힘든 현실 속에서 가장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것은 힘겹지만, 그래도 자식과 가정에 대한 사랑을 지켜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쓸쓸한 어조로 형상화되어 있다. '아버지의 마음'의 시적 화자는 아버지를 3인칭으로 묘사하여 모든 아버지들의 보편적인 고독과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는 데 비해,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시적 화자가 되어 아버지 역할의 힘겨움과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진단평가>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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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내 어릴 적 산골 학교 미술 시간에
나는 푸른 크레용으로 옥토끼 모양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 놓고 그 안에 울긋불긋 우거진
단풍잎과 맑은 시내를 그렸었다.
산머루향이 교실까지 날아들던 오후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처녀 선생님은
가을 산꽃이 지고 해으름이 일고
그 가을내 나는 선생님의 눈물방울과 같은
단풍잎과 맑은 시냇물 속에 뛰놀았지만
돌아서서 눈물 훔치던 선생의 뒷모습과
㉠나를 쳐다보던 충혈된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그래 단풍잎은 지고 세월은 가고
이제는 선생이 된 내 앞에서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그림을 그린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슬픔의 푸른 크레용으로
둘러친 동강 난 내 땅 내 그리운 하늘
아이들은 평상의 얼굴로
반쪽의 땅 위에 단풍잎을 채우고
나는 충혈된 눈으로 아이들을 보았다.
눈을 뜨고 모른다며 살아온 날들이 가슴 후비는 날
가만히 손가락으로 그려보는 내 땅 내 그리운
하늘 아래 나는 이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내 손으로 그린 내 땅 안에 허름하게 시든
단풍잎 하나 떨구는 것을 거부하면서
㉡끝내는 잊혀진 옛 선생님의 눈물마저 되살아나
동강 난 눈물방울들이 산과 바다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뒤덮었다.
- 곽재구, ‘20년 후의 가을’ -
(나)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 박두진, ‘도봉’ -
(다)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그늘 지고 산들
산이겠느냐.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이제는
간 데 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지금은
온 데 없다.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어제는 온종일 진눈깨비 뿌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리는 폭설.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 하나 떨 뿐인데
어제는 온종일 난을 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릴 들었다.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 오세영, ‘겨울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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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②
① (가)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드러나 있다.
② (나)에는 담담한 어조로 그리움과 짙은 우수를 나타내고 있다.
③ (가)와 (나)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감정의 추이가 표현되어 있다.
④ (나)와 (다)에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화자의 태도가 나타나 있다.
⑤ (가)~(다)에는 현재의 결핍 상태를 보상받기 위한 장치로 이상향이 설정되어 있다.
2. 다음을 (가)의 창작 노트라고 할 때, 시인이 고려했을 사항으로 볼 수 없는 것은? ▶ ④
3. (나) 화자의 심리적 상황과 가장 유사한 것은? ▶ ②
① 함께 잡은 손으로 따스하게 번져오는 / 온기를 주고받으며 / 겉옷을 벗어 그대에게 가는 찬바람 막아주고 / 얼어붙은 내 볼을 그대의 볼로 감싸며/ 겨울을 이겨내는 / 그렇게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 도종환,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
② 저녁 해는 지고서 어스름의 길, / 저 먼 산엔 어두워 잃어진 구름, / 만나려는 심사는 웬 셈일까요, / 그 사람이야 올 길 바이 없는데, / 발길은 누 마중을 가잔 말이냐. / 하늘엔 달 오르며 우는 기러기
- 김소월, ‘만나려는 심사’ -
③ 이맘때쯤 다시 만나기로 하자. / 이제 여기서 헤어지고 나면 / 가을 깊어가고 겨울이 오고 / 또 몇 백년 강물이 흐른 뒤 / 야무나 강이든 갠지스강이든 / 저 멀리 남한강이든 / 그 강물 흘러가는 / 어디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자.
- 오탁번, ‘타지마할’ -
④ 강가에서 / 세월이 많이 흘러 / 세상에 이르고 싶은 강물은 / 더욱 깊어지고 / 산그림자 또한 물 깊이 그윽하니 / 사소한 것들이 아름다워지리라. / 어느 날엔가 / 그 어느 날엔가는 / 떠난 것들과 죽은 것들이 / 이 강가에 돌아와 / 물을 따르며 / 편안히 쉬리라.
- 김용택, ‘강가에서’ -
⑤ 나는 그대 등뒤로 내리는 / 봄눈을 바라보지 못했네. / 끝없이 용서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 그대 텅 빈 가슴의 말을 듣지 못했네. / 새벽은 멀고 / 아직도 바람에 별들은 쓸리고 / 내 가슴 사이로 삭풍은 끝이 없는데 / 나는 그대 운명으로 난 길 앞에 흩날리는 / 거친 눈발을 바라보지 못했네.
- 정호승, ‘봄눈’ -
4. (다)에 대한 감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②
① ‘산’은 고독과 단절의 공간이므로 허무감을 느낄 수 있어.
② 화자의 어조를 통해서 열정적인 삶의 자세를 느낄 수 있어.
③ 설의적 형식을 통해 나타난 화자의 달관적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어.
④ 한 폭의 동양화 같이 묘사된 풍경 속에서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어.
⑤ 일상적 삶을 통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화자의 내면을 느낄 수 있어.
5.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④
① ㉠ : 분단 상황에 대한 선생님의 현실 인식을 나타낸다.
② ㉡ :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변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③ ㉢ : 가을 산의 풍경을 통해 화자의 고독한 내면세계를 드러낸다.
④ ㉣ : 황혼이 되면 다가올 평온과 안식의 시간을 의미한다.
⑤ ㉤ : 화자의 정황을 ‘홍시’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표현하고 있다.
-출처- 똥침국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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