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세종로의 옛 미국공사관. 2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수녀원. |
19세기 말 등장한 벽돌조 한옥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내에 있는 번사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기 벽돌조 건물이다. 1884년 준공된 번사창은 무기제조소와 창고로 쓰였던 건물이다. 짙은 회색의 전벽돌과 붉은색의 적벽돌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 조형적으로도 아름답다. 돌출된 아치에 사용된 이형벽돌과 화강석의 조합은 벽돌 사용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건물 내부는 기둥을 사용하지 않도록 서양식 트러스 구조를 응용하고 있다.
1900년에 건립된 강화성공회성당도 대표적 벽돌조 한옥이다. 지붕면을 정면으로 하는 전통적인 한옥과는 달리 삼각형의 박공면 지붕을 주 출입구로 두었다. 기독교 교회의 전형적인 바실리카식 평면 구성을 통해 서양의 종교 의식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측면 벽체를 붉은 벽돌로 쌓고 그 사이 사이에 기둥을 설치했다. 지붕은 2층의 겹처마를 이용한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기둥은 붉게 칠하고 서까래와 벽면 위의 창방은 푸르게 칠한 단청은 측면벽체의 붉은 벽돌과 잘 어울린다. 근대기 동서양 문화의 완벽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1883년 한국에 온 초대 미국공사 루셔스 푸트(1826~1913)는 민영교와 민계호 등의 집을 사들여 미국 공사관(사진 1)으로 사용하였다. 1900년경 수리하면서 벽체를 벽돌로 고쳤다. 민영익의 아들 민규식이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는 가회동 윤보선 가옥 역시 1870년대에 벽돌조로 지어졌다.
서울 북촌은 벽돌이 사용된 ‘도시형 개량형 한옥’ 밀집지역이다. 1930년대 이른바 ‘집장사’들은 유리·함석·타일과 함께 벽돌 등 근대적인 재료를 많이 사용했다. 흰색의 회벽을 바탕으로 수직 기둥과 수평의 인방으로 이루어진 목조가구식 구성의 벽체가 붉은색의 벽돌벽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벽체 구성의 변화에도 불구, 목재 서까래와 기와지붕으로 말미암아 벽돌조라도 한옥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벽돌조 한옥은 구조적 안정뿐만 아니라 단열처리 등 현대 설비의 처리에 있어서도 유리한 점이 있다. 목재 기둥의 굵기를 가늘게 함으로써 축조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다.
벽돌조 한옥은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1956년에 지어진 한남대학교 인돈학술원은 벽돌조 한옥에서 서양인들이 어떻게 현대생활을 영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전쟁에서 파괴되어 1960년 새롭게 신축한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수녀원(사진 2)에서도 벽돌조 한옥의 절제된 미학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근대기 재료라고 알려진 벽돌은 낙랑의 벽돌무덤에서부터 백제의 무령왕릉, 신라의 전탑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재료였다. 우리나라 건축에 있어서 벽돌구축에 대한 기술력은 1794~1796년의 수원 화성(華城) 축조 기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벽돌이 목조건축의 측벽이나 후면벽 등에 부분적으로 사용된 것은 이미 18세기 후반 지어진 종묘의 공신당과 칠사당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세기에는 석파정 별당채(1863), 창덕궁 선향재(1828), 경복궁 집옥재(1868), 덕수궁 정관헌(1900) 등 궁궐에서도 활발하게 벽돌이 이용되었다.
서양에서도 르네상스 건축시대를 열게 된 것은 결국 벽돌 덕분이었다.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 사용되었던 대리석을 사용하기에는 건물의 내부 공간이 이미 너무 커졌고 재료 자체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정한 크기에 대량생산이 쉽고 운반과 시공이 용이했던 벽돌은 피렌체의 경제 발전에 따른 폭발적인 건축물의 신축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 또 테라코타를 이용하여 대리석처럼 마감을 함으로써 완벽하게 그리스·로마 양식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한옥은 고려나 조선시대 역사 속에 고정된 하나의 건축양식이 아니다. 생활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주거양식이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한옥은 과거의 생활로 가기 위한 회귀의 대상이 아니라,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집과 공공건물이다. 따라서 다양한 요구를 무시하고 일정한 형식과 고정된 틀만을 고집한다면 국민적 호응을 받을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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