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필담

_______! 2014. 12. 10. 15:43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now&no=8136


찐원쉐[金文學]라는 간도출신 조선족 학자의 전공은 비교문화의 영역이다. 

그래서 이 양반은 한국에서도 살고 중국에서도 연구하다가 지금은 일본 히로시마 대학에서 교수 노릇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세 나라의 문화와 습속을 비교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글을 많이 써 왔다. 그 저술들이 모여서 [비교문화 삼국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등의 책이 되었는데 개중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몇 개 뽑아 본다.


#1.

태평양전쟁 때, 만주에서 숙영중이던 어떤 관동군 병사가 보초를 서다가 계란이 되게 먹고 싶었댄다. 그러나 초소에 계란 따위가 있을 리 없고... 그렇다고 본영으로 돌아갔다간 근무지 이탈로 죽도록 맞든지 아니면 심지어 군기위반이라고 즉결처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배고픈 이 친구가 꾀를 내어 아예 한 마장쯤 떨어진 중국인 마을로 내뺐다. 보기에 제일 그럴듯한 집 대문을 힘차게 두들겼다. 쾅쾅쾅쾅.

[쉐야?(언놈이여?)]

마을 촌장은 웬놈이 야심한 밤에 문을 두들기나 하며 나왔다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웬 각반한 일본군이 총검을 하나 꼬나매고 떡하니 서 있으니까 말이지. 마을 사람들 오밤중에 난리 났다. 저시키 혹시 요새 그 사람 잡아간다는 하얼빈 부대 그놈 아이가?

그런데 답답한 것은 이 병사 양반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자기는 중국어를 잘 못하는 것이다. (당시에 관동군에는 아예 니하오마? 말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놈들도 많았다) 하지만 워낙 잔머리 잘 돌아가는 친구고 중국 와서 주워들은 글발은 있는지라, 땅바닥에 이렇게 썼다. (일본도 한자 문화권이긴 하다)

[아욕식대란다수(我欲食大卵多數)] - 큰 계란 많이 먹고싶소.

완벽한 중국어는 아니지만 대충 뜻은 통했다. 그런데 이 촌장 할배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그리고는 지필묵을 청하더니 이렇게 썼다. 

[몰유대란(沒有大卵)] - 없어 그딴거!

이 병사, 뭔가 이상하다 싶다. 저기 닭장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닭은 다 뭔데 싶은데 이 촌장 할배 얼굴색이 금방 숨넘어갈 정도로 안절부절못하다. 혹시 내가 너무 많이 요구했나 싶은 이 병졸은 붓을 들어 다시 이렇게 썼다.

[소란소수(小卵少數)] - 작은계란 조금만 내놔.

근데 마을 사람들 이걸 보니까 더 난리가 났다. 마을 사람들이건 병졸이건 전부 우왕좌왕하는 상황. 더 소란이 커졌다간 부대에서 탈영한 게 들통나게 생겼다. 그때서야 저 너머에서 글공부깨나 한 걸로 보이는 인텔리 선생 하나가 끄적끄적 걸어 오더니 일본어를 한다.

[병사, 당신 요구가 뭐요?]
[아 이제 말 통하는 사람 왔네. 아니 이 동네는 계란도 없슈?]

이 선생, 땅바닥과 지필묵을 번갈아 보더니 한 마디 한다.

[병사 양반, 중국말로 란(卵)은 남자의 XX란 뜻으로 말한다오.]

마을 사람들이 난리날 법 했지. 가뜩이나 일본군이 쿠즈[鬼子]라 욕을 먹을 정도로 여기저기 만행을 일삼으며 천둥 벌거숭이로 온 중국을 뒤집고 다니는데, 오밤중에 웬놈이 총창을 하나 덜렁 들고 나타나 마을 남자들 죄다 고자로 만들고 그걸 잘라 먹겠다니.


#2.

일본 종합상사 직원 하나가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체류기간이 좀 길어지면서 고국에 편지나 엽서를 보내려 하던 차에 (일본 애들 특징이다. 여행지에서 항상 엽서를 보낸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두고 [경험의 공유], 즉 일본인들의 떼거리 습속의 연장선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마침 객실에 편지지가 없어서 종업원을 불렀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종업원에게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어는 더더욱 통할 리 만무하다. 지배인을 부를깝쇼 하다가 귀찮아서 메모지에다 편지라고 한자로 썼다. 그런데 어째 이 종업원 표정이 야릇해진다. 어쨌든 종업원은 어디론가 갔다 오더니 뭔가를 불쑥 내민다.

그것은 화장실용 두루마리 휴지였다.

그런데 일본 샐러리맨이 중국 가면 이런 일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난단다. 그러니까 일본은 편지를 테가미[手紙]라고 하는데, 이게 중국에서는 화장실용 휴지를 일컫는 말.


#3.

이번에는 일본 기업인들이 떼거지로 북경에 갔다. 특급 호텔 - 반점이라고 한다 - 에 숙박하고 낮엔 스케줄대로 바쁘게 움직이다가 저녁에 숙소로 돌아왔는데 개중에 한 방문객이 엉뚱한 것을 기억해냈다. 낮에 움직이다가 이용한 중국의 공중화장실은 유료로 되어 있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혹시 이 호텔 화장실도 유료인가 싶어 이 양반, 호텔 종업원더러 필담을 시도했다.

[변소, 유료, 무료?]

그러자 이 종업원은 한참 생각하더니 메모지에 이렇게 썼다.

[유료. 비상이 많음.(有料, 非常多)]

그러자 이 임원은 생각하기를.

[또 동전 잔뜩 바꿔놔야겠군.]

그런데 좀 있다 이 일본 기업단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누가 찾아와 노크를 했다. 일본어 통역을 하는 중국인이이었다.

[종업원에게 말해 준 이야기를 호텔 지배인이 듣고 당신네들과 비즈니스를 할 생각인데,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당신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미는 소리에 이 임원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무슨 프로젝트요?]
[아까 비료에 대해 말씀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엥?]

일본인이 아까 종업원이란 작자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니 이 통역 포복절도하다 못해 겔겔거리며 숨넘어간다. 해설인즉슨, 중국어에서 유료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재료가 있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즉 이 종업원과 지배인은

[호텔 변소에서 생산되는 비료(인분)가 있는가? 있다면 당신네들의 분뇨를 우리가 독점으로 수급하고 싶은데.]

라고 해석해버린 것이었다.


#4.

한 일본인이 중국의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하나 받았다. 그게 서예 액자였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금옥만당(金玉滿當)] - 집에 돈과 재물이 꽉 꽉 차도록 번성하길...

그런데 이 일본사람 한동안 열받아서 연락을 뚝 끊었댄다.

이 사람이 해석한 뜻은

[니 XX 방구석 다 채우도록 굵다.] 일본어로 금옥은 남자 쌍방울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라 한자만 알면 뜻이 통하고 비즈니스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유럽언어가 공통적으로 수천단어를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으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만 알면 유럽 어디를 가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된다는 식의 궤변이죠.

문제하나 내드리겠습니다.

NIHIL SINE MAGNO LABORE VITA MORTALIBVS DAT.

라틴어 한구절입니다.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여기 있는 라틴어 단어들은 SINE 하나 빼고는 전부 오늘날 영어단어에 비슷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힌트로 SINE는 영어의 without에 해당합니다. 한자사용을 주장하는 논리 그대로라면 토익 800점을 득점요령 부리지 않고 넘을 영어실력이면 이정도 라틴어 어구는 해석이 가능해야합니다.

동아시아 3국이 한자를 오랜세월 써 왔지만 같은 글자라도 그 뜻이 다른게 수없이 많고 용법조차 다른게 부지기순데 고작 한 3~4천 글자 안다고 지나 및 그 떨거지 국가들과 교역하는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같은 지나 안에서도 북경어와 광동어는 서로다른 외국어로 취급될 정도로 문법체계마저 다르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싱가폴까지 가게되면 이제는 발음이 완전히 다를 정도죠. 물론 지나본토에서 쓰는 간자체는 우리가 배우려는 한자와는 생긴것도 달라서 도무지 짐작조차 안되는 글자들 투성이이고. 이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만 있으면 한자를 쓰자고 주장해대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긴 이런 어르신들 중에는 유전자 분석결과를 근거로 우리민족과 북방민족이 친척관계라고 말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 야만인들과 같은 종족이냐고 하는 것이죠. 아직도 우리는 소중화라고 자부하던 17세기에 살고계신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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