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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호쿠 대지진 발생 3일 후인 2011년 3월 14일 오후 11시 경, 주일 미국 대사관의 존 루스 대사는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과의 전화회담에서 "미국의 원자력 전문가를 관저에 상주시켰으면 좋겠다" 는 제의를 해 왔다. 일본의 원전사고 수습 작업의 진행을 믿지 못한 것이다.
미국은 본국에서도 후지사키 이치로 주미 대사를 몇 차례고 소환해 사고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미국이 가장 우려한 문제는 후쿠시마 제 1 원전 4호기의 핵연료 풀이었다.
주일 미국대사관은 2011년 3월 17일 후쿠시마 제 1 원전에서 50마일 내에 소재한 미국 국민들에게 피난 권고를 발령했다. 50마일이라면 미터법으로 80km 가 된다. 일본 정부가 발령한 피난권고지역에 비해 거리로는 4배, 면적으로는 16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일본에서는 자국의 피난령이 (=상황파악이) 충분치 못했다는 듯한 제스처로 여겨졌지만, 미국에게도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미국 원자력 규제위원회의 그레고리 야스코 위원장이 미국의 피난 권고 발표 하루 전인 16일에 "풀의 물이 텅 비었다" 고 발언했던 것이다.
4호기의 핵연료 풀에는 사용하지 않은 연료 204개와 사용후 핵연료 1331개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용후 연료 가운데 548개는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원자로 내에 있던 연료봉이었다.
따라서 4호기의 핵연료 풀에 저장된 핵연료의 붕괴열은 3호기의 풀에 저장된 핵연료보다 4배나 높았다.
풀의 핵연료는 원자로 내에 장입되었을 때와 달리 강철제 압력용기나 콘크리트제 격납용기로 보호를 받지 않는다. 또 풀을 감싸는 원자로 건물은 3월 15일 수소폭발로 날아가 버린 뒤여서 풀의 냉각수가 전부 날아가고 연료봉이 발화한다면 플루토늄이나 우라늄 등 맹독성 방사성 물질을 그대로 외부 환경에 방출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후쿠시마 제 1원전은 물론 불과 1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후쿠시마 제 2 원전도 사람이 접근할수 없게 되고, 두 원전의 핵연료와 핵연료 풀 전체가 인력의 통제권을 벗어날 것이다.
일본 정부는 3월 25일이 되자 곤도 슌스케 원자력 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원전이 인력의 통제를 벗어났을 경우 강제피난구역이 170km 까지 늘어나고, 피난권고구역은 도쿄를 포함하는 250km 까지 확장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확인했다.
그리고 미국은 3월 16일 시점에서 이미 4호기의 핵연료 풀이 위기 상태에 빠졌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일본이 상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도, 미국의 판단도 모두 틀렸다.
이제 (원전이) 어떻게 양국의 우려를 벗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해 - 요시다 리포트에 근거한 해설로 기획기사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간 시리즈 기사를 통해 원전의 위기는 누가 막았는가, 주민들은 정말 피난할 수 있었는가, 원전(의 위기)를 사람이 막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 정리했지만, 요시다 리포트의 분석과 검증작업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문 :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은 4호기의 연료 풀의 수온이 올라갔는데 여기에 침착하게 대응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헬리콥터 등으로 확인하기 전 단계에 수위가 이미 내려간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들이 있습니다. 4호기 쪽에 역량을 집중했는가 하는 점에서 우선순위 측면에서도 첫번째는 1F4 라고 되어 있고, 실제로 3월 17일에는 91번이 되었습니다만 3호기의 사용후 연료 풀을 냉각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4호기에서 3호기로 넘어간 경위는 무엇입니까?
요시다 : "시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17일 오전 중 헬리콥터가 날아왔습니다. 주수를 위한 헬리콥터가 아니라 정찰 헬리콥터였습니다. 자위대였던 것 같습니다만. 거기에는 우리 사원도 타고 있어서 (원자로를) 비디오로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4호기의 연료 풀에 아무래도 물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물이 보였다- 고 했습니다."
도호쿠 대지진 발생 5일 후인 2011년 3월 16일 오후 11시 33분. 도쿄 전력 본점에 정부,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대책 통합본부에서는 도쿄전력 직원들이 이날 오후 5시 전에 촬영한 비디오를 상영했다. 요시다가 17일 오전이라고 언급한 시간대는 16일 저녁의 실수였다.
영상은 미국이 냉각수가 소진된 상태라고 주장했던 핵연료 풀에 수면이 보인 순간이 비치고 있었다. (위원회는) 이 영상을 서둘러 분석했다.
"트러스의 골에 조금 수면이 비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물이 차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통합본부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영상을 보고 4호기의 연료 풀에 물이 남아 있다고 단언한 것은 도쿄전력 고문 미네마츠 아키요시였다. 후쿠시마 제1 원전이 착공한 1968년에 도쿄전력에 재직하던 원전 기술자였다.
다른 곳에 비해 한 자릿수는 높은 열량을 뿜어내는 4호기의 사용후 연료풀에 며칠이 지나도록 물이 남아있다는 분석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인 도쿄전력의 타케쿠로 이치로를 보며 미네마츠는 한 장의 그림을 그려 설명을 시작했다. (첨부파일 1 참조)
미네마츠에 따르면 원자로 바로 위에 원자로 웰이라는 부분에 고여 있던 물과 원자로 웰에 연결된 드라이 세퍼레이터 피트라 불리는 방사선 기기를 수중에서 관리하기 위한 풀의 물이 각 구획을 구분하는 칸막이에 생긴 틈을 타 핵 연료 풀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칸막이들은 핵연료 풀의 물이 만수 상태라 해도 틈이 벌어질 일은 없도록 설계되었지만 핵연료의 붕괴열로 변형이 생기거나 폭발의 여파로 패널이 어긋난다면 충분히 틈이 벌어질 수 있는 구조였다.
원자로 웰과 드라이 세퍼레이터 피트에 저수된 물은 총 1440톤으로 핵연료 풀 1개분에 상당한다. 즉 미네마츠의 추론대로라면 미국이 우려하던 4호기의 핵연료 풀 냉각수 소진은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위원회는 검토 끝에 4호기의 핵연료 풀에 충분한 물이 남아있다고 판단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치켜보던 총리 보좌관인 호소노 고우시는 수면이 확인되었을 때 통합본부 내에서 누군가 "앗!" 하고 소리를 질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로 웰은 평소엔 물을 저수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왜 그 곳에 물이 차 있었던 것인가.
토호쿠 대지진 3개월 전인 2010년 12월 29일. 후쿠시마 제 1 원전 4호기에서는 슈라우드라 불리는 원자로 내 최대의 구조물을 교체하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원자로의 슈라우드는 1978년 운전 개시 이후 32년간 사용된 파트로, 이번이 첫 교체공사였다.
이 슈라우드는 높이 6.8m, 직경 4.3~4.7m 규격으로 원자로에서 분리한 이후 해체해 부분품을 하나씩 하나씩 건져올려 드라이 세퍼레이터 피트로 옮기게 되어 있었다.
슈라우드가 장기간 원자로에 장착되어 스스로 방사선을 뿜고 있었기 때문에 원자로 웰과 드라이 세퍼레이터 피트에는 작업을 위해 전부 물을 가득 채우고 모든 작업을 수중에서 실시하게 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 12월 3일 두 곳의 시설물에 대량의 물이 주수되었다.
그리고 공사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덮개를 절단하는 공구를 원자로 내에서 유도할 지그가 조금 잘못 설치된 것이 확인되었다. 현장에서 개조를 하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공사기간은 전체적으로 2주 가량 늘어나 버렸다.
그에 따라 오래 된 슈라우드를 분리하고 새 슈라우드를 넣기 위해 원자로 웰의 물을 빼내는 작업도 2011년 3월 하순까지 연기되었다.
당초 배수계획이 잡힌 날은 2011년 3월 7일. 초대형 지진이 발생하기 나흘 전이었다.
취재:미야자키 토모키, 기무라 히데아키
제작:사쿠마 세다이, 우에무라 신야, 후사 아카히코, 시라이 마사유키, 기무라 마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