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데이비드 콰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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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제를 맞고 얌전해진 어린 붉은털원숭이의 혈액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녀석이 결핵이나 홍역 같은 인간의 질병에 감염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반대로 영장류 역시 세계적 규모의 전염병을 유발하는 병원균을 인간에게 전염시킬 수 있다. |
1994년 9월 호주 브리즈번 근교. 경주마들 사이에 괴질이 돌기 시작했다. 헨드라 마을은, 경마장, 마구간, 경마예상표를 파는 가판대, ‘여물통’같은 이름의 모퉁이 카페들, 경마업에 종사하거나 경마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조용하고 오래된 동네였다. 최초의 희생자는 새끼 밴 암말 ‘드라마시리즈’였다. 마을 외곽의 초원에서 이상 증세를 보이자 진찰을 위해 전담 조련사의 마구간으로 데리고 왔지만, 증세는 계속 악화되었다. 조련사, 마구간 관리인, 수의사 세 사람이 매달려 말을 살리려고 애썼지만 이틀 만에 드라마시리즈는 죽고 말았다. 사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뱀에 물렸을까? 잡목이 무성한 초원에서 독초를 먹은 걸까? 2주 뒤 같은 마구간에 있는 말들 대부분이 쓰러지자 그런 추측들은 무의미해졌다. 뱀이나 독초 때문이 아니었다. 전염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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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숙주 콩고민주공화국의 어느 마을에서 아이가 잠비아쥐와 원숭이 팔이 담긴 바구니를 이고 시장에 간다. 이 바구니에 치명적 질병도 함께 담겨 있을지 모른다.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고기인 ‘부시 미트’에는 원숭이천연두가 잠복해 있다. 설치류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증상이 없는 보유숙주로 추정되며 원숭이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죽을 수도 있다. 이 병에 얽힌 수많은 미스터리가 있지만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역시 알 길이 없다. 원숭이 천연두 연구의 개척자인 UCLA의 앤 르모인은 원숭이 천연두가 이제 이 지역의 풍토병이 되었다고 말한다. |
다른 말들은 발열, 호흡곤란, 안면부종, 마비 등의 증세를 보였고 코와 입으로 거품 같은 피를 내뿜는 말들도 있었다. 수의사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며칠 사이 12마리가 더 죽었다. 그러던 중 조련사가 앓기 시작했고 마구간 관리인도 이상 징후를 보였다. 하지만 수의사는 똑같이 위험한 상황에서 일했어도 개인위생에 철저히 신경 쓴 덕분에 병에 걸리지 않았다. 신장이 기능을 상실했고 호흡마비가 일어났다. 혼자 조용히 열을 내리려고 집으로간 마음씨 좋은 마구간 관리인 레이 언윈은 목숨을 건졌다. 작년에 나는 헨드라를 찾아가 수의사와 관리인에게 당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제는 중년의 일꾼이 된 레이 언윈은 적갈색 말총머리에 눈에는 고단함과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원래 ‘투덜이’는 아닌데 그 일이 있고부터 건강이 ‘영 아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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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1994년 호주 브리즈번 교외 헨드라에서 정체불명의 괴질이 발생했다. 괴질은 사람과 동물을 처참하게 죽이고는 이내 자취를 감췄다. 마구간 관리인 레이 언윈(위)는 지금도 헨드라 바이러스가 남긴 악몽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도무지 피곤이 가시질 않아요.” 언윈은 말한다. 토종 과실수에 깃든 박쥐가 헨드라를 퍼뜨렸다는 게 드러났을 때는 말 13마리와 언윈의 동료들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
실험실 분석 결과 말과 사람들이 미확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처음에 실험실 사람들은 사람에게 홍역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비슷하다고 해서 말 홍역바이러스라고 불렀다. 나중에 이 바이러스가 새로운 종류로 판명나자 발병 지역의 이름을 따서 ‘헨드라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 수의사 피터 리드는 “바이러스가 말들 사이에 믿기 어려울 만큼 순식간에 퍼져나갔다”고 내게 말했다. 괴질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는 말 일곱필이 고통스럽게 죽거나 발병 12시간 만에 안락사시켜야 할 정도였다. 그 중 한 마리는 너무 심하게 몸부림을 치고 헐떡거려 리드가 다가가 안락사 주사를 놓을 수도 없었다.
병리학적 이해는 고사하고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헨드라 미스테리’를 풀려면 이 신종바이러스의 정체부터 밝히는 것이 급선무였다. 2단계는 바이러스의 잠복장소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 말과 사람을 죽였을까? 3단계로 좀 더 심도 깊은 질문을 던져야 했다. 어떻게 은신처를 벗어났고 왜 지금, 여기에 나타났는가?
1차 인터뷰가 끝나자 피터 리드는 차를 몰고 드라마시리즈가 처음 이상 증세를 보인 장소로 나를 데리고 갔다. 깔끔하게 정돈된 주택단지는 옛 풍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원래 초원이었다. 그런데 동네 어귀 캘리오프서킷이라는 곳 한가운데에 다 자란 토종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오롯이 서 있다. 그 암말은 호주 동부의 뜨거운 아열대 태양을 피해 이 나무 그늘에서 쉬었으리라.
“저거예요.” 리드가 말했다. “저게 그 망할 나무죠.” 박쥐들이 모여들던 나무라는 뜻이었다.
전염병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전염병은 우리가 생태계라 부르는 복잡한 체계 속에서 개체와 개체, 종과 종을 잇는 천연 회반죽 같은 것이다. 또한 포식, 경쟁, 광합성과 함께 생태학자라면 기본적으로 연구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포식자는 먹이를 바깥에서 몸뚱이째 잡아먹는 비교적 큰 동물이다. 병원균(바이러스같이 질병을 일으키는 인자들)은 먹이 속에 기생하면서 먹이를 죽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동물이다. 전염병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사자가 누, 얼룩말, 영양을 잡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그러나 상황이 늘 한결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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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 이 작은 ‘레드 플라잉 폭스’처럼 큰 박쥐류는 수천 년 동안 헨드라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1990년대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원인을 설명하는 한 가지 가설은 서식지를 잃은 박쥐들이 인간과 접촉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큰 박쥐류는 에볼라, 니파, 사스 등 치명적 질병의 보유숙주로 추정되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
포식자에게 늘 먹는 먹잇감, 좋아하는 목표물이 있듯 병원균도 마찬가지다. 한편 사자가 가끔 평소 행동에서 벗어나 누 대신 젖소를, 얼룩말 대신 사람을 잡아먹듯 병원균도 새로운 목표물로 향하기도 한다. 뜻밖에 일이 벌어진다. 일탈이 생긴다. 병원균이 (인간이 아닌) 동물에서 사람으로 침투해 문제를 일으키는데 성공하면 ‘인수공통전염병’이 된다.
인수공통전염병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생소한 단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조류독감, 사스, 무시무시한 각종 신종질병들이나 전염병 창궐 위기 같은 오싹한 헤드라인 뒤에 어떤 생물학적 실체가 있는지 명료하게 설명해준다.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의 기원에 관한 핵심도 여기에 있다. 21세기에 자주 듣게 될 미래형 용어인 셈이다.
에볼라는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센페스트도 인수공통이다. 황열, 원숭이천연두, 우(牛)결핵, 라임병, 웨스트나일열병, 마르부르크병, 각종 인플루엔자, 광견병,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 말레이시아에서 돼지와 돼지 농장 인부들을 죽인 ‘니파’라는 낯선 질병도 마찬가지다. 열거한 질병들은 모두 다른 종에서 인간으로 옮아가는 병원균의 활동을 보여주는 예다. 종간(種間) 감염은 흔한 현상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인간 전염병의 약 60%가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감염된다. 그 중 일부, 특히 광견병은 지금도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이며 널리 퍼져 있다. 수백 년에 걸친 치료 노력, 병을 근절하고 통제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 그리고 병리에 대한 분명하고 과학적인 이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헨드라바이러스처럼 산발적으로 발생해 소수의 희생자만을 내거나 이 지역, 저 지역에서 몇 백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는 몇 년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신종 인수공통전염병들도 있다.
반대로 천연두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다. 천연두는 호모사피엔스(극히 드물게 인간 이외의 영장류)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로, 말이나 쥐 등은 감염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천연두 박멸을 위한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적 캠페인이 1979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해 준다. 천연두를 근절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몸 이외에 다른동물을 숙주로 삼지 못하는 이 바이러스가 숨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숭이천연두는 천연두와 흡사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인간뿐 아니라 원숭이도 걸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종에도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숭이천연두가 침투할 수 있는 종들 중 몇몇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부 모기 종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가 옮기는 질병인 황열병 역시 원숭이와 사람 모두 감염시키므로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박테리아의 일종인 라임병의 원인균은 흰발생쥐와 작은 포유동물들의 몸속에 숨어 있다. 물론 병원균들이 뭘 알아서 숨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녀석들은 이런 식으로 숙주를 이용한 간접 전파나 눈에 띄지 않고 살아남는 전략을 도모한다.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병원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아프지도, 특별한 증세도 보이지 않는 종, 즉 ‘보유숙주’안에 잠복하는 것이다. 1994년 참사를 일으킨 헨드라바이러스처럼 한동안 휩쓸고 간 다음 질병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면 원인균인 병원균이 최소한 그 지역에서는 소멸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아마도 헨드라바이러스는 여전히 도처에 있는 보유숙주 안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설치류? 새? 나비? 아니면 박쥐? 생물학적 다양성이 풍부하고 외부 방해가 적은 안정적 생태계라면 보유숙주 안에 들키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생태계 교란이 질병을 일으킨다. 나무를 흔들어보라. 그럼 뭔가 떨어질 것이다.
호주에서 사람과 말이 죽고 몇 달 뒤, 흄 필드라는 과학탐정은 헨드라의 보유숙주를 찾아 나섰다. 필드는 몇 년간 개업의로 일하다 수의전염병학 박사과정을 밟기로 결심한 수의사였다. 헨드라바이러스의 보유숙주를 추적하는 것이 논문 주제가 되었다. 그는 유대류, 조류, 설치류, 양서류, 곤충 등 보유숙주로 의심되는 총 16종의 동물에서 혈액샘풀을 채취했다. 검사를 위해 혈액샘플을 실험실로 보냈으나 헨드라와 관련된 어떤 증거도 포착되지 않았다.
그러자 필드는 큰박쥐의 일종으로 까마귀 정도 크기에 흔히 ‘블랙 플라잉 폭스’라고 부르는 프테로푸스 알렉토의 혈액을 채취했다. 빙고! 실험팀은 헨드라 바이러스가 남긴 분자, 즉 항체를 발견했다. 브리즈번이 속한 퀸즐랜드 주 숲을 비롯한 호주 삼림지역의 토착종인 큰 박쥐류 세 종의 혈액에서도 비슷한 증거가 나왔다. 필드와 실험팀은 박쥐가 보유숙주라는 결론을 내렸다. 분자 흔적 발견이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것만큼 결정적이진 않지만 암컷 박쥐 한 마리에서 바이러스 분자도 검출했다.
실험실 분석 결과 헨드라는 아주 오래된 바이러스였음이 드러났다.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헨드라가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켰다는 기록이나 증거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1994년 갑자기 정체를 드러낸 이유는 뭘까? 드라마시리즈와 녀석을 알던 사람들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밖에. 박쥐들이 외딴 나무에 무화과를 먹으로 왔고 그들을 찾아온 가련한 암말은 무심코 풀을 뜯다고 풀과 함께 과육, 배설물, 오줌, 태반, 그리고 바이러스를 삼킨게 분명했다.
그러나 좀 더 포괄적인 설명도 필요했다. 왜 헨드라 바이러스는 1994년에야 느닷없이 등장했을까? 수십 혹은 수백년 전이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무언가 다른 조건이 있었다. 하나 혹은 여로 요인이 복합적으로 변해 이 바이러스가 보유숙주에서 다른 종으로 옮겨간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종간 전이를 가리키는 용어는 ‘스필오버(흘러넘침)’다. 아마도 헨드라바이러스는 보유숙주에서 스필오버를 매개한 대상으로 캥거루(호주 무화과나무 아래서 수천 년 동안 풀을 먹음)가 아닌 말(유럽 식민주의자들과 함께 ‘최근’ 호주에 들어옴)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박쥐, 무화과, 말, 인간이 그렇게 가깝게 모여 산 적이 없었기 때문일 수 도 있다. 흄 필드는 지금 퀸즐랜드 1차산업부 동물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전에는 일어난적이 없으나 지금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현상”에 대해 말을 꺼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인간이 유칼립투스 숲을 파괴하면서 일부 큰 박쥐류의 섭식 및 서식 습성을 교란시켜 박쥐들이 숲이 우거진 교외, 과수원, 식물원, 도심 공원 등 인간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 산다는 것과 바이러스가 말에게 전이되는 것은 별개의문제다. “어떻게 전이가 일어날까요?” 오랜 대화 끝에 그가 목소리를 높여 자문자답했다. “글쎄요, 아직 모르겠어요.”
거의 모든 인수공통전염병은 여섯 가지 병원균 중 하나로 전염된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원생동물, 프리온, 곰팡이, 기생충. 광우병 유발물질은 프리온이다. 프리온은 모양이 변형된 단백질분자로 다른 분자들도 변형시킨다. 체체파리가 옮기는 수면병은 원생동물 감염이 원인으로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에 사는 야생동물, 가축, 사람들이 걸린다. 탄저병은 몇 년 동안 휴면상태로 땅속에 잠복해 있다 가축이나 사람의 발이 흙을 파헤쳐 밖으로 나오게 되면 소를 통해 인간에게 감염되는 박테리아다.
제일 골칫거리는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진화 속도가 아주 빠른 데다 항생제 내성을 갖고 있으며 돌연 변이를 일으키는 ‘변신술’이 탁월하다. 치사율도 높고 다른 생물이나 준(準)생물에 비해 섬뜩할 정도로 단순하다. 한타, 사스, 원숭이천연두, 광견병, 에볼라, 웨스트나일, 마추포, 뎅기열, 황열, 주닌, 니파, 헨드라, 인플루엔자, HIV도 모두 바이러스다. ‘원숭이포말상 바이러스(SFV)’는 반(半)야생, 반(半)가축인 짧은 꼬리 원숭이와 사람이 접촉하는 불교나 힌두사원을 통해 아시아에 사는 원숭이와 사람을 감염시킨다. 사원에서 짧은꼬리원숭이에게 손으로 먹이를 나눠주는 과정에서 외국인 관광객들도 SFV에 노출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이동하진 못해요.” 저명한 바이러스 학자 스티븐 S. 모스는 말한다. “하지만 수많은 바이러스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죠.” 녀석들은 뛸 수도, 걸을 수도, 헤엄칠 수도 없고, 기어가지도 못한다. 녀석들은 숙주를 ‘타고 다닌다’.
브리즈번 근교에서 헨드라가 발생한 것과 거의 동시에 또 다른 스필오버가 일어났다. 이번엔 아프리카 중부였다. 콩고 접경지대인 가봉 북동부 이빈도 강 상류를 따라 ‘메이부 Ⅱ’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1996년 2월 초 마을 사람 18명이 침팬지를 잡아먹은 뒤 갑자기 앓기 시작했다. 그들은 발열, 두통, 구토, 눈과 잇몸 출혈, 딸꾹질, 출혈을 동반한 설사 등의 증세를 보였다. 모두 하류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얼마 못가 네 사람이 죽었다. 감염 예방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시체를 마을로 가져와 매장했다. 다섯 번째 희생자는 병원을 나와 마을로 돌아와서 죽었다. 가족이나 친구를 통해, 혹은 시체를 다루는 과정에서 감염된 사람들 사이에서 2차 발병이 있었다. 결국 31명이 발병하여 21명이 죽었다. 68%의 치사율이었다.
이 자료는 괴질이 돌자 메이부 Ⅱ에 온 가봉인과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의학조사팀이 수집한 것이다. 가봉 프랑스빌국제의학연구소(CIRMF)에 근무하는 에릭 M. 르로이라는 프랑스인도 당시 조사팀의 일원이었다. 르로이와 동료들은 에볼라 출혈열로 파악했고 도살당한 침팬지가 에볼라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였다고 추정했다. 또한 침팬지를 죽인 것이 마을 사냥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숲에서 죽은 채 발견된 침팬지를 가져온 것이었다.
4년 뒤 나는 기나긴 아프리카 도보탐사에 나섰다. 어느날 나는 이빈도 강 상류에서 삼림대�으로 일하는 현지 남자들과 함께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대부분 반투족인 현지 대원들은 내가 횡단 대열에 합류하기 몇 주 전부터 계속 걷고 있었다. 그날은 여정이 좀 수월했던 편이라 모처럼 저녁 모닥불 앞에서 터놓고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에볼라가 마을을 덮쳤을 때 현지 남자들 중 토니 음보트와 소피아노 에투크가 메이부 Ⅱ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른 체격에 소피아노보다 나이도 많고 말도 많은 음보트는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음보트가 불어로 얘기하는 동안 딱 벌엊니 어깨에 염소수염을 한 에투크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에투크의 집안은 에볼라로 풍비박산이 되었다. 에투크가 죽어가는 조카를 안고 있는데 조카의 손목에 꽂힌 정맥주사가 막혀 손이 퉁퉁 부어올라 터지는 바람에 그는 피범벅이 됐다. 하지만 에투크는 멀쩡했다. “나도요.” 음보트가 말했다. 음보트는 인근에 왔던 프랑스 군인들이 화학무기로 침팬지를 죽이고는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이 독성 물질에 노출된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원인이 무엇이건 마을 사람들은 확실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 이후로 메이부 Ⅱ에서는 어느 누구도 침팬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음보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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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고군분투 주사기를 든 리사 존스 앵글이 방글라데시 담라이에서 포획된 붉은털원숭이들을 진정시키느라 분주하다. 뒤 건물 지붕에서 구경하던 원숭이들은 끽끽거리며 경고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은 신종 질병의 생성 과정으로 의심되는 인간과 원숭이의 쌍방향 질병 전파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
음보트가 들려준 얘기로는 괴질로 온 마을이 혼란과 슬픔에 쌓여 있을 때 음보트와 에투크는 이상한 걸 봤다고 했다. 숲속에 고릴라 13마리가 죽어 있었던 것이다. 낙엽 위에 고릴라 사체 13구가 나뒹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후 계속된 연구에서 고릴라들이 에볼라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고릴라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서로 털을 골라주거나 새끼를 돌봐주다가, 혹은 병들거나 죽은 고릴라를 일으켜주다가 쉽게 병이 전염될 수 있다.
1996년 이후 몇 년 동안 메이부 Ⅱ 주변 지역에 또 다시 인간과 대형유인원(고릴라뿐 아니라 침팬지까지) 사이에서 에볼라가 창궐했다. 콩고 서북부 국경 바로 위 맘빌리 강 유역의 한 지역은 타격이 심했다. 이 곳 역시 울창한 삼림지대로 마을 몇 개와 국립공원 하나, 그리고 고릴라 보호구역 ‘로시’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2002년 로시의 연구팀이 처음 고릴라 사체를 발견했고 일부는 에볼라 양성반응을 보였다. 몇 달 사이에 그들이 연구해 온 고릴라 개체 중 91%(143마리 중 130마리)가 사라졌고 대다수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연구 지역에서 확인된 사체와 실종 건수를 파악해 희생된 전체 고릴라 수를 추정해 낸 연구원들은 사이언스 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에볼라, 고릴라 5000마리를 죽이다.’
작년 가을, 나는 윌리엄 B. 캐러시가 이끄는 연구팀과 함께 맘빌리 강을 다시 찾았다. 캐러시는 야생생물 보호협회의 현장수의학 프로그램 팀장이자 인수공통전염병의 권위자다. 캐러시의 목적은 살아남은 고릴라들을 마취시켜 혈액을 채취하고 에볼라에 노출된 흔적이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프로스페르 발로라는 전문 트래커와 수의사, 가이드들과 함께 8일 동안 숲을 뒤졌다. 우리는 로시 직원인 발로의 안내로 고릴라 수십 마리가 매일 먹고 쉬러오던 장소로 다육 식물이 많은 ‘바이(천연 개간지)’에 잠복했다. 에볼라가 발생하기 전 고릴라의 건강상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캐러시가 2000년에 가본 지역이었다. “매일 최소한 고릴라 가족 한 무리는 바이에 찾아왔어요.” 캐러시가 말했다. 답사는 성공이었다. 저지대 고릴라를 마취 화살로 마취시킨 최초의 사람이 캐러시였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아무리 뒤져도 살아 있는 고릴라를 볼 수 없었다. 얼핏 두 마리를 본 게 전부다. 딴 녀석들은 죄다 뿔뿔이 흩어진 걸까, 아니면 죽어버렸을까? 어쨌든 한 때 고릴라가 도처에 보이던 곳인데 모두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바이러스도 자취를 감춘 듯 했다. 그러나 우린 잠시 숨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디에 숨은 걸까? 10년 동안 에볼라 보유숙주의 정체는 질병학계의 가장 불길한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몇몇 연구진이 실마리를 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마침내 2년 전 에릭 르로이와 동료들이 네어처 징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다. “우리는 세 종의 큰박쥐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무증상 감염의 증거를 포착했다. 녀석들이 이 치명적 바이러스의 보유숙주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르로이 팀은 살아 있는 바이러스르 검출하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 분자테스트 결과가 양성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검사한 박쥐 중 최소한 몇 마리는 에볼라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로르이는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원한다. “박쥐를 계속 잡고 있어요. 장기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하려고요.” 내가 작년 말 프랑스빌을 방문했을 때 그가 한 말이다. 하지만 보유숙주의 정체를 확실히 밝혀낸다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예를 들어 보유숙주에 잠복해 있던 에볼라가 어떻게 질병을 일으키는가? “박쥐에서 인간으로 직접 전이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르로이가 말했다. “죽은 대형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직접 전이된다는 건 확실합니다.” 에볼라는 특성상 연구하기 어렵다고 르로이는 설명했다. 에볼라는 드물게 발병하는 데다 일단 발병하면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며칠 만에 감염자의 생사가 갈린다. 또한 발생할 때마다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 병에 걸리며 그들은 대개 병원 연구소나 의료 기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숲에 산다. 그런 다음 마치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처럼 그 지역에서 저절로 소멸되거나 퇴치되어 다시 숲으로 사라진다. “달리 손쓸 도리가 없어요.” 르로이가 말했다. 실험실에서 연구를 계속해 나가면서 병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대처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에볼라가 다음엔 어디서 나타날 지 누구도 에측할 수 없다.
헨드라와 에볼라는 일정한 패턴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신종 인수공통전염병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는데 양상은 제각각이지만 치명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 적지 않은 인수공통전염병이 박쥐와 관련 있는 듯하다. 또한 인간이 야생 자연을 교란시켜 일어난 질병이라는 점 역시 공통분모다. 곧이어 등장한 것은 ‘니파’다
1998년 9월 말레이시아 반도의 한 돼지고기 상인이 뇌염 증세로 병원 치료를 받다 죽었다. 비슷한 시기에 많은 돼지농장 일꾼들이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이들은 모두 고열에 시달리다 혼수상태에 빠졌고 일부는 사망했다. 한편 그 지역 돼지들도 기침, 씨근거림 등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죽었다. 돼지가 걸린 병은 전형적인 돼지콜레라로, 인간의 사인은 일본뇌염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몇 달 만에 과학자들은 돼지와 사람 모두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신종바이러스로 숭아니파라는 마을 출신의 한 환자에서 처음 검출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돼지들 사이에서는 전염성이 매우 높았지만 사람 사이에는 그렇지 않았다. 살아 있는 돼지가 수출되어 돼지고기나 병든 돼지나 접촉한 사람들을 감염시키면서 말레이시아의 다른 지역과 싱가포르까지 바이러스가 퍼져나갔다. 7개월 만에 265명이 감염되어 105명이 죽고 돼지 110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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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확산 조류독감 변종 H5N1은 가장 위협적인 세계적 전염병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은 2003년 아시아 각지로 번지기 시작해 2006년에는 유럽과 아프리카에도 나타났다. 지금까지 사망자는 200명이 채 안됐지만 전문가들은 악성 바이러스로 변할 경우 수백만 명이 희생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이 신종바이러스의 분자구조는 헨드라와 밀접한 유연관계를 보였다. 이것이 단서가 되었다. 오래지 않아 연구원들은 병을 일으키지 않고 보유숙주 속에 ‘조용히’ 살고 있는 니파를 발견했다. 이번에도 역시 큰 박쥐의 일종인 프테로푸스 히포멜라누스였다. 연구원들은 서식지를 잃은 큰 박지들이 양돈농가 근처 과수원에 모여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애완동물 주의보 미국은 매년 약 200만 마리의 파충류를 수입하는데 한 마리 한 마리가 잠재적 보균체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아프리카 설카타거북이 캘리포니아 주 말리부 미국거북구조단의 수전텔름(좌) 곁을 느릿느릿 지나고 있다. 거북과 자라는 다른 파충류처럼 아이들에게 위험한 살모넬라 박테리아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 살짜리 머레이야 젤너가 뉴욕주 화이트플레인스에서 열린 파충류전시회에서 뱀 비늘을 보며 신기해 한다. 일부 상인들은 경고문을 붙여놓기도 한다. |
다음은 사스였다. 2003년 초 중국 동남부에서 처음 나타난 사스는 사람 사이에서 쉽게 전염되고 항공기 이용객을 통해 급속히 전파돼 9개국 774명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시급히 조사가 이루어졌고 사향고양이가 사스의 보유숙주로 지목됐다. 사향고양이는 중간 크기의 포유동물로 중국 시장에서 종종 고기가 매매된다. 하지만 실험 결과 사향고양이 역시 사스를 앓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녀석들은 ‘혐의’에서 벗어났다. 중국과학원의 웬동 리가 이끄는 과학자들이 사스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흡사한 바이러스를 품고 있는 보유숙주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관박쥐과에 속하는리놀로푸스였다.
이게 끝이 아니다. 광견병과 흡사한 ‘호주박쥐 리사 바이러스’가 새로 확인되었다. 최소 두 명이 이 바이러스에 희생됐는데 이들은 박쥐에 물린 뒤 광견병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다 죽었다. 헨드라바이러스 속인 메낭글과 티오만 역시 박쥐가 옮기는 바이러스로 과학자들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박쥐를 보유숙주로 삼는 광견병 혹은 유사 광견병 바이러스들은 바이러스 병원균 중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사람에 걸릴 경우 치료를 받지 않으면 치사율이 100%에 가깝다. 지난 가을 페루 북부 아마존 상류 원주민 마을들에서 어린이 11명이 흡협박쥐에 물려 광견병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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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를 감추다 몇 년 전만 해도 고릴라가 우글대던 콩고의 한 지역. 야생생물보호협회 소속 수의사 윌리엄 캐러시가 연구용 저지대 고릴라를 마취주사로 생포하려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콩고와 가봉에서 고릴라 수천 마리를 죽인 에볼라가 ‘일급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병마가 휩쓸고 간 뒤에는 오싹한 적막감이 엄습해요. 죽음의 사자가 훑고 지나간 것 같아요.” 캐러시는 말한다. 트래커인 발로가 고릴라를 찾고 있다. |
이쯤되면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젠장, 박쥐가 뭐 어쨌다는 거야?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광견병부 부장으로, 바이러스학자이자 수의사인 찰스 루프레히트와 얘기를 나누던 중 나 역시 이 질문을 던졌다. 루프레히트는 익수류에 속하는 이 포유동물이 각종 위험한 바이러스의 숙주로 안성맞춤인 이유를 열거했다. 박쥐들 중 일부는 거대한 군집을 이루며 서로 다닥다닥 붙어 지낸다. 박쥐들은 새끼들을 많이 낳지 않기 때문에 새끼를 끔찍이 보살핀다. 작은 포유류치고는 수명이 길다. 진화사의 관점에서도 아주 오래된 종이다. 대략 전체 포유류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박쥐 종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녀석들은 날 수가 있어 전 세계를 잘도 돌아다니며 북극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륙에서 살만한 장소와 방법을 찾아낸다. 게다가 야행성 날짐승이라 연구가 어렵다.
생존자들 에볼라는 캐러시의 트래커로 일하는 콩고인 발로(왼쪽, 가운데)를 빗겨갔지만 그의 인생을 난도질 했다. 아내의 형제자매가 죽는 바람에 발로는 친자식과 처조카를 합쳐 모두 14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에볼라로 죽어간 고릴라들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녀석들을 돌보던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바이러스 학자 에릭 르로이(오른쪽, 가봉국제의학연구소 연구실)는 종종 발병사례를 최초로 조사하게 된다. 그는 에볼라 보유숙주로 큰 박쥐류를 지목한다. |
나는 가봉 CIRMF에 근무하는 수의학자 자비에 포루에게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포루가 에볼라 발병 지역 근방에서 박쥐를 잡아 혈액샘플을 채취하면 에릭 르로이가 혈청을 조사해 바이러스의 흔적을 찾아낸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박쥐의 비행능력이다. 포루는 녀석들이 횡으로 전 세계 어디나 못 다니는 곳이 없을 뿐 아니라 종으로도 숲을 휘젓고 다닌다고 말했다. 따라서 녀석들은 먹으로 삼는 과일이나 곤충, 매달려 쉬는 나무 꼭대기뿐 아니라 설치류, 원숭이, 육식동물, 새, 뱀, 침팬지, 고릴라, 사람 등 숲 밑바닥에서 임관(林冠)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종과 접촉할 수 있다.
결정적인 접촉이다. 두 종의 긴밀한 접촉은 병원균 입장에선 영역을 넓히고 증식할 수 있는 기회다. 새로운 종으로 스필오버하는 것은 위험이 따르지만 급속히 증식하고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위험이란 새로운 숙주를 너무 빨리 죽어 전이가 채 완료되기도 전에 병원균 역시 최후를 맞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진화이론에 따르면 일부 병원균들은 더 큰 대가를 얻기 위해 종종 이런 모험을 감행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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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한 음식 콩고 시장에 나온 원숭이 고기는 겉만 슬쩍 그을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일부 빈곤지역에서는 숲에서 잡은 이런 부시 미트가 유일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다. 만약 이 원숭이, 혹은 공동도살장에서 이 여성들이 취급하는 많은 동물 중 단 한 마리라도 인수공통전염병에 감염되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노출될 것이다. |
거북과 쥐를 생각해보라. 거북이의 생존 전략은 보수적이다. 좋아하는 서식지에 머물며 천천히 번식한다. 쥐들은 기회주의자처럼 무임승차로 육지와 바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곳에 도착해 재빨리 번식한다. 이처럼 병원균들 역시 모험을 좋아하는 정도가 제각기 다를지도 모른다. 보유숙주에서 스필오버한다고 해서 늘 막다른 골목에 이르지는 않는다. 스필오버는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에 이르는 전략일 수 도 있다. 아마도 아프리카 중서부에서 원숭이면역결핍 바이러스(SIV)가 침팬지 아종에서 인간으로 전이되어 HIV1이 된 것이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인간과 다른 종의 긴밀한 접촉은 다양한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 야생동물을 잡아먹거나(메이부 Ⅱ) 가축을 보살피다가(헨드라), 혹은 애완동물을 어루만지다가(아프리카에서 수입된 설치류를 통해 미국 에완동물 시장에 들어온 원숭이 천연두)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 야생동물을 길들이고 싶은 유혹(발리 사원에서 원숭이에게 바나나 주기), 서식지 파괴와 맞물리는 집약적 목축업(말레이시아 양돈농장), 그리고 전 세계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일, 즉 야생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인간의 행위를 통해 일어난다. 접촉을 통해 병원균이 전이되면 두 가지 요소가 재앙을 촉발할 수 있다. 첫째, 지구에는 잠재적 감염원인 인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살고 있고, 둘째, 인간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악수, 키스, 재채기를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악성 신종질병은 한번 자리 잡으면 의학으로 통제할 방법을 미처 찾기도 전에 전 세계를 돌아디니며 수백만 명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안전과 건강만 걸린 문제가 아니다. 또 하나 유념해야 할 사실은 질병이 쌍방향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종에서 인간으로 전염될 수도 있지만 인간에서 다른 종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인간의 질병이지만 다른 영장류까지 위협하는 질병으로 홍역, 소아마비, 개선충, 인플루엔자, 결핵 등이 있다. 이것이 인간원성(人間源性) 인수공통전염병이다. 관광객, 연구원, 또는 지역민 누구나 이런 질병에 걸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르완다의 산악 고릴라나 콩고 곰베의 침팬지처럼 비교적 유전자풀이 적고 작은 무리가 고립된 채 사는 대형유인원에서 치명적일 수 있다.
야생�물보호협회의 빌리 캐러시와 동료들이 그들의 프로그램에 ‘하나의 세계, 하나의 건강’이란 표어를 붙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길잡이가 되는 원칙은 생태학에 있다. 의학이나 수의학은 그저 하위 개념일 뿐이다. “중요한 건 야생동물의 건강도, 인간의 건강이나 가축의 건강도 아닙니다.” 캐러시가 말했다. “오직 하나의 건강이 있을 뿐이죠.” 바로 지구 생태계의 건강과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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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병 콩고 의사들은 노르베르 로알로 은코이가 원숭이천연두 농포로 목이 막히고 탈수증을 일으켰다고 진단했다. 정맥주사가 그를 구했다. “신선한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네요.” 은코이가 말했다. 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위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콩고 북서부 맘빌리 강변에서 별 소득 없이 잠복근무를 끝낸 캐러시, 프로스페르 발로와 나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세 시간 동안 통나무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갔다. 거기서 우리는 차를 몰고 흙길을 달려 음보모라는 마을에 왔다. 음보모는 로시에서 에볼라가 고리라들을 덮친 바로 그때 에볼라로 38명이 희생된 지역의 중심에 있다. 우리는 작은 병원 앞에 차를 세웠는데 병원 옆에는 새빨간 페인트로 적은 팻말이 하나 있었다.
에볼라 주의
숲속에서 죽은 동물을 보면 절대 만지지 마시오.
음보모는 발로의 고향이다. 우리는 발로의 집에 가서 아내 에스텔과 여러 자녀 중 몇 명을 만났다. 우리는 에스텔의 여동생 하나, 남동생 둘, 가까운 친척하나가 모두 2003년 에볼라로 죽었고 이 일로 마을 사람들이 에스텔을 기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e 누구도 에스텔에게 음식을 팔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가 건네는 돈을 만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스텔은 숲속으로 숨어야 했다. 발로는 에볼라가 기승을 부릴 때 에릭 르로이와 다른 과학자들에게 배운 주의사항을 아내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아내도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발로가 가르쳐준 수칙은 뭐든 표백제로 말끔히 소독하라, 손을 씻어라, 시체를 만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힘든 시절은 지나갔다. 발로의 팔에 안겨 있는 에스텔은 젊고 건강했다.
에볼라에 대한 발로의 기억은 조금 남달랐다. 발로는 에스텔이 잃은 사람들, 그리고 또 다른 죽음들을 슬퍼했다. 그는 우리에게 식물학 현장실습안내서 한 권을 보여줬다. 안쪽에 발로가 적은 이름들이 있었다. 아폴로, 카산드라, 아프로디타 등 거의 20개나 되는 이름들. 이름의 주인은 모두 고릴라였다. 발로가 로시에서 매일 좇아다니며 정성스럽게 지켜보던 녀석들이었다. 카산드라를 제일 좋아했다고 발로는 말했다. 아폴로는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모두 2003년에 사라져버렸죠.” 발로가 말했다. 그는 가족을 잃었고 고릴라 가족도 잃었다. 발로는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가 이름들을 볼 수 있도록 발로는 한참동안 책을 펼쳐들고 서 있었다.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을 그는 가슴에 사무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인간과 고릴라, 말, 돼지, 박쥐, 원숭이, 쥐, 모기 그리고 바이러스.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타고 있다.
(출처 : National Geographic 2007년 10월호(한국판), p. 4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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