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스크랩] 정신없는 사적지 일원과 보수공사 현장

_______! 2007. 3. 29. 21:06

사적 제166호 무성서원이 있는 정읍시 칠보면 원촌마을 고적안내판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500에 소재한 사적 제166호는 무성서원이다. 무성서원은 신라후기의 학자였던 최치원(857∼?)과 조선 중종(재위 1506∼1544)때 관리였던 신잠(申潛)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원으로, 교육기능과 제사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원래는 태산서원이라 하던 것을, 숙종 22년(1696)에 임금으로 부터 이름을 받아 무성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앞쪽에는 공부하는 공간을 두고, 뒤에는 제사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식으로,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사당, 현가루, 동·서재, 비각, 명륜당 등이 있다. 이곳에는 성종 17년(1486) 이후의 봉심안, 강안, 심원록, 원규 등의 귀중한 서원자료가 보존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불우헌 정극인의 동상과 선비문화관 현판 


정읍시에서는 이 무성서원이 소재한 무성리 원촌마을 일대를 2003년 12월 23일 전통마을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을 하고 정리, 복원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무성서원 일대에는 각종 제각과 정자 등 문화유적이 즐비한 곳이다. 3월 22일, 봄날이라 날씨가 화창하다. 몇 번이고 들려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무성서원을 찾았다. 동진천을 끼고 조성된 마을은 성황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원촌마을 입구에 들어가니 불우헌 정극인 선생의 동상과 약력 등을 비각해 놓은 조형물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태산선비문화사료관이 있다. 동상을 촬영하고 선비문화사료관을 가니 문이 걸려있다. 일주일에 두 번 휴관을 하는데 하필 이날이 휴관일이란다. 정극인선생의 동상 뒤로 보니 산 중턱에 몇 개의 건물이 보인다.

 

 

 

 

성황산을 오르며 있는 하마비와 송정, 그리고 영당 


동상 뒤로 난 길을 오르니 한편에 비석들이 서 있고, 그 앞으로 나무 밑에 하마비가(下馬碑)가 보인다. 이 산에 하마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예사 사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니 저 한편으로 동진천이 흐르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오르니 송정이라는 깨끗한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광해군의 폭정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던 선비들이 이곳에서 시를 읊으며 세월을 보내던 곳이라고 하는 송정. 늙은 노송 몇 그루가 주변에 서 있고, 정자 가운데는 방 한 칸이 마련되어 있다. 사방을 둘러 마루가 놓여있는 운치있는 정자다. 마루 밑에는 아궁이가 있어 불을 뗄 수도 있게 하였다. 송정 위로는 영당이 자리하고 있다. 영당은 문이 잠겨 있어 담 밖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중턱에 있는 또 다른 건물로 발길을 옮긴다.

 

 

 

 

 

 

 

블록 담장에 무너진 담벼락 널려있는 기와가 있는 시산사와 보수를 끝낸 송산사 


시산사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을 보니 담장 한편이 무너져 있다. 담장도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진 것이라 아마 다시 보수를 하느라고 무너트린 것 같다. 한편을 보니 기와가 쌓여있는데 조금은 의아스럽다. 쌓여있는 기와가 보수를 하기 위한 기와인지, 아니면 걷어낸 기와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시산사를 한 바퀴 돌아 옆에 있는 송산사를 가니 지난해 복원을 한 듯 말끔히 정리가 되어 있다. 시산사가 블록 담장인데 비해, 송산사는 돌과 흙으로 되어 있어 한층 고풍스럽다. 송산사에서 주변을 한번 돌아보니 대문 곁에는 지난해 보수공사 때 마시고 버린 듯한 플라스틱 병이 눈에 띠기도 한다. 공사를 하고 난 후 마무리를 제대로 안한 탓이리라. 이 많은 건물들 하나하나가 다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애환을 담고 있는 듯해 더욱 소중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계단을 내려와 선비문화관 옆을 보니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곁으로 한옥이 보인다.

 

 

 

 

 

엉망인 한정의 모습 


한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아 이 건물도 서원에서 기거를 하던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으리라. 그런데 문 입구부터가 사적지 안에 있는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대문이라니. 그나마 처마는 양철이 다 떨어져 흉물이 되어있다. 보수를 할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엉망으로 해놓고 작업을 하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식을 심어줄까? 저 양철은 어차피 떼어낼 것인데 미리 뗄 수는 없었을까? 대책 없이 늘어만 놓고 있는 작업현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한편에는 보수에 쓰일 기와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붉은 기와가 쌓여있다. 현재 기와의 상태로 보아 붉은기와를 이곳에 올릴 것으로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왠 붉은 기와일까? 이곳저곳을 돌아보니 참 대책 없는 복원 현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정과 담을 마주하고 필양사의 대문을 보니 참으로 한심하다. 비에 젖을까봐 덮은 비닐은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고, 마당에는 깨진 기와조각들이 널려있다. 도대체 누가 이곳 사적지 복원공사를 하기에 이렇게 엉망으로 널려놓은 것일까?

 

 

필양사의 대문은 비닐천이 찢어져 너덜거리고 마당에는 깨진 기와가 널려있다. 


여러 곳의 복원공사 현장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널려놓은 현장을 보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날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사를 시작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봄이 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텐데 이렇게 벌려놓고 있을 것인지. 하루 빨리 모든 것이 제대로 정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유적지를 찾아가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이런 현장을 목격할 때다. 보수, 복원도 정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잘하지 않을까 싶다. 혹 예산이 미쳐 준비되지 않아 빠른 복원을 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고 하겠지만, 그렇다면 주변 정리라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서원을 관리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서원을 뺀 마을 입구의 한정, 필양사 등은 개인 소유로 세 문중이 나누어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보수를 하지 못하고 있는 한정 등은 관리를 하고 있는 분이 일본에 있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망가진 채로 방치가 되어있다고 한다. 이유야 알겠지만 마을을 선비마을로 지정을 하였으니 이러한 망가진 것들도 함께 관리를 해서 좀 더 쾌적한 문화유적지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조건적인 담당자들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사적지가 있는 마을이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고 보면 이러한 훼손된 채로 방치되어있는 건축물로 인하여 관광객들이 느끼는 인상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출처 : 문화예술
글쓴이 : 온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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