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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본기에 대하여 - 석가

_______! 2010. 4. 11. 19:34

예전에... '망가는 벗어버려'라는 그림을 모 사이트에 올렸다가 그림을 보는 관객끼리 살짝 언쟁이 붙었는데요.

 (저는 가만히 있었습니다만..;)

 내용인 즉슨

 

 '만화풍을 버리고 리얼체로 가는 것이 한국풍은 아니다'

 '대체 이 그림이 한국만화 살리기랑 무슨 상관이냐'

 '비단 위 그림을 가지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만화독립, 만화독립 하면서 대체 독립시켜놓은 것이 뭐냐, 재미없고 허접한 그림의 만화만 만들어놓고, 한국꺼다.. 하면 한국만화냐, 만화독립이라는 말 쓰지좀 마라'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한국만화'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 이렇게 글이 시작하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이후에, 제가 한번도 '한국만화 = 실사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전 윗 문제제기에 반박을 하려고 그 글을 썼던 것이 아닙니다.

잘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시종일관 주장하던 것은 '일본만화의 스타일을 벗어버리고, 기본기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길이다'였죠.

우리의 스타일이라는게 어딨습니까, '아, 이제부터 한국적인 스타일을 만들어야지.'하면 우리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스타일'은 겉 옷일 뿐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고,

문제는 그 겉 옷을 걸쳐야 할 '몸'(기본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죠.

 

'실사체'는 스타일의 일종일 뿐이고, 그를 받쳐주는 것은 '기본'이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기본기'와 '실사체'를 동일시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실사체'는 스타일의 한가지이고, '기본기'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자세'죠.

 

두번째.

 

'기본기'는 스타일과 장르를 막론하고 어떤 예술작품을 만들어 가야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소양'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건 학교에서 배울 수도 있고, 혼자 독학으로 배울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 배우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죠.

 

문제 제기를 하셨던 'windship'님께서 쿠엔틴 타란티노 말씀을 하셨죠?

'쿠엔틴 타란티노는 정식적인 영화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하루에 한편씩 꼬박꼬박 영화를 봤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얘기죠.

'정식적인 교육'이 '기본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많은 이들이 그 '정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음으로써 기본기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기본기는 각자의 성향의 문제일 뿐이다, 라는 발언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누가 '기본기'를 학교에서 가르쳐준다고 합니까.

'기본기'는 '기술이나 지식'이전에 앞서 '자세'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본적인 이론 교육' 또한 '기본기'에 포함되는 한 가지 필요충분조건일 뿐이지, 그 자체가 '기본기'의 상위개념은 아니라는 것이죠.

쿠엔틴 타란티노가 정식적인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자유롭게, 그러나 꾸준히 영화를 감상한 자체가 이미 '기본기 수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무리 진보적이라고 해도, 전통적인 화법에서 완전히 벗어난 예술영상를 만든게 아니잖아요.

'저수지의 개들'부터 시작해서 '킬 빌'에 이르기까지,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물론 무척 새롭고 충격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적어도 '관객이 보는 영화'라는 틀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습득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인정을 받는 겁니다.

적어도 그는 러닝타임 안에 자신이 구성하고 보여주어야 할 요소를 알고 있고, 아깝지만 버려야 할 것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을 타란티노는 이전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이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충분히 습득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죠. 그게 바로 '기본기(자세)'라는 겁니다.

결코 요소요소에만 집착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윤태호 선생님의 'YAHOO'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주인공이 도장을 가서 싸우는 법은 안가르쳐 주고 맞기만 하니까, 버럭 화를 냅니다.

'몸 풀 시간이나 달라!'고,

그러자 건달 사범이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항상 풀려 있어야 해, 도장에서는 도장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만 가르친다.'

 

학교도 마찬가집니다. 어찌보면 '정식적인 교육'이란 고작 그 정도 입니다. 기본소양은 혼자서 이루어야 하는 것이고, 어찌 보면 그게 다입니다.

 

제가 무척 존경하는 추사 김정희 선생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法可以人人傳, 情神興會人人所自治' - 글을 쓰는 법은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지만, 그 정신과 흥취의 일어남은 스스로 도달하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지망생들이 그 '글을 쓰는 법'(스타일)에만 현혹되고 있고, 그를 배우면 무엇이든 다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멋진 옷을 입기 전에, 군살 없는 몸을 만드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일이지만, 대부분은 그를 귀찮아서 지나치고 그저 비싸고 뽀대나는 옷으로만 가리려고 합니다.

이는 '일본만화의 스타일'을 맹목적으로 따라함으로써, 자신의 실력의 미약함을 감추려는 행태와 다를 게 없죠.

비단, 그게 꼭 '일본만화의 스타일'이라 위험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스타일'자체만이 목적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근데 더 심각한 건 뭐냐면, 스타일이고 나발이고 간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접하고 감상하는 작품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거죠.

제가 이전에 쓴 글에서 '일본만화를 벗어버리자'라고 주장했던 것은, 일본만화 자체가 싫어서 그랬다기 보다는, 너무 한쪽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맨날 보고 영향받는게 일본이면, 당연히 일본의 화법에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스타일이고 기본기고 뭐고는 둘째치고, 그냥 일본문화 자체가 어떤 우상이 되어버릴 우려가 아주 많다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가끔 돌아다니다 보면 '동인'친구들을 많이 만나거든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이 친구들은 말하는 게 거의 다 똑같습니다.

우리 상식에서는 '오다 에이이치로'를 부를 때, '오다씨'라고 부르는 게 정상인데,

그들은 '오다 상'이라고 부릅니다.

왜 '상'을 붙이냐고 물어보면, 일본사람이라 일본 호칭에 맞게 불러줘야 맞답니다.

그렇다면

일본사람들도 배용준을 부를 때는'욘사마'가 아니라, '배용준씨'라고 불러줘야 맞는거 아닙니까?

발음이 되고 안되고는 걔네 문제고, 그럼 '욘씨'라고 부르던가.

 

근데 더 가관인 것은

저를 부를때도 '석가오빠, 석가씨'가 아니라,

'석가사마'

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_=;;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다시 '기본기' 이야기로 돌아와서,

다양한 작품 섭렵에 기반한 기본기가 없이 한 가지 스타일에만 연연하는 것은, 창작자에게 있어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림이나 만화에 있어서 '일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자체는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 좋아하는 이상형이 있고, 그 이상형을 따르는 것은 배고플 때 밥을 먹는 것 만큼이나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 '일본의 스타일'에 현혹된 '대부분의'(다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스타일'에서 당췌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스타일리스트'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작가'는 못되죠.

좀 낮뜨거운 얘기 좀 하겠습니다.

 

위의 두 그림은, 아무에게도 공개 안한 제 습작입니다.

예전에 페인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소위 '일본스타일'의 색감 연습 한답시고 일본 풍 미소녀 작업들을 잠깐잠깐씩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렸던 것들 중 일부죠.

제 연습노트를 마음대로 들춰볼 수 있는 친한 친구들은 알지만, 제 연습장에는 실사풍 그림이 아니라 오히려 저런 일본틱한 그림이 더 많습니다. 고교때부터 그래왔죠.

 

윗 그림의 경우는 컬러가 인상적이었던 어떤 아마추어의 그림을 흉내내보고 싶어서 그렸던 것이고, 아래 그림의 경우는 제가 좋아하는 쓰카사 준이라는 일러스트 작가의 흉내를 내보고 싶어서 그렸던 것인데, 중요한 것은 두 그림 다 '카피'가 아니라 '창작물'이라는 점입니다. 포즈나 생김새, 분위기는 제가 만든 '제 것' 이니까요.

 

위의 예시들이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그리 잘 그린 그림도 아니고, 완성품도 아니지만,

전 지금도 일본 미소녀풍의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어느 정도는 '아주 쉽게, 그리고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쉬운'일입니다! 왜냐,'기본'을 그리고, '스타일'의 공식만 살짝 바꿔주면 되는 것이니까요. 마치 액션 피규어의 옷을 바꿔 입히는 정도의 수고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 위와 같은 그림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싫습니다. 전 남들이 보는대로 확실히 '실사체'에 더 관심이 많죠. 그래서 지금까지 그런 류 위주로 작업해온 것이구요.

 

저는

지금

결정적으로 '재수없는 말' 한 마디를 하려 합니다.

결론적으로,

전, 실사체와 만화체, 두 가지 모두를 다 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건 내가 스스로 생각한 이야기에 맞는 그림을 유연하게 그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그건 저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이쯤되면 '석가 이시키, 잘난 척도 정도가 있지'라고 생각하실 것 같네요.(저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_-)

하지만, 그 이전에 궁극적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철판을 얼굴에 두르고 위의 두 그림을 하드에서 꺼낸 거라는 점을 더 먼저 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와 같이 스타일을 자유롭게 바꾸는 것은 저 뿐 아니라, 어느 정도 '기본기'에 관심이 있고, '스타일'에도 어느 정도 섭렵을 했으며, 그림을 오래 그려온 사람이라면 거의 다 할 수 있는 테크닉이라는 얘깁니다.

 

이렇듯, '스타일'은 아주 가벼운 '옷'과 같은 겁니다.

'기본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 창작을 하는 데에 있어서 아주 잘 드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타란티노의 영화에는 액션 뿐 아니라, 코미디도 들어있고, 심리 스릴러적인 요소도 들어있습니다.

이는 타란티노가 '장르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기본기가 있기 때문이지요.

 

요시토 우스이는, 수십권의 크레용신짱을 그리면서도 계속 같은 스타일을 유지했고, 제가 강조했던 '기본기'-  그림에 대한 - 에 대해서 고민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웃기는 상황, 그 상황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라는 의견은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근데, 과연 요시토 우스이라고 해서 '그림'에 관한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없었을까요? 그냥 그 자신이 그려내는 그림에 대해 좀 더 설득력을 획득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림에서의 기본기는 비단, '데생력'이나, '해부학, 원근법'의 개념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는,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반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우리가 요시토 우스이에게 회화적이거나, 사실적인 그림을 원합니까? 아니죠, 그 사람에게는 그런 명랑한 형식의 그림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구요. 그런면에서 요시토 우스이 또한 '기본'이 된 사람이란 겁니다.

 

그리고,

왜 그 '기본기'라는 것을 그렇게 좁게 생각하십니까.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지망생이나 학생들의 '자유로운 습작'이나 '상상'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도 그를 배려했기 때문에 '기본기'를 놓쳐버리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만화 산업이 고전을 겪고 있다고는 생각 안하십니까?

만약, '기본기의 습득'이라는 틀 때문에 '자유로운 습작과 상상'이 방해받았다면, 그 꼴을 안보면 되죠. 학교를 안가면 되고, 기본기 타령하는 바닥에서 빠져 나오면 되죠.

 

만화가는 그림도 그려야 하고, 글도 써야 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그림에 관한 기본기와, 글에 관한 기본기를 모두 수련해야 합니다.

그를 수련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 오늘부터 난 그림의 기본기를 수련할테야, 그러니까 해부학책부터 사서 달달 외워야지.'

이건 아닙니다.

 

'목표'만 확실하면 됩니다.         

단지 '뭘 그리고 싶은지'가 아니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 이야기를 건네고 대화하고 싶은 대상이 누구인지,

난 어떤 문제제기를 하고 어떤 대안을 내놓을 것인지.

그럼 그 다음은 줄줄이 김밥처럼 줄줄줄 자연스럽게 딸려나오게 됩니다.

그 다음에야 자연히 '기본기'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같이 딸려나오죠.

내가 어떤 부분에 자신이 없는지,

그를 보완하기 위해 어떤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고, 언제까지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그게 바로 '기본기'의 개념이고, 기본기가 갖춰진 다음에야 스타일의 날개를 달고 비행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마음을 먹기 되기 까지는, '스타일'이 그 계기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내가 만약 비행사가 되고 싶은데, 왜 비행사가 되려고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비행조종사들이 무선교신을 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여서 단순히 그걸 하고 싶었다거나, 아니면 기장이나 부기장의 제복이 멋있었다거나 하는 단순한 이유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처음 비행사의 계기는 그렇게 시작했더라도, 그 꿈을 놓지 않고, 차근차근 목표를 세워 나아가야 하는 게 맞고, 그를 이루면 더 많은 산이 기다리고 있는 '진짜 비행사'가 되는 겁니다.

 

계속 언제까지나 '칙,칙 여기는 윈스턴, 칙 칙 대답하라 오바!'라고 혼잣말을 하며 흉내만 낼 겁니까? 그건 자유를 보장해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죠.

 

비록 우리 눈에는 그런 '기본기'에 대한 고민이 없이 작가가 된 사람이 많아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민이 없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더 무서운 사람인 법이죠.(원래 저 같이 글 빨이 없고 무식한 놈일 수록 말을 장황하게 많이 하는 법입니다. 유식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하고 싶은말을 간결하게, 그리고 쉽고 명확하게 하죠. 우리는 쉽고 간결한 화법을 간단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쳤건 다 나름대로의 혹독한 고민과 싸워 이긴 사람들이고,

그들 나름대로의 '기본적인 소양'을 다 갖춘 사람들 임에는 분명합니다.

 

세상에 쉽고, 편하고, 자유로운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그만한 댓가를 지불해야 하죠.

그런면에서

젊은 시절에 내가 쌓아가야할 기본기에 대해 고민하는 정도로 내 인생과 내 작업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보다 더 싼 댓가가 어디있을까요.

 

'자유와 상상의 보장'을 부르짖기 이전에,

우선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내가 이루려고 하는 꿈을 위해 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곰곰히 해보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출처 : 상명대 시나리오 스터디
글쓴이 : 곤지암바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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