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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10시 인천 옹진군 백령도 앞바다 수면 위로 갈기갈기 찢긴 해군 초계함 천안함 함미 절단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온 국민의 눈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는 불과 11분밖에 안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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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52분 천안함 함미 갑판 부분이 물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작업요원들이 갑판 위로 올라서고 있다. |
15일 오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앞바다. 오전 9시 삼아2200호의 크레인이 가동되기 시작한 지 11분 만인 9시11분 천안함 함미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추격 레이더를 시작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푼 미사일과 부포, 사격통제실 순으로 뒤를 잇더니 9시20분쯤에는 갑판이 완전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외관상 함미 절단면은 사선으로 너덜너덜 10m 넘게 찢겨져 있어 사고 당시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선체 절단부위 강판은 왼쪽과 오른쪽이 비대칭 상태로 커다란 톱니바퀴 모양으로 우그러진 채 파괴돼 있었다.
이렇게 금세 떠오를 수 있는데도 천안함은 지난 3월26일 오후 9시22분 강한 폭발과 함께 반파된 뒤 만 20일 동안이나 차갑고 어두운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실종자 가족들과 온 국민의 가슴을 타들어가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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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24분 천안함 함미 추격 레이더에 이어 절단면을 감싼 그물망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해군 해난구조대 요원들이 인양용 로프를 설치하고 있다. |
이날 천안함 함미 인양작업은 오전 8시44분 실종자 수색이 원활히 진행되기를 바라는 기원제로 시작됐다. 인양 현장에서 1.8㎞ 떨어진 독도함을 비롯해 인양 현장에 투입됐던 모든 함정에서 ‘부~웅’ 하는 기적이 15초 동안 이어졌다. 독도함에 도열해 있던 군 장병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천안함 실종 승조원 44명의 넋이라도 타고 올 것을 기원하는 의미로 44개의 흰색 구명 튜브를 바다 위로 던졌다.
오전 9시 정각, 3개의 쇠사슬로 천안함 함미를 지탱하고 있던 삼아2200호의 크레인이 가동되면서 본격적인 인양작업이 시작됐다. 함미 뒤쪽 스크루 추진체와 절단면 부근 등에 연결된 쇠사슬 3개를 감아 올리는 소리가 해상에 울려퍼졌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와 예상보다 잔잔한 파도로 작업 상황이 나쁘지 않았지만, 바닷물과 유류로 가득차 1889t에 달하는 함미를 인양하는 현장에는 시종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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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11분 천안함 함미의 가장 윗부분인 추격 레이더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9시11분쯤 인양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해군 해난구조대(SSU)와 특수전여단 수중폭파대(UDT) 대원들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요원들이 쇠사슬 위치를 확인하며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계속하는 사이 사격통제 레이더실 옆에 설치된 40㎜포, 하푼 미사일 발사대가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실종자 시신과 유류품 유실을 막기 위해 안전망으로 감아 놓은 절단면도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9시22분, 함미 가장 끝에 설치된 76㎜포 등 상부 구조물 대부분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38명의 작업요원들이 고무보트에서 함미로 옮겨갔다. 작업요원들은 절단면에 설치한 안전망을 집중 점검한 뒤 안전망을 추가로 설치했다.
자연배수 작업이 시작된 9시28분쯤 천안함 함미 주갑판이, 9시34분에는 76㎜포 아래쪽 탄약고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함미가 어느 정도 떠오르자 인공배수가 진행됐다. 크레인과 연결된 다리를 통해 작업요원들이 10가지 종류의 배수펌프 22대를 함미로 옮겨 실었다. 작업요원 45명이 오전 9시43분쯤 함내로 진입해 배수펌프를 설치했다. SSU 대원들도 함상에 진입해 실종자 수색작업을 병행했다. 인양작업은 예상보다 2시간가량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배수 작업이 끝나면 함미를 바지선에 탑재해 함내 수색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바지선에는 군 관계자 26명, 윤덕용 KAIST 명예교수 등 민간 조사 위원 10명, 미군 2명이 천안함의 바지선 탑재를 기다리고 있다.
백령도 = 이용권기자 freeuse@munhwa.com, 강버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