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의 상표화된 차를 판매했던 이한영선생이 차인들 사이에서 관심이 뜨거워졌다. 군의 이한영선생의 생가복원등으로 10여억원의 투자를 약속한 가운데 이한영선생의 백운옥판차가 밝혀지는 데는 강진읍 목리에서 생활한 유재의씨의 결정적인 역할이 숨어있다.
이한영선생이 알려진 것은 유재의씨의 딸 유종현이 전남여고를 다니면서 겨울방학 숙제로 제출한 떡차에서 시작됐다. 당시(1939년) 농무관 이에이리씨가 강진읍 목리를 찾아 떡차 확인 조사에 나서게 된다.
조사를 하고 나오면서 유재의씨는 또 하나의 진귀한 차가 있다고 백운옥판차를 내놓게 된다. 이에 이에이리씨는 수소문끝에 성전면 월남리 백운동에서 백운옥판차의 실체와 이한영선생을 만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재의씨가 당시 집에서 내오던 떡차를 주목해야한다. 이에이리씨는 ‘조선의 차와 선’이라는 책에서 유제의씨의 손에는 한꾸러미의 떡차(청태전)가 마치 동전모양으로 길게 매달려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또한 청태전을 만드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설명까지 곁들였다.
동그라미에 가까운 타원형으로 긴지름이 한치닷푼(약4.5㎝), 짧은지름이 한치서푼(약3.9㎝), 두께 세리(0.1㎝)쯤이 평균이지만 두꺼운 것과 얇은 것이 있다. 표면이 조금 매끄럽지만 뒤는 거칠었다. 대체로 요철이 많은데 이것은 만들 때 수축된 것이 아니다. 군데 군데 찻잎 꼭지가 보인다. 빛깔은 암흑색이며 약간 찻빛을 띠고 있다. 만드는 법은 장흥위씨의 것과 달리 대나무테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에 유재의씨집에서 떡차를 직접 만들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유씨가 구입한 떡차일 경우 만드는 제작과정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기 힘들어 정확하게 기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차를 접하기 힘든 시절 유재의씨는 어떻게 청태전을 만들어 차를 마실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당시 유재의씨는 강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거부였다. 현재 한전 강진지점앞에 자신의 호를 따서 송파정미소를 이름 짓고 운영했다. 당시 강진읍 목리 서부지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근무했고 인근지역의 논을 거의 소유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또 유재의씨는 장흥경찰서에 근무했던 박인철씨와 합작해 운수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택시회사에서 시작한 운수회사는 현재 금호고속의 전신인 광주고속으로 사업이 확장돼 나가게 된다. 이어 유씨는 서울에 삼양교통을 설립해 시내버스 사업에 뛰어드는 등 사업에도 활발할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런 엄청난 부를 가진 유재의씨는 자연스럽게 떡차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당시 강진읍 목리 주민들의 상당수가 도암면 백련사를 찾았다. 신앙심으로 백련사를 찾은 주민들은 매년 봄철 야생녹차를 수확하는 시기에는 많은 주민들이 녹차수확에 참여했다는 것.
여기에 직접 녹차를 볶는 일에도 매년 참여하는 주민들이 많아 강진읍 목리 주민들에게 녹차를 접하는 것은 손쉬운 상태였다. 이런 상황으로 봐서 강진읍 목리에서는 근대 차문화를 대변하는 청태전이 이미 만들어져 주민들에게 이용됐을 가능성이 높게 나타난다.
현재 유재의씨의 1천여평의 생가는 그대로 남아있다. 유씨의 기와집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점점 예전 고택의 모습들은 사라지고 있다. 후손들이 남아 생활하면서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 강진읍 차문화의 한 공간도 서서히 모습을 감춰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유씨가 운영하던 송파정미소도 본관건물만 덩그랗게 남아있는 상태이다.
강진의 차의 역사는 이후 도암면 백련사 야생 죽로차, 강진읍 보은차, 만덕산 일심차, 다산 야생차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강진의 차문화는 말 그대로 소리없이 지인들을 통해 판매되면서 후대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당연히 대외적인 인지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녹차의 품질은 최상품을 자랑한다. 재배한 녹차가 아닌 자연상태의 야생차를 이용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인근 보성지역과 강진이 녹차전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미 녹차브랜드로 전국에 알려진 보성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강진에는 차의 전통이 남아있다. 백련사, 최초 상표화된 백운옥판차의 이한영선생, 또 곳곳에 이어져온 녹차의 전통은 분명이 보성과는 차별화가 된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 역사적 자료가 불확실하다. 현창사업이 추진된다는 이한영선생, 백련사, 강진읍 목리의 유재의씨는 정확한 자료를 갖추고 사진등을 찾는 작업들을 뒤따라한다. 역사적 증거를 가지고 당당하게 강진의 차문화를 자랑해야만 강진차의 청사진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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