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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양주에 있는 온릉(중종의 正妃인 단경왕후의 능, 홍살 9개) |
☞ 홍살문(紅--門)은 왕릉의 출입문으로 이 곳부터 왕릉의 영역임을 알 수 있으며, 홍살문은 기둥 2개를 세 우고 위에는 지붕없이 살만 박아 놓았습니다. 나무 기둥과 살에는 붉은 칠을 하여 이곳이 신성한 곳임을 알림은 물론, 붉은색은 악귀를 내 쫒는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또한, 홍살문은 홍전문(紅箭門)이라고 도 하는데, 당시 백성들이 화살 '전(箭)'자를 '살'로 발음하여 지금 대부분이 있는 홍살문이 되었다고 전 해지기도 합니다.
☞ 홍살의 수는 홍살문마다 똑같지 않아서 조사해 보니 3가지(9개, 11개, 13개)가 있었으며, 중앙에는 홍살 2개가 태극 모양 있는 곳을 지나면서 꼬여서 위에는 3개가 됩니다. 그러나 갯수에서는 둥근 태극 안에 든 것 1개만 유효합니다. 홍살문 중에 홍살의 수가 9개인 것이 가장 많은데, 그 이유는 9가 완성된 수라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홍살 수가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 이유가 있을 터인데...
☞ 그 이외에 동구릉 같은 경우에는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폭이 긴 홍살문을 만납니다. 이 홍살문에는 홍살 이 19개 있습니다. 각 각의 왕릉 앞이 아닌 왕릉군 초입에 있는 홍살문의 갯수는 입구의 넓이에 따라서 의미없이 홍살을 박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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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오릉의 익릉(홍살 11개) |
▲ 파주의 장릉(홍살 13개) |
☞ 홍살 중앙에 홍살 2개가 꼬인 부분에는 둥그런 태극이 걸려 있습니다. 태극 문양은 3 태극으로 3태극은 하늘, 땅, 사람을 의미 한다고 합니다.
☞ 왕릉은 문화재청 산하 능지구관리소(13개소)에서 관리를 하지만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효종대왕의 녕릉(寧陵)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성역화 사업을 하면서 세종대왕 유적관리소로 분리, 격 상(1977년)되어 다른 곳에 비해서 유적지 보존 관리가 엄격히 되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한 가지 옥의 티는 여주 영릉의 홍살문을 콘크리트로 복원을 하였더군요. 이왕이면 전문가의 고 증을 거쳐서 목재로 복원을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홍살문에 달아놓은 태극도 크기가 작고 조잡 스러워서 영... 눈에 거슬립니다. 이 것 역시 새로 복원하도록 제안을 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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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릉의 입구에 있는 홍살문 |
▲ 여주의 영릉(콘크리트로 복원) |
☞ 사실은 왕릉을 들어서기 위한 첫 관문은 홍살문 앞에 있는 금천교라는 다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대부분 홍살문 20여 미터 정도 앞에 있으나 지형에 따라서 더 멀리 있는 곳도 있습니다. 금천교는 훼손되어 없어 진 곳도 많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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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의 금천교 |
▲ 강릉의 금천교 |
▲ 융릉의 금천교 |
☞ 금천교는 길이 2미터 정도, 폭은 지형에 따라서 다르나 3~4미터 정도 되며, 길쭉한 돌을 6개에서 8개 정 도를 올려 놓았습니다. 길이가 조금 긴 곳은 중간에 지지돌을 놓고 앞뒤로 돌을 올려 놓았으며, 대부분의 금천교 4 귀퉁에는 돌이 밀려나지 않도록 돌기둥을 박아 놓아서 약간 위로 튀어나와 있습니다.
☞ 귀퉁이에 돌기둥이 없는 곳은 얹어 놓은 돌판이 옆으로 벌어져서 훼손된 곳이 있으며, 특이한 곳은 융건 릉의 융릉(사도세자의 능)의 금천교로 난간이 있는 원대황교(元大皇橋)로 아예, 다리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
☞ 조선조의 왕릉은 27대 왕(王), 왕비(王妃), 계비(繼妃), 또는 추존(追尊)된 왕들을 포함하여 전체 44기가 있습니다. 그 중, 북한에 2기,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의 장릉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도권 일원에 41기의 왕릉이 산재해 있으며, 주로 한강 이북에 왕릉군이 많이 있습니다. ☞ 2003년 1차로 42기의 왕릉 답사를 완료(일부 비공개 왕릉은 초입까지만 다녀옴)하였으며, 2004년 가을 에 일부 비공개 왕릉의 답사를 완료하였습니다. 수도권에만 왕릉을 포함하여 조선조 왕가 무덤들이 107 기(능 42기, 원 13기, 묘 52기)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답사한 곳이 한 80여 곳 정도 되는 것 같습 니다. 그리고 왕릉 답사를 다니면서 주변에 선현들의 묘도 발견하면 살펴보고, 주로 석물들을 사진에 담 고 있습니다.
◈ 계비 : 왕의 재위 중에 왕비(正妃)가 먼저 사망하였거나 폐위되었을 경우에 새로 맞은 왕비를 계비라고 하며, 한 명 이상일 경우에는 제1계비, 제2계비라고 합니다. 계비를 계후(繼后)라고도 합니다.
◈ 추존 :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사후에 왕의 칭호를 부여한 경우이며, 이후에는 왕릉의 형식을 취해 줍니다. 조선조 추존된 왕들은 5명 입니다.
☞ 위의 사진은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온릉(7일만에 폐위된 비운의 왕비, 중종의 正妃인 단경왕후의 능) 으로 조금 외진 곳에 있는 비공개 능이며, 사후에 복원되어 왕릉으로 꾸며진 아담한 능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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