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엉강을 타고 흐르는 마지막 왕조의 비애
베트남 중부지방으로의 여행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다. 비포장도로 등 불편한 교통과 낡은 가옥들 때문이 아니라 곳곳에 널린 유적들이 오래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93년), 참파 문명이 있던 미손 유적지(99년), 15~19세기 동서무역의 중심지였던 호이안(99년) 등….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연도는 괄호표시)된 이들 베트남의 대표적인 유적지 3곳이 모두 새우처럼 잘룩한 허리를 가진 베트남 반도의 중간에 있다. 조용한 거리의 모습과 강물을 따라 여유 있게 흐르는 시간이 가히 베트남의 숨겨진 속살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만하다. 시간이 없어 후에만을 잠시 보고 떠나야 하는 여행자의 심정이 아쉬울 뿐이다.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阮) 왕조(1802~1945)의 도읍이었던 후에(Hue)는 도시 한복판을 흐르는 강물이 인상적이다. 종종 고깃배 한 척이 강물 위로 고요히 떠 있는가 하면, 강가의 흙먼지 일으키는 좁은 길을 따라 넌(삿갓모자)과 하얀색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학생들의 자전거가 햇살에 반짝거린다. 일명 ‘향수(香水)의 강’이라 불리는 이 강의 이름은 흐엉 강. 강 주변에 향이 많이 나는 꽃나무을 심어 향기 가득한 이 강가에 나와 날마다 머리를 감았다는 향수 공주의 전설이 전해진다. 한강보다 규모는 작지만 기품을 잃지 않은 이 강을 따라 북쪽 구시가 지역 주변에 왕궁과 박물관 등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후에 성
후에 여행은 응우옌 왕조의 도읍이였던 후에 성을 둘러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거대한 성벽과 흐엉강의 지류가 해자 역할을 하는 왕궁의 중심에는 중국의 자금성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 모방했다는 태화전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9개의 거대한 대포와 9명의 황제를 기리는 9개의 청동 분향로, 그리고 이러저러한 건물 잔해가 왕조의 흥망성쇠를 상징한다. 베트남 전쟁 등 수많은 전쟁으로 많이 파손된 모습이지만 10km가 넘는다는 성벽 규모는 과거 찬란했던 한 때를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다. 19세기 어느날 수척의 군함을 이끌고 나타난 프랑스 군대가 바다로부터 대포를 펑펑 쏴서 멸망시켰다 한다.
시내 남쪽으로는 왕릉들이 즐비하다. 흐엉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응우옌 왕조 13대 황제중 6명의 황제의 능이 있다. 퇴위한 황제의 별궁과 무덤을 겸한 민망 황제릉은 좌우 대칭미가 뛰어나고, 장기집권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산 뜨득 황제릉은 악명에 걸맞게 규모도 가장 크다. 프랑스 식민시절에 만들어진 카이딘 황제릉은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결합돼 높은 예술적 가치를 자랑한다. 1920년부터 10여년 동안 동서양 건축양식이 혼합된 퓨전 스타일로 사치스러운 모자이크와 타일, 유리공예 등으로 장식됐다.
#호치민 적거지
흐엉 강변의 티엔무 사원도 필수 여행코스다. 400년이 넘은 사원에는 21피트 높이의 7층 석탑이 빛 바랜 다홍색으로 서 있다. 호텔까지도 유서 깊은 곳들이 많다. 흐엉강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사이공 모린 호텔의 경우 무려 100여년 전인 1901년에 주춧돌이 세워졌다고 한다. 후에 주변엔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호찌민의 생가와 검소하게 말년을 보냈던 적거지도 찾아 볼 수 있다.
후에에서는 별다른 목적 없이 구시가를 걷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얼룩덜룩 역사의 때가 묻은 오래된 회벽과 낡은 문을 지나면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건물의 명칭이나 현판들이 모두 한자로 씌어진 건물들은 한 눈에도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건물이 석재가 많다면, 이곳은 대부분 시멘트로 마감된 것이 특징이다.
^왕조는 사라졌어도 그 흔적은 오늘날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많이 쓰는 응우옌(Nguyen)이란 성씨 속에 역력히 남아 있다. 사실 이 왕조는 베트남의 근대화에 큰 공을 세운 왕조라 할 수 있다. 북쪽의 하노이를 기반으로 한 또 다른 왕조인 정(쯔엉)씨 왕조와 대립하면서도 베트남의 국토를 남쪽의 메콩강 일대까지 확장해 오늘날 베트남 국토의 기본 골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캄보디아는 이를 베트남에 뺏기면서 내륙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후에 남부에 있는 호이안도 응우옌 왕조가 부국강병책의 일환으로 서구 열강을 비롯, 중국, 일본 등과 교역하기 위해 만든 국제교역항이었다. 18세기 말까지 호이안은 동남아 최대의 국제무역항으로서 베트남의 근대화에 기여했다.
밤이 되면 흐엉 강은 보트 투어의 명소로 바뀐다. 베트남 전통 양식의 작은 배를 빌려 강위로 나가면 도시의 불빛들이 강물을 따라 춤추듯 흐른다. 배 위의 악사들이 전통악기를 사용해 들려주는 이 지방의 고유 음악은 마치 역사의 아픔을 전하기라도 하듯 흐느끼듯 속삭이듯 작지만 높은 음으로 축축한 밤 공기를 가른다. 반짝반짝 눈빛을 빛내며 서로의 눈동자를 쳐다보는 여행객들도 문득 꿈틀대며 흘러가는 강물에 온갖 상념을 씻는다.
일행중 누구 하나가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곳은 하노이와 호찌민과 달리 외국인은 많으나 한국인 관광객이 적어 호젓한 느낌을 준다. 베트남 여행의 진수를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진정 이곳 중부지방을 한달이상 길게 여행해야만 할 것 같다”고. 우리는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가 이 곳을 다시 찾아야 할 것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여행메모>
◇항공 및 교통= 베트남항공이 하노이와 호찌민에서 서울을 오간다. 하노이에선 쾌적한 대형 기종이 뜬다. 비행시간은 하노이에선 4시간 남짓, 호찌민은 5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하노이와 호치민에서 후에로 들어가는 국내선이 연결된다. 한겨레 투어(02-2000-6901)에서 중부지방을 주로 둘러보는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시내의 가까운 거리는 시클로를 타보는 것도 재미있다. 시클로는 자전거와 인력거를 결합한 것으로 1시간에 대략 3~5달러를 받는다.
◇주변 볼거리=호이안은 후에에서 다낭을 거쳐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 840여 채의 고옥(古屋)들로 빼곡한 호이안의 올드 타운은 15~19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으로 번성했던 곳이다. 후에에서 다낭으로 넘어가는 하이반 고갯길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뛰어난 절경으로 특히 유명하다. 다낭과 호이안을 잇는 길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건설해 ‘따이한 도로’로 불린다. 고대 유적지 미손은 호이안에서 1시간 거리다. 2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어졌던 참족의 참파왕국 신전이 남아 있다. 베트남에 멸망한 후 정글 속에 묻혀 있다 19세기에 발굴됐으나 베트남전의 폭격으로 거의 파괴됐다. 힌두교를 주조로 한 건축물과 조각 등이 남아있다.
# 미손 유적지
◇음식ㆍ숙박= 후에의 음식은 향신료를 거의 쓰지 않아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고수 등 독특한 향을 내는 남방 특유의 채소류도 입맛을 들이면 별로 나쁘지 않다. 일부 특급호텔이나 대형 음식점 등에서는 여행객들을 위해 응우옌 왕조 당시의 관복을 입고 황실요리를 먹는 이벤트를 열어 준다. 길거리에서 파는 쌀국수는 친근감이 있고, 웬만한 식당에서 나오는 중국 음식도 별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의 커피 맛은 일품이다. 시내 곳곳의 카페에서 즉석 추출기에 올려 놓고 뽑은 부드럽고 향긋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 커피 한 잔에 1만~2만동(1달러는 1만5,000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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