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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그러나 육지의 탐학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파라다이스’는 섬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산림으로 도망가서 무리를 이루기도 하지만, 그 숲 역시 육지의 일부분일 뿐이다. 섬은 뭔가 다르다. 가까운 섬은 분명히 육지의 연장선상에 있고, 도서민의 삶 역시 육지에 복속되기 마련이지만, 그렇더라도 섬의 실체가 바다 위에 존재함은 엄연한 사실이다. 지척에 있는 섬이라도 틀림없이 섬은 섬일 뿐이다. 누구든 썰물 때가 아니면 지척의 그곳을 걸어서 갈 수 없다.‘어떤 섬도 걸어서 갈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섬의 존재 이유는 육지와 다르다.
문화적 원형질로 볼 때, 섬의 탄생 자체가 신화적이다. 신화적이라 함은 섬을 매개로 무수한 은유, 끝없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뜻이다. 신화는 그야말로 신화이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탄생이 바다라는 ‘미궁의 자궁’을 통해서 가능했다면, 섬은 그 ‘미궁의 자궁’에서 조건지워진 숙명의 땅이다.
서양인들은 미지의 섬 아틀란티스를 믿어왔다. 이상향인 아틀란티스는 플라톤 이래 수많은 철학자들의 탐구 대상이었다. 아틀란티스를 찾는 수많은 모험가들이 생겨났으며,‘아틀란티스학(學)´까지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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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한하고 미천한 자들을 위하여 무신 망명 역적인 황진기가 장군이 되어 정진인을 모시고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울릉도 월변의 섬에서 나오고 있으니, 청주와 문의가 먼저 함락되고 이어서 서울이 함락될 것이며, 이씨를 대신하여 정씨가 가난 없고 귀천 없는 새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점이 괘서와 투서로 퍼져 당시 경기·충청도의 백성들을 동요시킨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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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내지 않는 자유의 땅으로 회자되므로 이런 백성들의 희망을 근절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을 사실무근인 말을 퍼뜨린 죄로 극형에 처했고, 그 시체를 일도에 돌려 백성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논의까지 제기된다.
섬에서 민중의 해방을 이끌 진인이 출래할 것이라고 믿었던 민중들의 심중에서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해도출병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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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섬이 등장한다. 백령도와 울릉도에 병영을 마련하여 군량미 1000여섬을 저장하고 병기를 만들기로 하였다.
1813년 2월, 성주 출신 향반 백동원은 ‘북적(관서 농민전쟁)이 나왔으니, 남적 또한 반드시 나올 때가 되었다.’고 하였다.1813년 12월에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양제해가 홍경래의 기병에 용기를 얻어 변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 역시 해도출병설과 유관하다.
철종 2년(1851) 황해도를 중심으로 해서고변(海西告變)이 터진다. 주모자들은 대청도, 초도 등지에 병기를 저장하고 군사를 조련시켜 황해도와 평안도의 민인 4000여명을 동원하려 했다가 실패로 돌아간다.
철종 4년(1853) 12월 봉화에서는 역모를 도모하는 흉서가 나붙는다. 흉서 내용 중 ‘울릉도의 말’이 등장하고,‘선동’‘흉모’ 등의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반역거병(反逆擧兵)을 도모했던 사실이 틀림없다. 이 흉서 때문에 삼남지방에 범인 체포령이 내려지는데 특히 호남의 뱃사람들에 대한 일대 수색령까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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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출병설의 전형적인 전모는 일찍이 평안도 농민전쟁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으니, 이미 19세기 초반에는 해도출병설이 사회변혁 이론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홍경래동란기(洪景來動亂記), 동국전란사(東國戰亂史) 등 여러 격문에 비슷하게 나타나는 내용을 살펴보면,‘다행히 제세(濟世)의 성인이 청북(淸北) 선천(宣川) 검산 일월봉 아래 군왕포 위의 가야동 홍의도(紅衣島)에서 탄생하였으니, 나면서부터 신령하였고 다섯살에 신승(神僧)을 따라 중국에 들어갔으며 장성하여서는 강계(江界) 사군지(四郡地) 여연(閭延)에 은거하기 5년에 황명(皇命)의 세신유족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철기(鐵騎) 10만으로 동국을 숙청할 뜻을 가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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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16세기 정여립 변혁사건의 대미를 장식하였던 역사의 현장도 바로 죽도다.
죽도는 섬은 아니다. 금강 상류가 굽이치는 가운데 동그란 지형이 형성되어 섬을 방불케 한다. 풍수상으로는 물줄기가 감아 돌아가는 회회지지(回回之地)인 바, 상류에서는 입구로 들어오는 사람이 보이되, 입구에서는 상류 쪽이 보이지 않는다. 난세의 피난처로 요긴한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니 오해를 살 법도 했다.
아틀란티스는 지구상에 없는 섬일 수도 있다. 이어도 삼봉도 홍의도도 모두 없는 섬일 수 있다. 그러나 민중들은 그 섬의 진실을 믿었다. 여름만 되면 섬에 가고 싶어 하고, 왠지 그 섬들에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착각, 미지의 섬을 찾아나서는 심리 속에는 전 세계 인류가 공통적으로 간직해온 ‘아틀란티스’적인 그 무엇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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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섬은 육지로 떠난 사람들 덕분에 텅 비고 말았다. 강진 바닷가에서 18년 귀양살이를 한 정다산은 경세유표에서 ‘해도경영론’을 부르짖었으니, 섬들을 잘 챙기면 보물들이 수풀처럼 바다에서 일어나리라고 하였다. 그의 화두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
21세기의 새로운 이상향은 무엇일까.
아틀란티스는 여전히 ‘미궁의 바다’에 머물고 있다. 꿈과 약속을 이뤄주던 이상향은 1000년을 뛰어 넘는 하나의 기호로 각인되어 유전인자로 전승되고 있으니 섬은 그 자체로 자원이자, 금전이자, 희망이고, 또 이상향이지 않겠는가.
■ 대항해의 닻을 내리며
바다는 역시나 멀고 험했다. 바다는 크고 유장하여 동서고금의 야광주 같은 이야기가 많으며,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절대적 지식이 요구되는 지구 유일무이의 미지의 공간임을 연재 서두에서 밝힌 바 있다.
출사표를 쓰고 대항해에 나선 지 꼭 1년. 다행히 심한 배멀미는 없었다. 다시 출행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지난 1년의 항해가 새로운 출항을 위한 안받침이 되리라 믿는다. 서울신문과 함께한 이 기나긴 바다여행에 인내심을 갖고 같이 떠나주신 점, 깊이 감사드린다.
부족한 게 있다면, 인간의 능력으로 바다의 그 깊고 심오한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탓이리라.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름 모를 어민들, 그밖에 일일이 명단을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