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여인국 자료

_______! 2007. 6. 17. 00:54

중국25사 후한서-동이열전

 

北沃沮(북옥저)

又有<北沃沮>, 一名<置溝婁>, 去<南沃沮>八百餘里. 其俗皆與南同. 界南接< 婁>. < 婁>人憙乘船寇抄, <北沃沮>畏之, 每夏輒臧於巖穴, 至冬船道不通, 乃下居邑落. 其耆老言, 嘗於海中得一布衣, 其形如中人衣, 而兩袖長三丈. 又於岸際見一人乘破船, 頂中復有面, 與語不通, 不食而死. 又說海中有<女國>, 無男人. 或傳其國有神井,  之輒生子云.{《魏志》曰, < 丘儉>遣<王 >追<句驪王><宮>, 窮<沃沮>東界, 問其耆老所傳云.}

 

또한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이다. '남옥저'에서 팔백여리를 간다. 그 풍습이 모두 남옥저와 같다. 경계는 남으로 '읍루'이고, '읍루' 사람이 배타는 것과 노략질을 즐기니, '북옥저'가 이를 두려워하여 매양 여름에는 바위구멍에 숨어있다가 겨울에 이르러 뱃길이 통하지 않으면 이네 아래 읍락에 거하였다. 한 늙은 노인이 말하길 바다 가운데에서 베옷을 하나 얻었는데 그 모양은 보통사람 옷과 같으나 양 소매가 삼장이나 되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언덕 위에서 보니 한 사람이 깨진 배를 타고 오는데 목 복판에도 얼굴이 하나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었다. 또 말하길 바다가운데에 여인국이 있다. 남자가 없다. 혹 전하길 그 나라에는 신정이 있어 이를 보면 쉽게 아이를 낳는다.[위지에 '관구검'이 '왕기'를  파견하여 구려왕 '궁'을 쫓아 '옥저' 동쪽 경계에 이르러 늙은 노인에게 물어 전한것이다.]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제2권

정사년(丁巳年; 57)


신라 유리왕 34년, 탈해왕(脫解王) 원년, 고구려 태조왕 5년, 백제 다루왕 30년
한(漢)나라 중원(中元) 2년

 

○겨울 10월 신라왕 유리(儒理)가 훙(薨)하였다. 남해왕(南海王)의 사위 석탈해(昔脫解)가 즉위(卽位)하였는데 나이 62세였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 사람이니,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쪽 1천리 되는 곳에 있었다. 당초에 그 국왕(國王)이 여국(女國)의 왕녀(王女)를 데려다 아내를 삼았는데 임신(妊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최부‘표해록(漂海錄)'

“서남방을 향하여 조금 남쪽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가면 곧 섬라(暹羅ㆍ샴, 태국), 점성(占城ㆍ참파, 베트남 중남부), 만랄가(滿剌加ㆍ말레이시아의 말라카) 등의 나라요, 정남방은 유구국(오키나와)이요, 정남방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가면 여인국(女人國)과 일기도(一岐島)요, 정동방은 일본국과 대마주(대마도)다.”

 

<南史> <北史> <梁書>


#南史卷79-列傳第69-扶桑國


<慧深>又云: [<扶桑>東千餘里有<女國>, 容貌端正, 色甚潔白, 身體有毛, 髮長委地.
至二三月競入水則任娠, 六七月産子. 女人胸前無乳, 項後生毛, 根白, 毛中有汁以乳子.
百日能行, 三四年則成人矣. 見人驚避, 偏畏丈夫. 食<鹹草>如禽獸. 

 

<혜심>이 또 이르기를 "<부상국> 동쪽으로 천여리에 <여국>이 있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피부색은 아

주 깔금하며 희고,
몸에는 털이 있고(毛人國?), 머리는 길어 땅에 끌린다.
이삼월에 다투어 물에 들어가면 임신하여 육칠월이 지나 자식을 낳는다.
여인의 가슴엔 젖이 없고, 목덜미 뒤에 털이 나고 (털 난곳의) 밑은 희고, 털 사이에서 즙이 나와

그것으로 자식을 먹여키운다."고 하였다.
태어난지 100일이면 걸을 수 있고 서너살이면 성인이 된다.
사람을 보면 놀라서 달아나며, 장부를 공경한다. 날짐승 들짐승처럼 <함초>를 먹는다.

 

남사 열전 부상국 기록중에 <여국>에 대한 기록 나머지 부분


#南史卷79-列傳第69-扶桑國-02/02

<鹹草>葉似<邪蒿>, 而氣香味鹹. <梁;AD502-557><天監; AD502-519>六年, 有<晉安>人度海, 爲風所飄
至一島, 登岸, 有人居止, 女則如<中國>, 而言語不可曉. 男則人身而狗頭, 其聲如吠. 其食有小豆, 其
衣如布. 築土爲牆, 其形圓, 其戶如竇云.

 

세조 27권, 8년( 1462 임오 / 명 천순(天順) 6년) 2월 28일 계사 4번째기사
유구국 사신 선위사 이계손의 문견 사목(聞見事目)

 

여국(女國)에 대한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여국(女國)이 있는 곳을 나는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하였다. 다만 서량(西良)의 땅에 있다고 들었는데 물의 흐름이 힘이 없고 거위[鵝]의 털을 던지면 곧 가라앉으므로 사람들이 얕게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나라의 풍토(風土)와 인물(人物)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묻기를 ‘내가 전에 들으니, 여국(女國) 사람이 중국 조정에 입조(入朝)하였다고 한다.’ 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허황된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에는 중국 조정의 사람들이 많이 살고, 매년 중국 조정에 입조(入朝)하는데, 무슨 일인들 알지 못하겠는가마는, 아직 여국(女國)이 중국 조정에 입조(入朝)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다만 영락(永樂) 연간에 섬라국(暹羅國)5664) 의 여관(女官)이 중국 조정에 입조하였는데, 외인(外人)들이 알지 못하고 여국(女國) 사람이라고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 섬라국의 여색(女色)은 절묘(絶妙)한데, 향(香)을 끓인 물을 사용하여 목욕하고, 남자는 쑥대머리[蓬頭]에 검은 몸이며, 모발(毛髮)이 마치 면양(綿羊)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숙종 45년(1719년) 9회차 사행에 끼었던 제술관(문사) 신유한의 기록인 <해유록>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와의 대화

 

신 “동해 가운데 여인국이 있다는데….”

아메노모리 “그렇다면 천백 년 이래 어찌 한번도 그런 사람을 볼 수 없었을까? 동남쪽 바다 가운데 팔장도라는 섬이 남자가 열에 두셋 밖에 안 되므로 속칭 여자마을이라고 했다. 여인국이란 말이 여기서 나온 것 같다.”

 

<<구당서>> 제197권 <<남만서남만전>>

"동여국(東女國), 서강(西羌)의 별칭이다. 서해중에도 여국이 있어서 예로부터 동녀라 부른다. 습속이 여자를 왕으로 한다. 동쪽으로는 무주, 당항과 접해 있고, 동남으로는 아주와 접해 있다. 경계는 나녀만과 백랑이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 경계는 동서로 9일을 걷는 거리이고, 남북으로 22일을 걷는 거리이며, 크고작은 80여개의 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