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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돈가스와 카레라이스에 대해서

_______! 2008. 2. 11. 20:52

 

어느 분이 돈가스와 카레라이스가 일본 음식이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냐는 덧글을 달아주셔서, 덧글로는 부족할 것 같아 따로 포스팅을 해봅니다.

 

 

돈가스

 

흔히 '돈카츠(豚カツ)'(국어사전에는 '돈가스'가 표준어)가 '포크커틀릿(Pork Cutlet)'의 일본식 변형이라고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지식입니다. 포크커틀릿은 오히려 일본의 돈가스가 일본 경제발전 이후 전세계로 수출되면서 豚カツ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오카다 테츠(岡田哲著)가 쓴 <とんかつの誕生――明治洋食事始め(국내에는 <돈가스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2006년에 번역 출간)>에는 돈가스의 탄생과 발전 과정이 수많은 사료들과 함께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물론 좀 일본만세! 분위기가 심한 책이라 필터링이 필요합니다만) 이 책의 내용과 각종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돈가스가 본래 서양 요리인 커틀릿에서 유래한 것은 맞습니다.

 

돈가스의 역사를 다룬 오카다 테츠의 <돈가스의 탄생>. 국내에 번역서도 나와 있다.

 

 

커틀릿은 송아지 뼈에 붙은 살이나 양, 닭 등의 고기를 고운 빵가루를 입혀서 버터에 부치거나 오븐에 구운 요리를 말합니다. 서양의 커틀릿은 돼지고기가 아닌 소고기나 양고기로 만드는 요리였습니다.

일본은 19세기말인 1872년에 메이지 천황이 육식금지조치를 해제한 이후에 되어서야 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그 이전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고기를 먹기 시작했지만 갑자기 고기를 먹게 된 사람들에게는 고기가 당연히 어색한 것이었고, 고기에 관련된 수많은 조리법이 외국에서 수입되지만 그것이 동양적인 입맛에 어울리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었겠죠. 커틀릿이 수입된 것은 정확한 연대를 추정할 수 없지만 20세기 초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서양식 커틀릿을 일본에서 만들려면 상당한 에로사항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에서는 버터도 오븐도 구하기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 후라이팬에 기름을 약간 많이 두루고 고기를 볶아내는 방식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 때 사용된 고기는 커틀릿과 같은 소고기였습니다.(일본에서는 양고기가 귀했으니까요.) 이 일본식으로 기름에 볶은 고기 요리를 카츠레츠(かつれつ, 渇烈)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커틀릿'과 비슷한 발음의 일본어 표기를 고민하다가 생겨난 말입니다.

 

1929년에 일본 최초의 카츠레츠 전문 요리점이 생겨나고 뒤를 이어서 많은 카츠레츠 요리를 하는 음식점이 생겨납니다.그런데 이 때의 카츠레츠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돈가스와는 상당히 다른 요리였습니다.(당연히 커틀릿도 아니었습니다.) 우선 기름을 많이 두르고 부치는 것이 상당히 비효율적인 요리법이었기 때문에 이 요리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덴부라 요리처럼 기름에 튀기는 형태로 변형되었는데요. 두꺼운 소고기를 기름에 튀길 경우 육즙이 빠져나가 맛이 없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소고기를 얇게 썰어서 살짝 튀기는 방법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소고기를 이용한 카츠레츠는 여러 한계가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소고기 대신에 닭고기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치킨카츠가 돈카츠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것.) 닭고기는 소고기랑은 달라서 기름에 오래 튀겨도 육즙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았죠. 그런데 닭고기는 카츠레츠로 만들 수 있는 부위가 한정되어 있었고, 당시에는 닭을 잡으면 한 마리를 통채로 먹는 문화였기 때문에 남은 닭의 부위를 처리하기도 애매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돼지고기입니다.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서 두껍게 빵가루를 뭍혀서 튀겨내는 지금의 돈가스와 가장 가까운 형태의 요리가 태어난 것이죠. 이것을 일본인들은 부타카츠레츠(豚かつれつ혹은 부타니쿠카츠레츠豚肉かつれつ)라고 불렀고, 이것을 줄여서 돈카츠(豚かつ)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만해도 잘 먹지 않던 돼지고기 안심을 사용해 부타카츠레츠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만들어보니 오히려 안심이 더 맛이 있는 것입니다.(고기를 구워 먹을 때 등심이 더 맛있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 당연히 20세기 초에도 등심이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때부터 안심을 이용해 만드는 돈가스의 요리법이 정착되기 시작됩니다.

이때만해도 돈가스는 소스 없이 먹던 요리였는데요. 20세기 초에 일본에 영국으로부터 우스터 소스가 전래됩니다.(이 우스터 소스에 대해서도 근거없는 도시전설이 많이 퍼져 있는데, 영국의 '우스타샤주Worcestershire'에 살던 영국인 2명이 인도의 커리소스를 영국식으로 개량해서 만들어낸 것이 우스터 소스입니다. 가장 많이 퍼진 도시전설은 양파로 만든 '오이스터 소스'가 일본식으로 잘못 발음되어 '우스타 소스'가 되었다는 이야기.) 일본인들이 부타카츠레츠에 우스터 소스를 곁들여 먹어보니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우스터 소스를 기본으로 한 여러 형태의 돈가스 소스가 만들어지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돈가스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커틀릿이 일본에 전래되면서였던 것이 맞지만 우리가 먹는 돈가스와 커틀릿은 그냥 사돈의 팔촌의 십촌 쯤 되는 요리일 뿐 전혀 다른 요리로 돈가스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 요리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탈리아의 파스타가 무솔리니 시절에 가서야 지금의 형태가 만들어졌지만 파스타를 이태리 요리가 아닌 중국 요리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겁니다.

 

왼쪽이 프랑스 요리의 '커틀릿'이고 오른쪽이 일본의 '돈가스'.

혹은 이런 요리가 커틀릿.

당신은 저것들이 돈가스와 같은 요리로 보이십니까?

 

돈가스 스토리를 간단하게 정리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1. 서양에서 일본에 커틀릿(Cutlet)이라는 요리가 전래됩니다.

2. 이걸 똑같이 흉내내보려고 했으나 오븐과 버터가 없어서 재현 불가.(여기서 안습)

3.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볶아서 대충 비슷해 보이는 요리를 만들어 냅니다.

4. 커틀릿하고는 다르지만 커틀릿하고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으니 일본식 커틀릿이라는 의미에서 '카츠레츠'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5. 급격한 서구화 붐을 타고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6. 후라이팬에 굽는 게 귀찮아 기름에 튀기는 방법으로 조리법이 변형.

7. 소고기를 튀기면 맛이 없어지니 닭고기를 사용하다 돼지고기를 사용.

8. 돼지고기를 사용하면서 '돈카츠'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함.

9. 얇은 돼지고기에서 두꺼운 돼지고기로, 고운 빵가루에서 거친 빵가루로 변화가 일어남.

10. 우스터 소스를 곁들이게 됨.

11. 양배추 썰은 것을 곁들여 먹고, 포크와 나이프로 먹던 것이 젓가락으로 먹는 방식으로 변화.

12. 일본 경제 성장으로 돈가스가 전세계에 소개됨.

13. 돈가스를 적당히 번역할 말이 없어 '포크 커틀릿(Pork Cutlet)'이라는 이름을 붙임.

 

결론. 돈가스는 커틀릿을 흉내내서 만들어보려고 했다가 여건상 힘들어서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 것에 커틀릿과 비슷한 이름을 붙인 물건이지 사실 커틀릿은 아니다.

 

 

카레라이스

 

카레는 다들 아시다시피 인도의 '커리'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말입니다. 당연히 커리의 종주국은 인도이며, 다양한 커리 요리들은 대부분 인도요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먹는 '카레라이스'는 좀 다릅니다. 카레라이스는 커리요리의 일종이지만 일본인이 고안한 일본 음식입니다.

커리 요리는 인도를 오랜 기간 식민지로 점령했던 영국으로도 전파되었고 영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인도의 커리 요리들은 다양한 향신료를 독자적인 배합을 통해서 요리에 첨가했는데, 이것이 서양인들에게는 매우 귀찮은 작업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편리함을 위해 발명된 것이 카레 가루입니다. 카레 가루를 만든 것은 영국인이었던 것이죠.

 

메이지시대 영국과도 교류를 했던 일본이었기 때문에 영국의 카레 가루는 당연히 일본으로 전파됩니다. 당연히 영국식 커리 요리도 일본에 전파되었고, 일본인들은 영국을 통해 전파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양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초기의 카레라이스를 파는 요리점에서는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이 요리를 먹었다고 할 정도-_-)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영국인은 고기와 빵이 주식입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전래된 영국식 커리 요리는 파를 썰어서 볶고 거기에 개구리 고기(-_-)나 양고기를 넣은 뒤 끓여서 만든 소스를 고기 요리에 곁들여 먹는 형태였던 겁니다. 쌀이 주식인 일본인에게 이게 맞을리가 없죠. 게다가 일본인에게 고기는 매우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영국식 커리를 밥에 비벼 먹는 방식을 고안해냅니다. 이것이 꽤 인기를 얻으면서 밥에 카레소스를 뿌려 먹는 음식을 '라이스 카레'라고 부르게 되고, 양식점들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이것이 초기의 라이스카레에 가장 가깝다고 하는 오사카 지유켄(自由軒)의 라이스카레 메뉴.

19세기 후반의 라이스카레는 대게 이런 형태였다.

(이걸 포크와 나이프로 먹었다고 상상해보시라...-_-)

 

 

이런 시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윌리엄 스미스 크라크(William Smith Clark)'라는 미국인입니다. 이 사람은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큰 뜻을 품어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으로 홋카이도대학의 초대 총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홋카이도 대학의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는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도 매우 유명하죠. 그리고 바로 이 사람이 일본식 카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윌리엄 크라크는 일본의 서구화에 아주 큰 뜻을 품고 있었던 인물로서 일본인들이 서구화가 안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식습관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내는 물론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일본식 식사를 전면 금지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쌀도 먹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오로지 빵과 고기만 먹게 한 것이죠.(실제 그런 조치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료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수천년을 쌀을 먹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건 고문과도 같았으니, 윌리엄 크라크도 한 발 물러나서 "쌀은 라이스카레를 먹을 때만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웁니다.

 

홋카이도 관광 명소가 된 크라크 박사의 동상.

동상 밑에는 "Boys Be Ambitious"라고 쓰여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 라이스카레는 일본인들에게는 양식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라이스카레를 먹는 것은 윌리엄 크라크가 생각하는 서구화의 정신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인들이 주로 먹던 라이스카레는 영양적으로 불완전한 식품이었습니다. 윌리엄 크라크는 이것을 보다 영양적인 균형이 맞는 음식으로 만들자고 생각해서 감자를 네모낳고 큼직하게 썰어 넣어서 같이 끓이는 것을 고안합니다.(스튜에 기존의 라이스카레를 접목시킨 거죠. 홋카이도는 지금도 스튜 요리를 일상적으로 먹는 스튜의 땅이기도 합니다.) 이 시도를 통해 감자와 당근 등이 큼직하게 썰려 들어간 지금의 카레라이스와 같은 형태의 음식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기존의 라이스카레보다 맛있었기 때문에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갑니다.

 

현재의 카레라이스에 대한 또 다른 원형은 일본 해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카레라이스는 소스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고 그것이 더운 날에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이건 군대와 아주 잘 어울리는 컨셉이었고, 특히 병영 생활이 아닌 장기 이동을 주로 하는 해군에게는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당시 일본군은 각기병의 창궐로 서구식 식단이 절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해군이 주로 카레라이스를 군용식으로 많이 먹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전투식량으로도 만들게 됩니다. 일본 해군이 먹던 카레라이스는 걸죽하고 재료들이 아주 크게 썰려 들어간 형태의 음식이었는데,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많이 먹는 레토르트 카레와 가장 흡사한 형태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board-2.blueweb.co.kr/board.cgi?id=grim1990&bname=history&action=view&unum=12&page=2&SID=c6a49fc71fa6516b9d4dc90e058a2e82

 

 

일본이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 해외에서 많은 노동자가 유입되었는데요. 당연히 인도인들도 많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하게 되면서 카레가 양식이라는 고정관념은 점차 희박해지고 카레는 원래 인도요리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자리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일본에는 기존의 일본식 카레라이스에 인도 전통 카레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카레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1960년대 이후의 이야기로, 지금 일본에서 외식으로 먹을 수 있는 카레는 대부분 이 때 이후의 방식이 이어진 것입니다.

 

한국은 일제시대 때 카레라이스가 일본을 통해 전파되었고, 1990년대가 될 때까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으며 외국 요리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IMF 이후의 일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일제시대 연간에 전래되었던 20세기 초의 카레라이스 원형이 그대로 보전된 채로 수십년을 지내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외식 요리점에서 먹을 수 있는 카레라이스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레라이스의 형태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를 하자면, 커리는 본래 인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먹던 음식이며 이것이 영국에 전파되어 영국인의 손에 의해 카레 가루가 발명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18세기 말에 다시 일본에 전파되면서 일본에 커리 요리가 상륙합니다. 그러나 밥이 주식이었던 일본인들에 의해서 영국식 커리 요리는 조금씩 변형이 되었고, 미국에 선교 활동을 위해 와 있던 미국인 윌리엄 스미스 크라크에 의해서 오늘날의 카레라이스가 발명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19세기 말에 발명된 카레라이스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은 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주로 먹는 카레라이스를 인도 요리라고 하거나 영국 요리라고 하기에는 아주 큰 무리가 있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버리는 소시지 모아서 만든 부대찌개가 미군의 요리가 아니듯이 우리가 먹는 카레라이스는 일본 음식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왼쪽이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비프 카레라이스', 오른쪽은 1960년대 이후 유행하게 된 '인도식 카레라이스'.

 

굳이 제 입장을 이야기하자면, 카레와 카레라이스는 빵과 단팥빵의 관계처럼 보아야 하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빵이라는 음식의 큰 카테고리가 있지만 단팥빵이나 메론빵은 일본인이 발명한 빵입니다. 카레빵도 일본인이 발명한 것이고요. 그걸 빵이니까 유럽 음식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카레라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카레'와 '카레라이스'는 분명하게 다르다는 걸 미리 말하고 싶습니다. '카레라이스'는 '커리'라는 요리 카테고리에 속하는 일본식 요리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카레인 것은 아닙니다.

커리는 분명히 인도나 주변국의 요리 카테고리입니다. 그렇지만 커리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인도 요리가 다르고, 네팔 요리가 다르고, 스리랑카 요리가 따로 있습니다. 카레라이스도 그런 것 중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더불어 커리는 인도만의 것이 아닙니다. 인도에 커리 요리가 많을 뿐이지, 커리 요리란 인도를 비롯한 그 주변 국가들(중국 서남부에서 말레이지아에 이르기까지)이 크게 공유하는 요리의 큰 흐름이겠죠.

 

PS. 크라크 박사도 다카기 군의관도 "모든 악의 원흉은 쌀밥을 먹는데 있다. 쌀을 버리고 빵을 먹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걸 보면, 결국 카레라이스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서구화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자 한 고육지책...-_- 

출처 : 아까짱 블로그
글쓴이 : 김상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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