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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화 산업이 왜 위기라고 생각하는가?

_______! 2008. 2. 16. 22:39

요즘 영화산업 위기론을 많이 이야기 한다. 위기론에는 위기론을 팔기 위한 수사만 존재한다는 비판도 많이 있지만, 한국 영화산업은 정말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아니 콘텐츠 산업 전체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영화산업이 위기인 이유는 복잡한 설명이 전혀 필요 없다. 아주 간단하게 한 마디로 정리가 끝난다. 만드는 것보다 사오는 게 싸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판만화가 사실상 망한 이유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안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한국 작가가 그린 만화를 단행본으로 내는 것보다, 일본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만화를 수입해 오는 게 더 싸다. 큰 차이는 없긴 하지만 팔리기도 일본 만화가 더 잘 팔린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투자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국내 작가 발굴에는 한 푼도 안 쓰고 그냥 일본만화만 수입해 찍는 쪽이 훨씬 수익 증진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자체 콘텐츠 개발에는 소홀하고 수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거다. 그 외의 복잡한 다른 이유는 별로 없다.

 

그럼 이미 일본만화에 종속되어버린 한국 시장은 일본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을까? 물론 그건 아니다. 일본은 비록 고단샤, 쇼가쿠칸, 슈에이샤 3사가 복점하고 있는 시장이지만 독점이 아니며, 한국 내 협상자도 여럿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수입 원가를 확 올린다던가 하는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만화 수입하는 게 더 비싸지면 시장 논리에 따라서 출판사는 국내 작가를 발굴하는 편이 더 수익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 구도대로 계속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일본 출판사들 입장에서도 국내 출판사 입장에서도 좋다

 

영화도, 드라마도, 게임도출판도 똑같다. 전 세계적인 콘텐츠 사업의 구도가 큰 틀에서 그렇게 재편되고 있기 때문에 그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여기서 선택은 우리가 가해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가해자의 꼬붕 될 것인가, 그냥 피해자로 남을 것인가 뿐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 위기인 것이다. 불법다운로드에 의한 피해? 그런 건 그냥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작년에 한미FTA 관련으로 협상 대표가 나와서 그럼 미국 사람이 보는 영화를 만들면 될 거 아닙니까.”라는 말을 해서 전국적인 비웃음을 샀는데, 사실은 그 말이 나온 상황과 어법이 문제여서 그렇지 그 미국인이 보는 영화를 만들자는 게 현 상황에서는 가장 가능성 있는 선택지다.

 

영화도 한국에서 제작되는 영화에 투자해 대박을 기대하기 보다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이미 검증된 영화를 수입하는 게 더 싸다. 물론 <왕의 남자> <친구>, <실미도>, <디워> 같이 관객 800~1,000만 수준의 메가 히트를 기록해 준다면 한국 영화가 수익성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일종의 도박이다. 도박은 잃을 위험성도 일종의 기회비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매우 많은 비용이 드는 거다.

 

당연한 거지만 전반적인 한국영화의 퀄리티보다는 할리우드 영화의 퀄리티가 훨씬 높다. 특정 몇 작품의 퀄리티로 전체의 수준을 논하면 곤란하다. 투입되는 자본, 시나리오의 완성도,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역량, 엑스트라의 질, 특수효과의 완성도 등 모든 점에서 한국영화의 평균치는 할리우드와는 비교도 안 된다. 할리우드 영화의 평균치 수준의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기 위한 비용은 당연히 지금도 할리우드의 평균치 수준의 영화를 수입하는 비용보다 훨씬 비싸다. 투자자가 떠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여러분이 즐겁게 보는 CSI<히어로>, <로스트> 같은 드라마를 수입해오는 비용도 당연히 국내에서 같은 분량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비용보다 훨씬 싸다. 일본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히트 애니메이션을 수입하는 비용도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자체 제작하는 비용보다 훨씬 싸다.

 

그리고 할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지금보다 더 비싸게 받을 생각이 별로 없다. 왜냐면 만화와 마찬가지로 수입하는 비용이 콘텐츠를 자체 개발하는 것보다 더 비싸거나 혹은 비슷한 수준만 되어도 수입보다는 자체 개발로 시장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시장을 적당히 키워서 장기적으로 지배하는 게 한탕 크게 하고 빠지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라는 걸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이미 수입해오는 것보다 비싸진 이상 이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전세계의 콘텐츠 산업이 이런 식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건 이미 냉전이 붕괴 조짐을 보일 때부터 예견된 것이다. 국제사회를 지배하던 냉전이라는 질서가 붕괴되면서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원하게 되었고, 그 자리를 자본이 차지하리라는 건 누가 봐도 뻔한 이치였다. 그런 상황에서 국경은 사실 별 의미가 없고, 언어의 차이나 문화의 차이도 별 의미는 없다. 콘텐츠는 공산품이나 식품과는 또 다른 성질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문화적인 저항감을 완화하고 로컬 문화와 융합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이나 미국에서 일본만화가 가진 문화적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스크린 쿼터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스크린 쿼터 자체는 이러한 콘텐츠 시장 재편을 미리 예견하고 만들어진 아주 좋은 제도다. 물론 지금의 스크린 쿼터 제도는 세부적으로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스크린 쿼터의 유지는 지금의 콘텐츠 시장 논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건 스크린 쿼터는 유지되었으면서 외화 수입 쿼터제는 결국 올림픽을 앞두고 무너졌고, 그로 인해서 할리우드 영화사의 직배가 시작되었다는 거지만.(게다가 그 스크린쿼터마자 축소된다) 70년대만 해도 1년에 20편 수입되던 외화가(그나마도 그 중 미국 영화는 절반) 지금은 200편 넘게(거의 다 미국영화) 수입되고 있다. 양에서도 이제는 상대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만화하고 똑 같은 거다.

 

얼마 전 대통령인수위원회가 방통융합 방안을 내놓았는데, 케이블TV의 광고, 편성, 소유 등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하는 내용이었다. 뉴미디어를 적극 지원하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자체 콘텐츠 편성비율의 완화와 해외 콘텐츠 편성 비율 규제 완화, 영화 방영 비율의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아마 콘텐츠 산업을 조금만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책 방향에 경악할 것이다. 왜냐면 케이블TV는 이 정책대로라면 방송시간의 80%를 외국산 콘텐츠를 써도 되는 상황에 놓인다. 당연히 자체 제작보다는 수입이 싸기 때문에 국산 콘텐츠 시장은 더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종국에는 지금의 만화시장처럼 수입에만 열 올리는 시장으로 되돌아 가게 될 것이다.

워낙에 케이블TV 채널마다 특별한 개성이 없다 보니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1~2년 와서야 자체 콘텐츠 제작에 투자를 시작했고 그걸로 규제 범위를 수비할 수 있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콘텐츠 산업의 속성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 있나 싶다.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영화건 만화건 애니메이션이건, 지금처럼 가서는 국내 콘텐츠가 자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생존은 할 수 있겠지만, 생존과 자생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정말 무서운 것은 이러한 흐름에 모두가 암묵적인 합의를 한 상태라는 것이고.

 

지금의 콘텐츠시장 구도로 보았을 때 한국영화산업이 살아 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배급사들과 영화사들이 전부 다 출자하고 합병해서 단 하나의 초거대 배급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본으로 싸움이 된다. 문제는 그렇게 된다면 국내의 영화관객들은 독점에 의한 피해를 볼 것이다. 콘텐츠 경쟁력은 아마 더 강해질 거다. 그렇게 되면 더 큰 자본하고 경쟁해야만 할 테니까. 그렇지만 관객에게는 재앙이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나라 영화관객에게는 그냥 한국 배급사건 영화사건 다 망해버리고 할리우드 영화들만 적당한 가격에 상영되는 게 훨씬 해피하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자기 생각하기 나름이다.

만화시장이 어렵다고 죽는 소리를 하고 만화가들은 정말로 밥을 굶고 있지만, 그래도 독자들은 해피하다. 그거랑 똑 같은 거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자기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럴 때는 그냥 '메롱~'

출처 : 아까짱 블로그
글쓴이 : 김상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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