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스크랩] 수목장 하는 명문가(名門家)

_______! 2009. 6. 24. 23:21

최근에 수목장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 나고 있다. 수목장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아래 내용은 2009년 6월23일 조선일보 보도기사이다.

관심가는 대목인 것 같아 여기에 옮겨 둔다.

---------------------------------------------------

 

수목장 하는 명문가(名門家)

광산 김(金)씨 도봉공파 문중(門中) 차원 시행 결정

수목장(樹木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광산 김(金)씨 도봉공파(道峰公派)가 앞으로 문중(門中)의 모든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해 화제다.

광산 김씨 도봉공파 문중은 오는 28일 선산이 있는 경북 안동에서 문중 사적비(事蹟碑) 제막식을 갖고 행사 이후 고인(故人)이 나올 경우 모두 사적비 주변 숲에 수목장으로 안장하기로 했다. 화장한 유해를 뿌린 나무에는 별도 표지를 달지 않고 사적비에 10촌 이내 후손 200여명의 이름을 족보(族譜) 형식으로 새겨 넣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문중 총무 김선국씨는 "수목장을 치르면 장례비도 거의 들지 않고, 또 후손들이 가끔은 사적비를 중심으로 모일 것이니 직계 손은 아니라도 후손들에게 제삿밥은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가문이 우리 문중처럼 할 경우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고 자연에 상처 주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목장(樹木葬)

나무 옆에 구멍을 파 화장(火葬)한 유골을 묻는 친(親)환경 장례 방식. 유골 외에는 유품 등 어떤 것도 함께 묻을 수 없으며 나무에 고인을 표시하는 작은 표지만 매다는 방식을 권장하고 있다.

 

자료원 ; 조선일보 2009년 6월 23일  A12면 (김민철기자  mckim@chosun.com)

--------------------------------------------------------------------

6월 24일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

[만물상] 광산 김씨 문중의 수목장

조선왕조 500년 동안 내로라하는 문중이 많았지만 집안마다 특징이 있었다. 전주 이씨와 동래 정씨, 청송 심씨, 청주 한씨는 정승을 10명 이상 냈고, 안동 권씨, 남양 홍씨, 파평 윤씨는 문과 급제자를 가장 많이 낸 집안이다. 연안 이씨는 정승 8명, 문과급제자 250명, 청백리 6명으로 각 분야에서 인물을 두루 많이 배출해 '삼한(三韓)의 갑족(甲族)'으로 꼽힌다. 한창때 안동 김씨는 '금관자·옥관자가 서말'이라고 했다. 정3품 당상관 이상만 망건에 붙이는 금·옥관자가 서말이나 될 만큼 고위 관리를 많이 배출했다는 뜻이다.

▶이런 문벌 리스트 중에서도 광산(光山) 김씨는 독특한 위상을 자랑한다. 정승은 5명을 냈으니 10위 안에도 못 낀다. 문과급제는 265명으로 6위에 그친다. 왕비도 1명밖에 못 냈으니 다른 외척 집안에 비해 크게 내세울 게 없다. 그래도 조선시대 최고 양반 가문을 꼽으라면 단연 앞 손가락에 오는 게 광산 김씨다. 문신(文臣)의 최고 영예 대제학이 7명으로 가장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광산 김씨의 영광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이가 선조~인조 때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그는 율곡의 학통을 이어받아 예학(禮學)을 집대성, 조선 후기 예(禮)와 풍속의 지침을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은 그를 두고 "고금의 예설(禮說)을 찾아내 분명히 해석했으므로 변례(變禮)를 당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질문했다"고 했다. 사계 이후 '광김(光金)' 집안에서 3대 내리 대제학이 탄생했다.

경북 안동에 선산을 둔 광산 김씨 도봉공파 집안이 28일부터 모든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산소를 만들지 않고 화장해 선산 주변 나무에 뿌리겠다는 것이다. 수목장이 확산되고는 있다지만 문중 차원에서 수목장을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우리나라 묘지 넓이가 평균 19평이라고 한다. 한 사람 주거면적이 4.3평이라니 죽어서 차지하는 땅이 살아서의 4배를 넘는다. 과거엔 양반이라는 집안일수록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려고 묏자리를 크고 화려하게 썼다. 도봉공파는 사계의 직계 집안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 예학의 종장(宗匠)을 배출한 집안의 일원이 새로운 시대 추세에 맞춰 간소하고 친환경적인 장례방식을 먼저 실천하겠다고 나서 뜻깊다. 사계도 "예의 본질은 변치 않지만 예의 형식은 시간과 장소, 대상에 따라 변한다"고 했으니 이 시대의 수목장을 굳이 반대할 것 같지는 않다.

*자료원 ; 2009년 6월24일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 서경학파 - 올미
글쓴이 : 올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