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현실론

_______! 2009. 11. 28. 21:06
한동안 "한국만화는 죽었다."라고 생각했다.

 

YS시절의 너무 빠른 만화 시장개방+ 도서 대여점 정책으로, 별로 튼실하지도 못했던 한국만화계는 거의 "괴멸"직전에 이르렀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한 "스캔본"은 거기에 결정타를 먹인셈이 되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크게 두 가지 흐름을 중심으로 한국만화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이른바 "웹툰"이다.

 

불법복제 문제로 인해서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한국의 게임계의 현실과 같이...

아예 "공짜로 보여줄테니, 광고수익으로 먹고살겠다. 꼭 맘에 들면 단행본도 사주면 감사하고.."

.......라는 식으로 각종 웹툰이 쏟아져 나왔고....

 

나름대로 한국만화 부활의 시발점이 됐다.

 

또 다른 흐름은 상당한 작화 퀄릿을 지닌 작가들의 단편 단행본이다.

이런 작품들의 경우, 오히려 한국보다 해외시장에서 인정받고 다시 역수입되는 경우가 많은데..

상상이상의 퀄릿을 갖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블러드 오션..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 겠지...)

 

그러나 두가지 흐름 모두의 공통점은..

"어차피 이 만화를 소비할 주요 타겟들은 이미 어린시절부터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져있다."

......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 이다.

 

즉, 일본의 만화들이 기존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의 스타일과 네러티브를 긍정하는 한편, 그걸 기반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했다면...

 

한국의 만화 역시, 소비자들이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문화권(?)에 편입되는 한편, 거기에 한국적인 무언가를 덧붙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길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가가 "최훈"일 것 이다. 이 사람의 경우 아예 노골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인정하는 가운데 "괴악한 패러디"를 난무해서 인기작가의 반열에 들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왜냐면, 나 자신조차도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진 사람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국적인 그 무엇"을 입혀놓은 그런 작품들이 한없이 입맛에 맞는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른바 "현실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도"라는게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했던 작가인 "최훈" 조차도, 그러한 경향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작가지만, 그걸 기반으로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개그코드 등을 고안해냈기 때문에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었고, 롱런할 수 있는 것 이다.

(한때 엄청난 화재를 불러 일으켰고, 지금도 골수 매니아층이 남아있는 "앙골모아"나 "공길동전"의 작가인 안빈군도 그런 케이스이고..)

 

아무런 새로운 고안없이 "모방"에 그친다면, 그것은 "아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닌말로, 메카닉 디자인을 거의 100% 가깝게 모방해서 표절작이란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태권V나, 로보트 킹 등의 작품에도 로봇이 태권도를 한다던가, 한국식 개그코드를 넣는다던가... 등의 새로운 고안은 담겨있다.

 

 

한국에도 일본의 만화/애니/게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모에 취향을 가지고 있는 매니아 층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장 구매력은 모에를 주류 시장으로 올려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취향으로서는 모에를 표방하지만, 소비를 통해서 그 취향시장을 발전 또는 최소한 유지시켜놓을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만화는 스캔본, 애니는 인터넷 불법공유 동영상, 게임은 복사CD를 쓰면서 취향만으로 모에를 추구하는 것은 시장의 형성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정식으로 모에적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에 불과한 정도라면, 시장과 취향이 결합된 진짜 문화산업으로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일본의 문화콘텐츠 성공담을 벤치마킹하고자 할 때, 그것이 모에 취향의 사업 모델인 경우다. 게다가 이미 영화나 TV드라마의 성공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한국의 일반적인 대중문화 향유자들은 완성된 극적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선 굵은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높으며, 실체로서의 스타 또는 현실의 직접적 반영으로서의 캐릭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모에적 향유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점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