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뉴스] 한국호랑이 과연 살아있을까
별도 아종으로 분류 기회없이 아무르호랑이로 통합
한 집단 생존에 경기도 면적 숲 필요 …남한엔 없다
범띠해가 다가오면서 다시금 한국범에 관한 핵심적 질문이 나온다. 남한에 한국호랑이나 표범이 과연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가, 라는 질문과 도대체 한국호랑이란 것이 존재하긴 하나, 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한국범보존기금이 9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 홀에서 연 ‘한국범 복원의 길’ 토론회에서 범 전문가들이 답을 내놓았다. 한 마디로 ‘한국범은 있다, 그러나 남한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노력한다면 먼 미래에 한반도 남쪽까지 한국범을 복원할 수는 있다.
아무르호랑이와 차이 없지만 더 넓고 뚜렷한 줄무늬 가져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한국범, 너는 누구인가”라는 발제에서 한국범의 의미와 기원, 분류를 소개했다. 그는 민화 등 수많은 기록에서 드러나듯 범이란 말은 호랑이와 표범을 모두 아우르는 뜻으로 사용됐지만 현대에 들어와 호랑이만을 가리키는 말로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분류학에서는 호랑이를 8개의 아종으로 나누는데, 이들의 공통조상은 인도차이나 북부와 중국 남부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와 극동 러시아, 중국 동북부에 서식하는 호랑이는 한국호랑이, 동북호, 시베리아호랑이(서식지가 시베리아와 무관하므로 러시아에서는 학술명칭인 아무르호랑이로 부름) 등으로 불리지만 모두 아무르호랑이 아종에 속한다.
그렇다면 한국호랑이와 아무르호랑이는 정말 같은 아종일까. 이 교수는 최근 야생동물유전자자원은행과 국립생물자원관이 박물관에 보관된 한국호랑이 표본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둘 사이에 거의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예비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한국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아무르호랑이란 등식이 성립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한국호랑이가 막연히 우리 것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의 소산은 아니다. ‘한국호랑이’란 이름의 족보를 따져보자. 1844년 네덜란드 동물학자 콘라드 제이콥 테밍크가 아무르호랑이를 새로운 호랑이의 아종으로 학계에 발표할 때 그 기준표본을 포획한 곳은 한반도였다.
그후 브라스란 학자는 1904년 한국의 호랑이가 아무르호랑이보다 넓고 뚜렷한 줄무늬가 있고 붉은 빛깔이 도는 작지만 매우 아름다운 가죽을 지니고 있다는데 착안해 ‘한국호랑이’라는 별개의 아종으로 기재했다.
한반도서 호랑이 포획 개체수 급감…사진으론 1924년이 마지막
이어 사투닌이라는 러시아 학자는 1915년 한국호랑이란 아종의 이름을 ‘코리엔시스’에서 ‘미카도이’로 바꾸었는데, ‘미카도’는 일본 천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쨌든 한국호랑이란 아종명은 1965년까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무역에 관한 협약(CITES)’목록에 올라 있었다가 나중에 아무르호랑이로 통합됐다. 이항 교수는 “한국 호랑이를 별도의 아종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한지 세밀하게 검토하고 확인할 기회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렇지만 호랑이나 표범의 발자국을 봤다는 목격담은 끊이지 않는다. 최현명 와일드라이프 컨설팅 대표는 이날 ‘한국범의 발자국-남한에 범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있는가’란 발제에서 이 논란거리에 대한 답변을 시도했다.
그는 목격담의 진위를 따지기에 앞서 과연 호랑이가 생존할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를 물었다. 암컷 아무르호랑이 한 마리를 부양하려면 지리산 국립공원 면적과 비슷한 450㎢의 숲이 필요하다. 호랑이가 대를 이어 번식할 50마리의 집단이 살려면 경기도 전체 면적의 숲이 필요하다. 남한에 호랑이가 살아갈 만한 땅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이 부정적 답변의 두 번째 이유이다.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잡힌 수는 1920년대 연간 6.1마리에서 1930년대 연간 1.9마리로 줄었다. 남한에서는 강원도 횡성에서 1924년 잡힌 것이 사진으로 남은 최후의 개체였다.
표범 목격담은 사실일수도…
북한에서는 포획기록이 1964년, 1965년, 1974년, 1987년에 있고 2000년에도 함남 부전군에서 발자국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지만 정확한 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씨는 “생존하고 있더라도 몇 마리에 불과할 것이며, 어쩌면 중국 쪽 호랑이와 중복 계산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한이 통일되어 호랑이가 한반도를 자유롭게 왕래하게 되더라도 현재의 개발수준에서 남한에 고정적인 호랑이 집단이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최씨는 “북한에서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호랑이가 남하해 떠돌아다니다 북상하거나 멧돼지 올가미에 걸려 죽는 일은 있을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예측했다.
아무르표범에 관한 최씨의 전망 역시 비관적이지만 호랑이보다는 정도가 덜하다. “많은 목격담 중 몇 건은 표범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증거는 발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표범은 1970년 경남 함안군 여항산에서 잡힌 것이 최후의 기록이니까, 호랑이보다는 반세기 가량을 더 버틴 셈이다. 1947년부터 1970년까지 모두 15마리가 잡혔는데, 이 가운데 8마리가 올무나 덫에 걸린 것이다. 최씨는 “쌀 수십~수백 가마의 값을 받을 수 있는 표범이 뒷산에 있다면 필사적으로 잡으려 했을 것”이라며 “실제로 1970년대 후반까지 법적으로는 표범을 분기마다 1마리씩 수렵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범을 복원하는 길은 무얼까. <밀림이야기-시베리아호랑이 3대의 죽음> 등 지난 10년 동안 호랑이 자연다큐를 만들어온 박수용 <교육방송>(EBS) 피디는 “한국호랑이와 동일종인 아무르호랑이 450여마리가 살아 있는 러시아 극동지방을 보전하는 것이 한국호랑이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라며 “최근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된 북한 쪽 호랑이 서식지에 대한 한국 연구자들의 조사연구 지원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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