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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Why?의 우리 땅 우리 사람] 인간이 만든 호수 뚫고 '山'이 우뚝

_______! 2010. 2. 28. 15:55

[Why] [Why?의 우리 땅 우리 사람] 인간이 만든 호수 뚫고 '山'이 우뚝

 

 

대청호 호반을 향해 가늘게 뻗어나간 절벽을 부소담악(赴召潭岳)이라 한다. 호수 위로 솟은 산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만든 풍경이다.

대청호·고리산의 합작품 '부소담악'

충북 옥천군 군북면에 고리산(579.3m)이 있다. 환산(環山)이라고도 한다. 이름을 두고 분분한 설(說) 가운데 "산이 배처럼 생겨 물에 떠내려갈 수 있으니 밧줄로 묶어둘 고리를 만들었다" 하여 고리산이라 했다는 풍수설도 있다.

원래 고리산은 아래에 금강 지류가 흐르고 논과 밭이 널려 있는 전형적인 마을 뒷산이었다. 그런데 1980년 대청댐이 생기고 산 아래가 다 잠기는 너른 대청호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름에 대한 풍수설 신봉자가 더 늘어났다.

고리산 아랫마을은 천하 명당으로 변신했다. 뒤에는 고리산, 앞에는 대청호다. 생기(生氣) 불어넣는 산과 흩어지는 생기를 멈추는 물 덕에 고리산 앞마을은 배산임수지지(背山臨水之地)가 됐다.

이후 고리산 일대에는 크고 작은 사찰과 민간신앙 사당들이 들어와 산세의 일부가 됐다. 풍수(風水)도 풍수지만, 풍경(風景) 또한 천하 절경으로 변했다. 부소담악(赴召潭岳) 덕분이다.

고리산 아래 군북면 추소리 마을에는 고리산을 묶어놓은 밧줄쯤 되는 산줄기 하나가 호수를 향해 나와 있다. 너비는 20m 안팎에 길이는 700m, 높이는 대략 40~90m 정도 되는 가늘고 긴 절벽이 호수 한가운데를 향해 뻗어 있다.

절벽 위에는 소나무들이 연병장에 줄 선 병사들처럼 나란하게 자라고 있다.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을 민간에서 '부소무니'라 부르니, 부소담악은 '부소의 연못에 솟은 산'쯤으로 풀이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걸 '병풍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그저 높다란 산 능선쯤 됐을 산줄기가 바람 불면 쓰러질 듯한 병풍처럼 수면 위로 솟게 됐으니 인공호수 덕에 얻게 된 부수입이다.

그 절경을 보려면 고리산 황룡사 옆 봉우리로 올라가야 한다. 봉우리 오르는 길은 장난이 아니다. 절 앞 민가 왼편에 잘 보살핀 무덤들이 보이는데 길은 그 뒤로 뚫려 있다. 토끼, 다람쥐 정도나 교행할 수 있는 좁은 길이다.

돌계단은커녕 엉덩이 쉬었다 갈 바위도 없고 경사 또한 급해서, 모르고 간 사람은 입에서 욕이 나올 정도다. 눈 녹기 시작한 요즘은 미끄럽기까지 하다. 반드시 지팡이와 등산화를 갖출 일이다.

악 받친 마음으로 30분 정도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등산로 주변에서는 나목(裸木)들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잠시 이탈해 호수쪽으로 가본다.

지팡이 혹은 나무줄기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사진 찍는 사람들은 "딱 한 군데 호수와 부소담악이 보이는 포인트가 있다"고 했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히말라야 산행만큼 어렵지도 않다.

등산로 이탈 산행 5분이면 그 포인트에 닿는다. 껍질이 거친 왕벚나무가 등받이를 해주고, 앞에는 한 사람 정도 직립할 수 있는 작은 바위가 있는 곳이다. 과연 선경(仙境)이었다.

구경꾼은 숨을 헐떡이는데 눈앞에 펼쳐진 호수와 산과 부소담악은 속세에 무덤덤하게 그저 고고히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같은 갈수기면 담악 건너편에 수몰됐던 옛 마을 흔적도 보인다.

하산할 생각을 하면 또 가슴이 무너져내리지만 온 세상이 먹먹한 구름 그림자에 가린 날이면 천(天)과 지(地)와 인(人)이 타협해 창조한 그 절경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풍경이다.

부소담악은 지난해 국토해양부와 한국하천협회가 뽑은 '아름다운 하천 100선' 중 가장 아름다운 6대 하천으로 뽑혔다. 주소는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다.

[글·사진=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