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스크랩] 문수보살이 사는 곳. 오대산 상원사

_______! 2010. 3. 21. 22:50

조선시대 세조는 즉위 내내 단종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단종의 어머니며 형수인 현덕왕후가
자신에게 침을 뱉는 꿈을 꾸고 나서부터 피부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전신에 종기가 돋고 고름이 나는 등 잘 낫지도 않고
견디기가 무척 힘든 병으로 고생하였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중 부처님께 참회를 함으로써 병을 고쳐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곳 상원사에서 기도를 올려 낫기를 기원하고자 하였다.

상원사로 가던 중 맑은 물을 보고 목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세조가 옷을 걸어 두던 곳을 '관대걸이'라고 한다.

<세조가 옷을 걸어두었다는 '관대걸이>


그런데 몸을 씻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치원하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하고 싶었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그 때 한 동자승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동자승을 불러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동자승이 등을 밀어주는 것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세조의 등에 났던 모든 종기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목욕을 마치고 나서 세조는
"어디 가서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동자승에게 말하였다.
동자승은 "임금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동자승은 간 곳이 없고
자기의 몸에 난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았다.
문수보살의 보살핌으로 난치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감격하여,
이름난 화공을 불러 자신이 보았던 문수동자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고 목각상을 조각하도록 명하였다.
지금 문수동자의 그림은 없어졌고,
그림에 의거하여 만든 목각상은 상원사 문수전에 모셔져 있다.

<세조가 보았다는 문수동자, 국보 제221호, 상원사 문수동자 좌상>

 

또 하루는 세조가 기도하러 상원사 법당에 들어가려하자
고양이가 나타나 세조의 옷깃을 물고 법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세조는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진 �에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서
세조를 죽이려고 숨어있던 자객을 찾아냈다.
고양이가 세조를 막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세조는
고양이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상원사 고양이를 잘 기르라는 뜻으로
논과 밭을 하사하였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 석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많이들 만지며 소원을 빌고 있다.

<상원사 법당 앞의 고양이 석상>

 

이 상원사에는 우리나라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답다고 하는 종이 전해져오고 있다.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진 이 종은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종이다.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

 

이렇게 소중한 문화유산인 상원사 종도
6.25 때 하마터면 불에 타 없어질 뻔 했던 사연을 가지고 있다.
6.25 전쟁이 나자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떠났으나
상원사 주지였던 방한암 스님은 그대로 남아 계셨다.

이어 일사 후퇴 때에 국군이 월정사와 상원사가 적의 소굴이 될 것을 염려하여
두 사찰을 모두 불태우려고 했다.
월정사를 불태우고 상원사에 올라온 군인들이
상원사 법당을 불태우려고 했다.


한암 스님은 국군들에게 잠간 기다리라 이르고 난 뒤,
방에 들어가 가사와 장삼을 입고 법당에 들어가 정좌한 후,
불을 지르라고 하였다.

국군 장교가 "스님이 이러시면 어떡합니까?"하자 한암 스님은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법당을 지키는 것이 나의 도리니 어서 불을 지르시오"하며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감동한 장교는 법당의 문짝만을 뜯어내 마당에서 불을 지르고 떠났다.
오늘날 상원사의 법당과 상원사 동종이 남은 것은 오로지 한암 스님의 덕인 것이다.

출처 : 규식이의 좌충우돌 문화재 탐사기
글쓴이 : 재은애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