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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시대, 전설의 위업. -가카의 닌텐도 발언을 듣고 전설을 회상하다-

_______! 2010. 7. 11. 19:00
전설의 시대, 전설의 위업. -가카의 닌텐도 발언을 듣고 전설을 회상하다-

 

1970년 8월.
오덕 박정희의 지시로 '국방 과학 연구소'라는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1971년 1월. 
언제나 꿈과 희망이 넘치시던 박대통령은 국방부 연두 순시 중 이러한 '화두'를 던지신다.

"곤조있게 76년까지 이스라엘 수준의 자주 국방 태세를 확립하자능. 그리고 80년 초까지 전차, 유도탄, 함정 같은 병기도 개발하라능."


(우와아아앙~)

거 뭐, 까짓거 우습네... 가 아니다. -_-;;
이스라엘 수준...
이미 1967년 2차 중동전, 6일 전쟁으로 더 유명한 이 전쟁을 통해 근접국인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덤으로 이라크까지 발라버렸던 중동의 개차반 맹자가 이스라엘 아니던가? -_-;;
국방 전략이고 나발이고를 떠나서 상식적으로, 월남전 파병가서 떨이로 미군 장비 주워다 쓰고 있던 한국이 5년안에 해결할 수준은 아니었다. 
더구나 한국의 1970년대 상황이 말이지...

"국내 공업은 한 마디로 가내공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예를 들면 공작기계 분야는 직조기의 형틀 주조가 고작이었고, 단조기술은 차량정비용 공구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형편이었으며, 통신산업도 야전 전화기를 겨우 만드는 데에 머물러 있었다. 가공 능력도 금성사(현 LG)의 라디오용 금형 제작이 고작이었고, 재봉틀 시계 자전거 및 자동차의 반제품 조립이 공업력의 전부였다...."
- 구박사 술회 중 -

...였다능.

한마디로 마음은 효도르인데 몸이 국민약골인 상황이랄까...
그래도 뭐 대운하시대를 하자거나 나쁜 소리도 아니고, 열심히 해서 국방력 높여보자는 얘기였으니까 모두들 "아하하, 잘 해보자는 얘기겠지"라며  그냥 저냥 그렇게 이해하며 없는 자료 모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의 예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3500억? 줄여와 새끼야." "주, 줄여오겠습니다." -_-;) 박통이 그냥 넘어갈리는 없는 법...

.....아니나다를까.
1971년 11월 9일 .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던 국과연에 느닷없이 한통의 긴급 지시가 떨어졌삼. 
그 내용은...

"이 새끼들 나라가 위급한데 놀고만 있어? 연말까지 이런거 만들어 오라능."

'이런 거'의 목록은 다음과 같삼... -_-;;
    1) 카빈 M2(10정) 
    2) M1소총 자동화 MX (2정) 
    3) 경기관총 M1919 A4(5정) 및 M1919 A6(5정) 
    4) 60mm 박격포 M19(4문), 81mm 박격포 M29(6문) 60밀리 박격포 경량화(2문) 
    5) 3.5인치 로켓 포 M20 A1(2문) 및 M20 B1(2문) 
    6) 수류탄 MK2(300발)
    7) 대인지뢰 M18 A1(20발), 대전차 지뢰 M15(20발)
...이상의 무기를 1차는 12월30일까지, 2차는 1972년 1월부터 3월 말까지 카피 뜨는 계획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악~"
두둥...
이거슨 실로 충격과 공포. -_-;;
(2MB가카가 '께임기 만들어봐'라고 한것은 역시 오덕 박통의 "까라면 까"의 풍습이 은밀히 구전되어 온 때문이었을까? -_-;)

요즘같은 시대라면 "씨바 우리를 죽여라!"라며 옷벗고 나가겠지만, 저 시대에 "죽여라!"그러면 정말로 죽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그냥 까라는대로 까야했다. -_-;;
그리하여 그들은 미미한 항의(...)의 뜻으로 작전명을 "번개 계획"(....;;)으로 정하고 카피품 제작에 도전하게 된다....
(아, 눈물이, 눈물이 마르지 않아. ㅜ_ㅠ)

... 할 수 없이 육군 수경사(현 수방사)에서 운영중인 M20 A1과 M20 B1포를 1문씩 빌려와 이를 분해해서 구성을 파악한 후 부품을 스케치하고 치수를 정밀 측정해서 도면을 작성하는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를 시작했다. ....군에서 빌려온 로켓포는 오래 사용한 것이라 마모가 심해 정확한 치수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품 도면을 마무리짓고 조립 도면을 그려보니 서로 치수가 맞지 않아 며칠 밤을 새우고서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은 ...뜻밖에도 3.5인치 로켓 포에 대한 미군의 기술교범(TM)을 얻을 수 있어서 부품 및 조립도면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일이다.


(......;;)

...여하간 설계도 없이 정비용 기술교범과 대략 끼워맞춘 설계도로 대전차로켓 제작이 '번개'처럼 시작되었다... -_-;;


(이것이 당시 카피를 뜨려던 M20 A1 ... -_-;;)

주어진 시간은 40일.
더구나 한국의 기술적 역량은 가히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 -_-;;;
그래도 "있는 모델 카피 만드는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당시 사정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관련 증언을 다시 한 번 들어보자면...

당시엔 미국 제록스사와 우리 정부 사이에 복사기에 대한 임대차계약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기관은 복사기를 대여할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을 패터슨 대령은 자신의 사무실이 국과연에 있는 것으로 서류를 꾸며 복사기를 제공한 것이다. 번개사업 중에는 매일 100쪽이 넘는 사업 보고서를 청와대, 국방부 및 관계기관에게 제출해야 했는데, 이 복사기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어흑... 무려 국가에 복사기 하나 없어서 미쿡에서 빌려써야 하는 상황이었어... ㅜ_ㅠ)

.....
그러나 역시 헝그리 복서와 궁지에 몰린 이공계는 강한 법. -_-;;;
더구나 국과연 연구원들은 근성으로 충만했던 듯...
아무리 카피품이라지만 40일간 머리도 제대로 못감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결국 저걸 복제해낸 것이다. -_-;;;;;

다만, 일단 조립을 마치고 대충 움직이는건 확인했지만 실제로 쏴지는지 알 수 없는 상태...
하지만 번개 계획이 1차, 2차로 나뉘어져 있으니, 박통이 조금이나마 양심이 있다면 실사격 테스트는 2차 무렵에 몰아서 같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무리를 지었다.  
마치 예정일에 쫓긴 게임개발자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클로즈 베타니까 버그는 오픈 베타 때 잡고 일단 가다만 그럴듯 하게..."라고 생각했던 듯 하니, 이공계는 궁지에 몰리면 행동 패턴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능.(.....)

어쨌거나 12월 15일, 성능이야 어찌되었건 외형은 똑같은 시제품을 받아든 박통은 무척이나 흐뭇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음 날, 시제품 넘기고 퍼져있던 국과연에 사람을 보내서 다음과 같은 흐뭇한 지시를 내린다능...

"야, 이거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번 쏴보자."


("I'll be a JOT".... 저는 좃이 될겁니다.  의역) 좃됐다. -_-;;)

연구원들은 "미군 군사규격의 로켓 포열재료를 국내에서 구할 수가 없어 강도가 떨어지는 창틀용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해 시제했기 때문에" 이거 혹시 쏘다 터지는거 아닌지, 터지면 몇 명이나 죽을지를 걱정해야 했다. -_-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제품 사격 시험 당일...

... 드디어 발포 시험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암흑의 아우라는 전염이 되는 것일까?
발사 버튼을 눌러야 할 차출 군바리가 이 의혹의 아우라를 직감("쏘면 골로간다")....
쏘라는 명령에 "ㅇㄴㅁㅊㅇㄴ 살려주삼~"이라며 얼굴이 하얗게 떠서 명령 거부, 그러니까 항명을 해버렸다. -_-;;;

그렇다면 다른 군바리를 차출하지 않을까 했는데...
시제품을 만든 연구자들은 의외로 대인배들이었던 듯. -_-;;
결국...
제작자가 돌아가며 포를 발사하기로 결정... -_-;;
 
결과는?
제대로 된 설계도 없이 이리 저리 불량 재료로 끼워맞춰 만들어낸 이 카피품은... 성공적으로 발사가 되었던 것이다. -_-;;;
(어디선가 들려오는 맥코이 할아범의 목소리... "기계란 다 똑같아. 아귀만 맞으면 된다는 얘기지." -_-;)

...이 살 떨리는 첫 시제 사격 시범 이후, 국과연 연구자들은 드디어 철야와 노가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라는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가?
박통을 뭘로 보는건가? (-_-;)


(생각해보니 고깟 바주카 하나 카피 떴다고 기뻐하기엔 나는 너무 소중하셨던 박통.)

바로 다음 날, 또 하나의 극비 명령이 구박사에게 전달된다.

"님자, 이번엔 쌔끈하게 유도탄이나 만들어 보라능."

    1) 독자적 개발체제를 확립함.
    2) 지대지 유도탄을 개발하되, 1단계는 75년 이전 국산화를 목표로 함.


(나 같으면 저 순간 그냥 자살하고 싶었을 듯.  -_-;;)

아무리 까라면 까는 연구원이라고 하지만, 뭐 가능성이 보여야 뭐든 할 맛이 날거 아니겠나?
그래서 이번에는 미미하게나마 반항(....투덜거림 OTL)도 해보았지만, 어쩌겠냐능.
가카가 유도탄을 날리라면 날리는거고 산을 뚫으라면 뚫어야 하는게 70년대였는데... -_-;;

어쨌거나 나름대로 극비 작전이었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비취인가를 받는다 보안 교육을 받는다 등등의 절차를 거쳤고...
결국 팀이 꾸려졌지만...
"자료가 없었다." -_-;;
뭐 미사일에 대한 자료가 하나라도 있어야 뭘 연구해도 해먹지 않겠나?

해서...
합참 정보국에 "미사일 자료 좀 구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자...

...미국과 유럽에 주재하는 무관들이 그곳 잡지와 일간지에 난 유도탄 관련 기사를 보내줬는데, 별 도움은 안 됐지만 그 성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OTL)

이 이후로도 온갖 삽질과 "까라면 까" 지시에 의해 진행되는 이 미사일 개발 계획...
일단 개발은 성공했다... (...저 와중에 성공한 걸 보면 인간의 정신력은 무한한 듯... -_-;;)

이걸 밀어붙인 박통의 공과를 떠나서, 저 열악한 상황에서, 실패할 듯 실패할 듯 오묘하게 성공하는 과정들은 가히 전설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는 명 장면들이라 대충 요약 정리해봤다... -_-;;
실제 미사일 개발 과정은 누군가 다른 이글루스인이 잘 이어서 해 줄 듯 한 기분도 들고... -_-;;



아무튼 '닌텐도 발언'을 듣고 한참 웃다가, 2MB가카가 존경하는 박통 각하의 사례가 생각나 써봤음...
아마 2MB 가카도 저렇듯 시키면 알아서 해내는 사람들이 없어서 자신이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_-
("까라면 깐다"가 실제로 성공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위에서는 뭐든 밀어붙이면 다 성공할 수 있다, 라고 착각들을 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근사하게 하나 성공하는 와중에 엄청나게 망하는 사례들은 생각 안 하지?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