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모공원이 새 단장을 했습니다.
3~년 전 만 해도 종묘공원은 노숙자의 쉼터이고 할머니들이 술팔고 성매매를 하는 장소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던 공원이었습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에서 종묘공원을 깨끗한 공원으로 탈바꿈 시키고, 종묘입구의 옛모습을 되찾는 일환으로 3년여 공사를 한 끝에 며칠 전 새롭게 단장을 하고 개장을 하였습니다.
깔끔하게 단장한 종묘입구입니다.
넓은 길과 좌측으로 넓은 공원에는 새로운 수종으로 조경하고 일반에게 공개를 했습니다.
지지대를 세우고 뿌리가 확실히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쓴 흔적입니다.
전에는 없었던 돌다리가 보입니다.
종묘전교라고 부르는데 궁궐의 금천교와 같은 맥락의 다리입니다.
옆에 세운 안내판의 내용은
종묘로 들어가는 입구의 하천인 회동 제생동천에서 축조된 다리로, '대동지지'에서 이 다리를 종묘전교(宗廟前橋)라고 하였다. 종묘전교는 처음에 나무다리였던 것을 세종3년에 돌다리로 개축하였고 이후 현종4년에 보수한 바 있었다.
역대왕들이 종묘에서 행하는 종묘대제를 비롯한 각종 행사 때 이용하였던 중요한 다리였다.
이 다리는 널다리 형식으로 길이6.9m, 넓이9.6m 규모인데 다리의 한가운데가 한단 높은 어도형식이고 다리 네 모서리에는 해태상을 새긴 화표주가 마련되어 있다.
종묘전교 아래는 항상 물이 흐르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리를 받치고 있는 가운데 기둥은 옛돌기둥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화표주 위에는 잡귀신을 물리치고 화마를 쫓는다는 상상의 동물 해태상을 조각했습니다.
종묘전교를 몇m 앞둔 지점우측에는 하마비가 있습니다.
안내문의 내용은
하마비(下馬碑)는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아 누구나 이곳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명이 적힌 비석이다. 기록에 의하면 태종13년2월에 처음으로 예조의 건의에 의하여 종묘와 궐문 앞에 세웠던 것이 하마비의 시원이되었다. 처음에는 나무로 제작되었으나 현종4년 종묘전교를 개수하면서 석비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하마비의 전면에 새긴 글씨는 '대소인원하마비'라고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대소관리로 이곳을 지나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 는 뜻입니다.
공사를 하지 전 이 하마비는 종묘 외대문 전방 약30m 우측에 세워져 있었는데 공사후 이곳으로 이전 설치했습니다.
하마비 뒤로 또 다른 석물이 보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이것은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받쳤던 대석이라고 합니다.
세종16년 종묘동구에 설치했는데 임진왜란 때 사라져 해시계없이 받침대만 남아 있었는데 1898년 전차궤도를 설치할 때 파묻혔던 이 대는 1930년에 발굴되어 탑골공원에 옮겨 보존되어 오다가 2015년 종묘광장 정비를 하며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 종묘 방향으로 약 50m정도 들어서면 우측으로 종묘어정이 있습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56호인 이 어정은 조선 역대왕들이 종묘를 왕래할 때 이 우물물을 마셨다고 하여 어정이라 불리는데 우물의 지름은 1.5m, 깊이는 약8m내외라고 합니다.
예전에 어정의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일정한 수위를 유지했으며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였으며 물맛도 좋았다고 하는데 이 일대의 동명인 훈정동은 이 어정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이 우물은 콘크리트 관을 묻어 이용하여 원형을 훼손 하였으나 1983년11웡 서울시 우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우물 지상 없어진 부분을 장대석으로 정비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정비하기 전 어정의 모습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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