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많은 전설과 걸세출의 무장들이 소지했던 칼로 5개를 지칭하여 내려오는 천하오검이라는게 있습니다. 이 칼들은 모두 타치로서 무로마치 시대 이전에 만들어졌던 물건들로 간략히 이들에 대하여 소개해볼까 합니다.
1. 도우지키리 야스츠나 (童子切 安綱) : 날길이 79.9센치, 휨도 2.7센치. 헤이안 중기에 활약했던 명공 야스츠나는 많은 전설을 가진 도공으로 초대 쇼군, 사카노우에노타무라마로의 칼을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칼은 미나모토 요리미츠가 귀신 쇼텐도우지의 목을 베었다는 전설을 가진 칼로서 (그래서 도우지 키리라는 별명을 가진 칼입니다) 아시카가 가(足利 家)에서부터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거쳐 국보로 지정되어 현재 토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6명의 사형수 시체 몸뚱이를 쌓아 베기시험을 한 기록이 있는데 단칼에 베어내고 몸뚱이를 쌓아둔 토단에까지 꽂혔다는 전설적인 날카로움을 자랑하는 칼입니다. 2000년 정월인가 일본에서 야스츠나의 칼이 경매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3000만엔에 팔린 적이 있습니다. 무시무시하지요? ㅎㅎ
2. 오오니마루 쿠니츠나 (鬼丸 國綱): 날길이 78.2센치, 휨도 3.2센치. 호조 가(北条 家)의 가보로 전해지는 이 칼은 호조가의 요리토키가 원인모를 병에 누워있을 때 갑자기 바람이 일면서 세워뒀던 이 칼이 칼집에서 빠지더니 쓰러지면서 병상 옆에 있던 구리화로의 장식으로 있던 귀신의 발을 내리쳐서 두동강을 낸 후 귀신 자른 칼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후 요리토키는 병상에서 일어났고 이 칼은 호조가의 가보가 되었습니다. 도공은 당대의 명공 아와타구치 쿠니츠나로서 이 칼 역시 닛타 요시사다,아시카가 타카우지,오다 노부나가,토요토미 히데요시,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을 거쳐,메이지 천황에게 헌상된 물건으로 현재 궁내청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닛타 요시사다가 전사하면서 고분분투한 생생함을 보여주는 하코보레(칼날에 나간 이빨)가 아직도 모노우치에 남아있습니다.
3. 미카즈키 무네치카 (三日月 宗近): 날길이 80센치, 휨도 2.7센치 헤이안시대 야마시로의 산조 무네치카가 만든 자태가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 칼입니다. 야마시로 무네치카의 영향을 받은 칼의 특징중의 하나는 모토하바:사키하바의 비율이 보통 표준은 10:7 인데 반해 이 계열의 칼은 10:5.5 로서 이 칼 역시 가늘고 헤이안 시대의 특징인 코시조리 도신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미카즈키라는 것은 초생달이라는 뜻으로 그 이유는 이 칼의 하부치에 나타나는 야키바의 모양이 이중, 삼중 초생달의 모양을 띄고 있다고 해서 나온 별칭입니다. 국보로서 현재 토쿄국립박물관 소재.
4. 오오텐타 미츠요(大典太 光世): 날길이 65.75센치, 휨도 2.7센치 마에다 토시이에가 토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하사받은 칼로 알려진 이 칼은 무로마치 초대쇼군인 아시카가 타카우지의 보물이기도 했습니다. 마에다의 딸이 중병을 얻어 토요토미가 이 칼을 빌려주고 머리맡에 놓으니 병이 낳았는데 다시 토요토미에 반환하면 딸이 또 병을 앓아 토요토미가 결국 하사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칼은 치쿠고 미케에 살았던 도공 텐타 미츠요의 작품으로 현존하는 작품은 이 칼 한자루밖에 없습니다. 모토하바가 3.5센치, 사키하바가 2.5센치에 도신폭이 넓고 두께가 얇은 당시 헤이안시대의 칼로서는 이례적인 dimension을 갖는 칼입니다. 날카로움또한 유명하여 토쿠가와 막부시대의 타메시기리 명수였던 야마다아사우에몬 요시무네가 3개의 시체골반을 단번에 내리쳐 잘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57년 국보로 지정.
5. 쥬즈마루 츠네츠구(数珠丸 恒次): 날길이 81.1센치, 소리 3센치 현재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칼은 아오에 츠네츠구가 고토바인 천황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작품으로 니치렌 쇼닌이 소지했던 칼입니다. 쥬즈마루라는 별명은 이 칼의 손잡이에 염주를 걸고 다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니치렌 쇼닌은 불가에 귀의한 사람으로 승려가 타치를 패용하고 다녔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드나 불적(佛敵)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말도 있지만 破邪顯正의 검으로 패용했다는 말이 정설입니다. 니치렌이 죽고 난 후 미노부산(身延山)의 쿠온지(久遠寺)에 보관되어 오다가 쿄호 연간 (1716-1736)에 행방불명되었는데 200년이 지난 1920년에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현재는 아마가사키시(尼崎市)의 홍코우지(本興寺)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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