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대왕의 둘째 형인 호령대군의 10대손 이내번이 이 곳에 터를 잡은 이래
300 여년이 지난 집으로 99칸을 갖춘 조선후기의 전통적인 한옥이다.
1965년 이 집 주인 할머니와 며느리의 노력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받았다.
입장료는 성인 개인 2,000원. 성인 단체 1,500원. 어린이 개인 500원. 어린이 단체 400원
주차료는 소형 1,000원. 대형 2,000원. 단체(30명이상)
선교장 내에 한옥숙박체험장과 목공에 기념품점이 있다.
문의 전화번호 -선교장 (033) 640-4799
▲선교장 앞 들판에는 가을바람에 나락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있었다.
<선교>라는 이름은 배다리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이곳 앞까지 경포 호수가
펼쳐져 있어, 배를 대는 다리가 있었던 데서 그런 이름이 생겼습니다.
현재 경포 호수는 둘레가 4km에 불과하지만 조선 말기까지만 해도 12km에 달했다고 합니다
▲활래정
선교장 입구에 있는 정자로서 주자의 시(관서유감) 가운데
'근원으로부터 끓임없이 내려오는 물이 있음일쎄'라는 구절에서
활 (活) 자와 래( 來)를 따라 나온 이름이다.
활래정은 1816년에 세운 것을 증손인 이근우(李根宇)가 현재의 건물로 중건하였고,
▲월하문
당나라 시인 가도가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이란 시구를 얻고 '민다[推]'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두드린다[敲]'가 적당할지 골똘히 생각하면서 가던 중 한유의 행차와
부딪쳤습니다. 가도가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말하자, 한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생각엔 '퇴(推)'보다 '고(敲)'가 좋겠네.> 여기서 '퇴고'란 말이 시문에서 글자를
고친다는 뜻이 됐다는 겁니다. 월하문은 바로 이런 가도의 시구에서 따온 것입니다
▲남정네들만 드나들었던 '솟을대문'
<선교유거>는 신선이 사는 산에 그윽하게 숨어 산다는 뜻
▲여인네들이 드나 들었던 현판도 없는 문
▲여인네들이 드나들었던 문을 안에서 보면...정면으로 밖이 보이질 않는다.
▲맛있는 냄새가 흘러 나왔던 부엌
▲열화당
사랑채인 열화당은 1815년(순조 15)에 오은거사(鰲隱居士) 이후(李后)가 건립한 것이며,
동판으로 얹어진 차양은 러시아 공사관이 기증한 것이다.
▲때마침 집안 어른을 만나 선교장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중...
이 선교장을 끝가지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이집 여인네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열화당 뒤란
▲선교장 전경
▲한옥
▲활래정 풍경
▲영화 '물레야 물레야' 촬영 장소였다.
▲연꽃 석탑
강릉 99칸 한옥 선교장...2006.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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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예술
글쓴이 : 라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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