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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드라마 <궁>과 어차

_______! 2006. 9. 27. 10:02

 

드라마 <궁>과 어차

 

우리는 왕실로맨스라는 독특한 소재로 한동안 세간을 흔들리게 했던 드라마 <궁>을 기억한다. 고상하고 품격 높은 황실 생활과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들의 풋풋한 사랑이 어우러져 우리의 눈과 귀는 쉽게 그곳에 집중되어 졌다. 세인에 불과한 나도 그 드라마를 지켜보며 같은 흥미를 느꼈으나 어느 순간 눈앞을 스치는 한 장면에 유쾌하기만 하던 생각을 멈춰 서게 된다. 고상한 황태후 마마의 외부 행차 때 우아한 자태로 오르던 차(車), 바로 그 차(車).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가장 수려하고 장엄한 규모를 자랑하는 궁은 단연 창덕궁이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된 우리의 창덕궁은 화려하면서도 조화로운 신비한 매력을 가진 궁으로 유명하다. 그 아름다운 창덕궁에는, 조선 마지막 황제인 순종과 황후가 타던 자동차인, 어차(御車) 두 대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지금 보기에는 한없이 고아한 분위기이나 그 품격을 지니기까지 참으로 긴 길을 돌아왔던 것이다.

 

 


  
우리 마지막 황실은 체어맨, 그랜저, 벤츠류(드라마<궁>의 황후와 황태자는 체어맨을 타고 내렸던 것인데)가 아닌 어차를 애용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100여 년 전의 황실을 오늘에 부활시켜 완벽 재현했다는 드라마 <궁>은 안타깝게도 이 점을 간과하고 말았다. 배꽃 왕실문장을 단 체어맨을 타고 등교하는 황태자의 모습이라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우리 것에 대한 깊은 애정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싶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 마지막 황실이 사용하던 어차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그 어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때의 모습 그대로 장엄하게 전시될 수 있었을까, 이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려 한다.

1992년으로 사연은 거슬러 올라간다.


어차는 현재 창덕궁 어차고 안에 온전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아주 잘 보존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관리 상태가 허술하여 많은 자동차 부품이 없어지고 원형이 훼손되어 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었다.(아예 사라지지 않고 그나마 남아있다는 게 하늘이 도운 것일 수도) 다행히도 뜻있는 몇 사람의 발의와 청(당시는 문화재관리국)의 노력에 의하여 어차 두 대의 귀중한 수리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순종이 사용했다는 캐딜락(미국 GM사 제작, 1919년형 추정)과 황후가 사용했다는 다임러(영국 다임러사 제작, 1914년형 추정), 수리복원 전의 모습은 허술하고 낡았으나 나름대로의 기품이 있어 보인다.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의 불은 당긴다. 생각보다 정교하고 많은 공을 들여야 제 모습으로 복원이 가능할 것 같다. 외부의 파손된 부분 뿐 아니라 내부의 하나하나 섬세한 문양까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 온 신경의 집중이 필요하다. 같은 재질, 같은 문양, 같은 빛깔. 조선의 마지막 황제 부부의 숨결을 두고두고 느끼고자 말없는 여행이 시작된다.

 

그 긴 여정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92년 이전부터 조금씩 있어 왔던 어차 수리복원 의견이 힘을 얻어 본격적 논의가 이루어진다. 10월 현대자동차가 어차의 수리복원을 맡겠다고 의견을 보내왔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 맘이 쓰였으나 전액 현대자동차의 비용으로 하겠다고 한다. 비용과 수리복원 정도와 방식을 두고 여러 경우의 수를 점쳐본다. 원형 그대로 두고 살짝 보존처리만 하느냐, 아예 복제품을 만드느냐 의견이 분분하다. 그 중간쯤을 선택하여 일을 진행시킨다.
 


   
93년 1~2월 어차 수리복원을 위해 청 직원 등 6명이 4개국(미·영·독·일) 출장을 다녀왔다. 현지의 기술력과 상태 등 해외자료를 수집하고자 함이다. 각종 자동차 회사를 둘러보고 이리저리 그림을 그려보고 계획도 내어 본다. 마음만은 벌써 앞서 달려간다.

        

 

그 후 93년 어차 수리복원 사업이 잠깐 답보 상태에 놓인 후 95년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각종 조사와 보고를 거듭하고 97년부터 다시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진행되었다. IMF 외환위기로 잠깐 사업을 중단하기도 했었다. 치솟는 환율의 압박이라니. 늘 처음같은 마음으로 긴장 속에 일을 진행한다. 온전한 모습으로 눈 앞에 나타나게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경기도 남양연구소로 어차를 옮기고 보다 정밀한 복원을 위해 영국 월대 복원회사를 선정하여 작업을 진행한다. 2000년 5월에는 어차의 새시와 엔진 등의 부품이 거의 다 수리되어 역순으로 조립을 시작했다. 매우 기술적이고 정교한 작업이다.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땀을 필요로 했다.

    
            

 

2001년 5월에는 영국에서 코치·타이어·휠 등을 공수해 왔다. 먼 길을 돌아서 온 부품들은 그 값어치를 하고 있었고 어차는 조금씩 본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10월 어차 두 대는 경기도 남양연구소에서 완전히 조립 복원 되었다. 1차적 완성, 처음에 막막했던 심정은 뿌듯함으로 바뀐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소한 기대.

    
         
  
2001년 11월 27일 드디어 창덕궁 어차고에서 어차 수리복원기념식을 거행하고 우리의 어차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 창덕궁에 놓여졌다. 유리 속 어차의 모습은 처음과는 몰라보게 달랐고 긴 시간을 달려온 만큼 의연하고 단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년 초에 <궁2>가 방영된다고 한다.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만큼이나 기대되는 부분은 우리 황실의 모습이 어찌 재현되는가 하는 것이다. 2편에서 만큼은 체어맨을 타고 등장하는 황실 사람들이 아닌 제대로 복원된 어차를 타는 모습을 보기 희망한다. 한간에 떠들썩한 한류 덕인지 근래 들어 외국으로 수출하는 드라마도 많은 듯 싶은데, <궁> 역시 그 반열에 들어선 유명한 드라마이니만큼, 우리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바로 알려 진정한 ‘문화 메신저’ 노릇을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어차의 복원이 우리 문화를 바로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시간은 사람을 철들게 한다. 또 오랜 기다림은 열매를 달게 한다. 무심히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닐 일들은 우리의 관심과 노력으로 인해 빛나는 보석으로 탈바꿈한다. 다소 긴 시간이 걸렸지만, 또 그리 유쾌할 것 없을 우리의 근대사라지만 풍파에 쓸려 고물이 될 뻔한 우리의 귀한 흔적이 이로써 역사가 되었다. 순간순간 별스러울 것 없을 발걸음들이 결국 의미심장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다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을 뿐이고 창덕궁 어차고 속의 온순한 기념물로만 여겨질 수 있으나 그 소소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있어왔다. 다시 말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또다른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흔적은 훗날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가을이 성큼 다가온 2006년의 어느 날, 순종과 그 황후가 오르고 내렸을 그 어차를 떠올려 보며, 그 소중함을 영원으로 기억하려 복원에 애써왔던 우리의 시간들을 추억하며, 가만가만 생각을 해본다.
모두에게 풍요로울 가을을 꿈꿔 보며.

 

 

글쓴이 : 동산문화재과 학예연구관 연웅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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