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ktjwin/21661044
왕의 남자가 인기가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관람객 천만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고 하니.. 그에 덩달아 오래전에 포스팅한 제 글이 네이버 메인에 소개되기까지 하는 걸 보니 말이죠...
원래 처음 ‘왕의 남자 전통무기 묘사 오류’라는 글을 쓸 때에도 몇 몇 미흡한 부분이 있었고, 메인에 소개된 다음 여러 사람들이 와서 이런 저런 부분에 대해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아 별도의 글을 쓸 생각이 없었으나...많은 분들이 지적한 부분이기에 몇 가지 보충설명(뭐...변명이라고 해도...) 겸 당시에 글 쓸 때 놓친 부분을 보완하는 글을 올려봅니다.
1. 환도
많은 분들이 조선시대 환도 중에도 칼자루감기가 있는 것이 있다는 지적과 함께 단지 ‘다이아몬드형식의 츠바이토’를 가지고 일본도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조선시대 환도 중 칼자루감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형식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겠죠. 현재 남아 있는 환도 유물 중 칼자루감기가 있는 유물들은 제가 알기로 대부분 임진왜란 중이나 그 이후의 유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기간 중 일본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요.
임진왜란 기간 중 일본도의 영향을 받아 칼자루감기 방식이 등장하였지만 일본식과는 그 형식면에서 조금 다른 모양을 보여줍니다. 조선식 칼자루감기는 주로 한쪽으로만 매거나 다이아몬드형이라해도 그 감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조선식 칼자루감기는 전형적인 일본식 츠카이토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또한 영화 ‘왕의 남자’의 배경은 연산군 때였습니다. 물론 조선전기에도 일본사신이나 상인들을 통해 일본도가 진상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으니 전기에도 칼자루감기가 완전히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반화 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라고 봐야 하지 않나 보며...그렇기 때문에 왕의 남자에 나오는 일본도는 오류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한 단지 칼자루감기만이 아닌 칼의 전반적인 모양 자체가 왕의 남자의 환도는 너무나 ‘일본스럽다’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 환도의 경우 생각보다 길이가 짧습니다. 문종 때 그 규격이 정해진 바가 있는데 보병용의 경우 길이가 손잡이까지 다 포함해도 73Cm에 못 미칩니다. 물론 기병용은 더 짧고요.
특히 조선시대 왕을 시위할 때 사용되는 칼은 ‘운검’이라 하여 특별히 그 모양에 대해 규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운검’과 시위대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 조선전기에 일본도가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왕을 시위하는 시위대가 사용했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나 생각됩니다.
2. 환도패용 문제.
환도패용문제는 이쪽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워낙 자주 등장하는 고질병이라 당시 글을 쓸 때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패용방법에 대해 올려 봅니다.
일반적으로 칼을 허리띠에 푹 찔러 넣어서 패용하는 방식은 일본도의 방식입니다. 일본도 중에서도 주로 전국시대 말기에 나온 打刀라는 칼의 패용방식입니다.
조선의 경우 환도는 전기나 후기나 다름없이 칼자루가 뒤로 가게 해서 허리(후기에는 겨드랑이부근)에 휴대하였습니다.
일본식 패용방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칼자루가 뒤로 가게해서 휴대하는 것이 상당히 어색하게 보이겠지만 청나라나 근대 일본의 경우에도 이런 방식으로 패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일반화된 하나의 방식입니다.
칼자루를 뒤로 가게 패용한 이유는 기병, 보병을 막론하고 활을 쏠 때 불편한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일반적인 옷을 입었을 때도 칼손잡이가 뒤로 가도록해서...)
3. 무촉전 문제.
가장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부분으로 영화상에서 모의사냥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화살촉부분이 위로 가게 설정했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습니다만...애시당초 제가 지적하고자 한 부분과 그 이유는 ‘전통무기 묘사에 있어서의 실제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오류’에 대해 지적한 것이었지 ‘영화상 설정에 있어서의 오류’가 아니었다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큰 오류일지 모르는 것은 화살촉의 위치가 아니라 화살을 담는 전통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영화상에 등장하는 전통은 말 그대로 ‘화살을 담는 통’입니다.
위 그림을 보시면 알겠지만 원래 전통이란 물건은 뚜껑까지 달려 있어 화살을 그 안에 넣어서 뚜껑을 닫아 화살을 ‘운반’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물론 선비나 한량들이 향사례를 할 때나 활놀이를 할 때 이용되기도 했습니다만... 전통은 기본
적으로 민간용&연습시에 사용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조선 시대 전투용(수렵용)화살집은 조선 전기와 중기 이후가 많이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 전기는 전통처럼 입구가 둥근 모양의 시복(화살집)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종실록 오례의에 나오는 조선초기 궁대(활집)와 시복(화살집) 그림입니다.)
(원나라 무사 그림입니다.)
중기 이후에는 납작한 모양의 전혀 다른 모양의 화살집(동개)가 사용됩니다.
3. 활 패용 문제
(
활 패용 위치와 더불어 환도 패용 모습도 다시 한 번 확인사살...)
앞번 글에서 이 그림을 사용했는데...어떤 분이 활이 등뒤에 있는 것 아니냐는 글을 올려주셨는데...그 때는 작은 그림을 사용해서 구분이 좀 애매한 면이 있었다고 보여지는바...이번에는 사진을 좀 더 크게 올려봅니다.
구군복(융복)을 입은 그림이 좀 애매하다면 그 앞에 말 타고 있는 사람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등 뒤가 아니라 오른편 허리부분에 활을 패용하고 있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3. 칼의 장식문제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칼을 좌대에 걸어 장식하는 것이 조선시대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고려시대의 기록인 고려사절요에도 ‘칼을 벽에 걸어 놓았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기록과 외국인의 기록에도 대부분 칼을 벽에 걸어 장식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는 좌대형식보다는 벽에 걸어 보관하는 것이 더 ‘조선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그 장면을 ‘오류’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淸風明月 小考 (0) | 2006.09.29 |
---|---|
환도 패용 방법에 대한 자료 (0) | 2006.09.27 |
[스크랩] '디지털한양'이 서울역사도시 복원 앞당길까? (0) | 2006.09.27 |
100년전 육조거리 실측평면도 발견 (0) | 2006.09.27 |
[스크랩] 전쟁으로 생겨난 전통 풍속들은? 연날리기, 강강수월래... (0) | 2006.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