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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키가미(イキガミ) - 마세 모토로

_______! 2008. 2. 16. 13:53

 

STORY

 

가까운 미래로 생각되는 일본. 이곳은 '국가번영유지법', 일명 '국번'이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것은 국가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제도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사람에게 0.1%의 확률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나노캡슐이 들어 있는 주사를 맞게해 20세 전후에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제도다. 죽음에 이르는 사람은 누구이건 상관 없고, 무작위의 추첨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렇게 해서 죽은 젊은이의 가족에게는 평생 연금이 지급되어 국가가 보호한다.

그리고 죽음에 이를 젊은이에게는 24시간 이전에 죽음을 선고하는 이키가미가 배달되는데...

 

몇 년 전 일본인 행정서사와 대화를 하던 도중에 한국의 젊은 세대와 일본의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국가권력'에 대한 생각 차이라는 이야기거리가 튀어나왔다. 그 분이 말하길 "일본 젊은이는 국가 권력을 두려워하지만 국가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줄거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한국 젊은이는 국가 권력을 무서워하지 않지만 국가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반드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타당성 있어 보이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키가미>라는 만화가 바로 그런 일본인 특유의 국가관을 반영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키가미>에 나오는 국가번영유지법은 말도 안 되는 법률이다. 일본의 합계출산율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사실상 신생아의 0.1%를 무작위로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활발한 경제활동을 해야 할 시기인 20세 전후해서 말이다.

현재 일본의 출산율과 고령화를 고려했을 때 20대 인구의 0.1%가 죽는 것은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다. 그 사람을 거기까지 교육하는데 들어간 비용과 그 사람이 20세부터 65세까지 경제활동인구로 존속할 때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회비용, 그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할 막대한 소비, 그리고 추후 출산율에 증가에 대한 잠재기여도 등을 고려하면 <이키가미>에 등장하는 국가번영유지법은 국가의 존속을 위협할만한 말도 안 되는 법이다. 만약 죽게 되는 사람이 고급 엔지니어였다던가 이럴 경우에는 국가에 미칠 악영향은 더욱 클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판타지 만화가 아닌 극도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만화에서, 그것도 수십만 명이 보는 주간잡지에 연재해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와 있는지를 말해주는 지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만화는 바로 이러한 공감대를 통해서 오히려 그러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국가적인 분위기를 비판하는 다소 역설적인 만화이다.

 

<이키가미>의 만화로서의 완성도는 매우 높다. 우선 그림과 연출이 상당한 수준이고, 살아갈 날이 단 하루밖에 남지 않은 젊은이의 남은 시간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도 훌륭하다. 이것은 매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문제는 그의 죽음은 죽는 당사자의 잘못이 없다는 점이다. 개인의 살겠다는 의사는 전혀 반영해주지 않고, 이미 결정된 규칙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만을 다할 뿐이다. 이것이 이 만화가 감동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 감동은 일종의 거짓 감동이다. 단 하루의 삶에 대해 감동하는 것은 일종의 세디즘에 가깝다. 이것은 일본 사회에 아직까지도 만연한 이지메 문화를 국가적인 규모로 확대한 그런 수준인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격인 후지모토는 국가공무원으로 이키가미를 당사자에게 배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지만 언제나 국가번영유지법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후지모토는 국가번영유지법의 취지에도 공감하지 않으며, 그 시행 방식에도 불만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행하는 동료 공무원들에게도 환멸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후지모토는 그토록 불만과 환멸을 품고 있는 일을 매우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자신이 조직 사회에서 배척될 것을 두려워하여 그 사회의 규칙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다.

결국 이키가미를 통해 죽음에 이르게 될 당사자나, 죽음에 공포를 갖고 살아가는 젊은이나, 이미 죽음의 공포를 벗어난 기성세대 할 것 없이 이키가미는 이 세계 속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작가가 바라보는 작금의 일본사회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의지'는 아주 심각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전세계 자살율 1위 국가는 리투아니아이고(10만명 당 44명), 2위가 러시아다.(10만명 당 40명) 10위 안에 드는 국가들은 8개 국가가 옛 소련 연방 국가고, 1곳은 동유럽 국가인 헝가리다. 10위 안에 선진국은 단 한 나라밖에 없는데 바로 10위를 마크하고 있는 일본이다. 일본의 자살율은 인구 10만명 당 25명에 이른다.(2000년 기준) 1년에 거의 3만명이 자살로 죽는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자살자의 상당수가 젊은 세대다.

 

젊은이가 취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프리타만 하고 살며, 쉽게 삶을 포기한채 자살을 하는 나라에서 정부가 제대로 해주는 건 아무 것도 없면 그 젊은이들의 좌절과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철저하게 개인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지메 당하는데 있어서 개인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방황하는 게 꼭 개인의 의지가 박약해서 그렇다고만 봐야 하는가? 젊은이 개개인의 문제는 결국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국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고, 정부도 무관심 하다면?

결국은 좀 과격한 방식으로 그걸 인식시켜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키가미>의 논리는 이런 것으로 보인다. 보다 원론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만약 일정 비율의 젊은이가 무조건 죽어야 하는 상황이고 그 죽음에 당사자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이다. "이래도 이게 개인의 문제냐?"라고나 할까.

 

조금 황당한 설정의 만화라고 느낄 수 있지만 본문에 설명한 그런 관점으로 읽어본다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꼭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대한민국도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니까.

출처 : 아까짱 블로그
글쓴이 : 김상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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