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즈하라 켄지의 <감벽의 나라>는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미즈하라 켄지의 유일한 메이저 출판사 연재작이면서도 구성 방식이 철저한 아마츄어리즘에 기초한 미즈하라 켄지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아마츄어적 감성이 강한 작품이다. 제목의 '감벽(紺碧)'이란 '검푸르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 만화의 제목을 제대로 번역해보면 '검푸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현대 일본 사회가 지닌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다.
중학생인 카이는 초등학생 시절에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외향적인 소년이었지만 중학교에 오면서 내성적이고 왕따를 당하는 아이로 변해버렸다. 카이가 이와 같이 바뀐 것은 한 지방 문예지에 연재하다 연재가 중단된 'ZONE'이라는 소설의 영향이었다. 카이는 ZONE의 메시지와 사상에 심취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카이에게는 ZONE의 문구를 외우며 교사의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는 것이 유일한 평화, 그곳에서 카이는 히미코라는 소녀를 만나 그녀와 친구가 된다.
카이는 ZONE의 연재 중단 이유를 알기 위해 지방 문예지를 만드는 편집부를 찾아가는데(이곳도 대학 서클 수준인 곳) 거기서 ZONE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를 듣고 크게 실망한다. 하지만 ZONE에 호의를 갖고 있던 그곳 편집장은 작가의 주소를 알려주고 그 주소로 찾아간 카이는 깜짝 놀라게 되는데, 존의 작가는 다름 아닌 히미코였던 것이다. ZONE은 히미코가 병으로 입원해 있을 때 별 생각 없이 쓴 소설로 히미코 본인도 ZONE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카이와 친구들은 소설 ZONE의 사상이 왜곡되지 않고 전파되어 세상을 바꾸도록 하기 위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밴드를 결성한다. 그리고 이 밴드는 히미코가 붙인 가사를 노래해 ZONE의 사상을 대중에게 알리기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감벽의 나라>의 이야기로 이제 막 본편이 시작되려고 할 때 연재가 끝나버렸다. 공교롭게도 <감벽의 나라>가 연재하던 <영 킹 아워즈 라이트>의 휴간으로 인해 <감벽의 나라>의 연재는 본편이 시작되기 직전에 끝났고, 이 상황이 소설 ZONE과 너무 흡사해 이 만화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소설 ZONE의 내용은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사람들이 모두 현실이라고 믿던 세상이 사실은 가상 현실의 세계였고, 대부분의 사람은 벽의 존재 때문에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ZONE(현실 세계)의 존재를 알게 된 일부의 사람들은 가상 세게를 벗어나기 위해 조직을 결성해 사상을 전파해나간다는 것. 말하자면 딱 중학생 레벨에서 처음 보면 신비로운 분위기와 마치 대단한 사상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착시현상에 의해 위대한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는 전형적인 3류 SF소설이다. 하지만 <감벽의 나라>에서 ZONE이 청소년 사이에서 강한 파급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완전하지 못한 모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관점에서는 자신들의 입맛에 딱 맞는 자신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모두 하고, 일상의 돌파구를 찾는 마음이 매우 그럴듯한 사상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인 체계도 없지만 오로지 감성 그 자체로만 이루어진 ZONE의 사상은 청소년의 사고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일본 청소년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다. 카이는 어른이 된다는 의미는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몇 개나 상실했나"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상실해가는 가능성들은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것이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버린 것을 사회의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자신들의 가능성을 100% 실현해 줄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데, 이것이 실체가 있다면 ZONE인 셈이다. 검푸른 하늘, 검푸른 땅, 검푸른 시간, 검푸른 미래, 어느 것 하나 안개와 어둠에 가려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ZONE은 그야말로 절대영역일지도 모른다.
출처 : 아까짱 블로그
글쓴이 : 김상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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