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 인간들 사이에서 돌연변이인 '세컨드'라는 존재가 태어나기 시작한다. 세컨드는 인간들이 갖기 못한 특수한 능력을 가졌으며, 그 능력은 별볼일 없는 좀도둑질이나 가능한 것에서 한 도시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간들은 그런 세컨드를 두려워하여 배척하지만, 세컨드들은 그런 자신들의 능력에 나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세컨드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능력을 지닌 세컨드가 있다. 인간의 유대를 이용해 순간이동할 수 있는 능력자 죠. 자신의 몸을 날카로운 칼날로 바꿀 수 있지만 능력을 제어하지 못해 쉽게 폭주해버리는 마르코. 두 사람은 최초의 세컨드인 '세컨드 이브'를 만나 두 사람의 능력을 서로 바꿔줄 것을 부탁하려 한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군인인 마르코는 감옥에 갇혀 있던 도둑 죠를 탈옥시켜 함께 세컨드 이브를 찾는 모험을 떠나는데...
<이트맨>의 작가 요시토미 아키히토(吉冨昭仁)의 비교적 최신 작품인 <게이트 러너>는 요시토미 아키히토라는 작가가 할 수 있는 것과 그가 지닌 한계를 2권이라는 매우 짧은 분량에서 모두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10년을 넘게 끌었던 <이트맨>의 결말이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것은 요시토미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한계란 '무언가 있어보이지만 사실은 이렇다할 알맹이는 없는' 그 겉멋뿐인 연출이다. 속된 말로 '후까시'라고 부르는 Cool해 보이는 듯한 요시토미식 연출은 마치 작가가 무언가 대단한 히든 카드를 숨겨놓은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숨기지 못했기 때문에 대단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듯 착시현상을 일으킬 뿐인 그런 것이었다.
<이트맨>이란 작품은 볼트 크랭크에게 무언가 대단한 히든 카드가 숨겨진 듯 독자를 자극해 기대치를 키웠지만 막상 보여줄 것이 없다보니, 결과적으로는 볼트 크랭크를 신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 것도 수습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 아니었던가.(인터넷 게시판에 싸움 붙었는데, 찌질거리던 놈이랑 초고레벨의 고수가 사실은 한 아이디 갖고 원맨쇼한 거였다는 결말이니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요시토미 아키히토 만화는 지나치게 스케일을 키우지 않고 적당한 분량에서 끝낸다면 깔끔하게 마무리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적당한 분량이란, <게이트 러너>라는 만화를 통해 보았을 때 딱 두 권 정도의 분량이었던 것.
<게이트 러너>는 <이트맨>과 <레이>를 아주 짧은 분량으로 압축해 놓은 것 같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트맨>이 적어도 15권 정도 분량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을 단 한 권으로 처리한다. 어차피 <이트맨>은 항상 똑같은 패턴의 에피소드만 반복되지 않았던가. <게이트 러너>는 그 반복되는 똑같은 패턴의 에피소드를 2~3번 정도만 보여주고 끝냈을 뿐이다.(그럼에도 이 2권짜리 짧은 만화에서도 결국 에피소드의 패턴은 다 똑같다는 것이 참 놀라울 정도다.) <이트맨>도 이 정도 분량으로도 충분히 끝낼 수 있었던 만화였던 거다.
<게이트 러너>는 분명 <이트맨>류의 우려먹기 만화지만, <이트맨>에서 전혀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근접공격계 능력자 1명, 원거리 공격계 능력자 1명, 특수계 능력자 1명이라는 제법 밸런스가 잘 갖춰진 파티를 구성해 적어도 '고독한 히어로 강박증'에서는 벗어났다. 이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인간적인 면이 철저하게 배제되었던 이전의 주인공들에 비해서 <게이트 러너>의 마르코, 죠, 샐리 트리오는 능력보다는 인간적인 감정에 충실한 소년만화식 캐릭터인데, 이런 점이 오히려 현실감 있게 느껴져서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왜 <이트맨>이나 <레이>에서 진작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는지 그것이 아쉬울 따름이다.(자기 반성에 의한 결과였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요시토미 아키히토는 최근에는 <블루 드롭>이라는 만화를 그리고 있지만, 에로한 분위기 이외에는 이렇다할 매력이 없는 만화이다. SF로서도 러브코미디로서도 어중간한 자굼이 되고 말았는데, 결국은 <이트맨>류의 전개를 스스로 버렸으면서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트맨>은 요시토미를 인기 작가로 만들어준 히트작인 동시에 그의 무덤인 것 같다.
그래도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적어도 <게이트 러너>가 <레이>보다는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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