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이순신 장군검과 조선식 쌍수도

_______! 2008. 10. 29. 16:16

이순신의 검으로는
명 도독 진린의 보고를 받은 명나라 신종이 이순신에게 선물로 내린 귀도와 참도도 있지만,
이순신 장군검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아산 현충사에 소장된 쌍수도 두 자루를 가르킵니다.


제원


이순신 장검(아산 현충사 소장)

보물 제 326호인 충무공 이순신 장검은
크기가 197.5cm이고 무게는 5.3kg 나 되는, 상당한 중장비입니다.
검명은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 산하
-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검명이 두 자루에 나뉘어서 새겨져 있다.
칼등에는 홈이 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검명 외에도 비천성 무늬와 칼을 제작한 장인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 적혀 있는 "갑오 4월 일초 태귀련(太貴連) 이무생 작(李茂生 作)"이라는 문구로 보아
당시 대표적인 도검 명장으로 이름난 태귀련(太貴連)과 이무생(李茂生)이
선조27년(1594) 4월에 진중에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칼 끝에 새겨진 무늬는 덩굴풀 무늬(당초문)이다.

칼에는 칼집에 일본도처럼 허리에 차기 위한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칼집에 붙어 있는 줄은 어깨에 메는 정도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손잡이.
전통적인 조선 도검식 손잡이가 아니라 남색 끈을 X자 모양으로 꼬아서 손잡이를 만들었다.

이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대표적인 일본도의 손잡이 양식입니다.
이렇게 일본도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거대한 양손칼을 조선식쌍수도라고 합니다.


조선식 쌍수도

무예도보통지의 쌍수도(중국식).
손잡이를 살펴보면 이순신 장군도처럼 C자 모양의 손잡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실제 중국식 쌍수도

조선식 쌍수도(雙手刀)는 무예도보통지에 의해서
"장검. 용검. 평검이라고도 불리며, 칼날의 길이 5척, (동호인 1척), 자루 1척 5촌. 7척짜리도 볼 수 있다." 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검은 7척 가량 하니까 칼날의 길이는 5척이고 자루는 약 2척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검은 무예도보통지에 비해서 손잡이가 약간 큰 셈이죠.

본래 쌍수도는 일본 전국시대의 "노타치(野太刀 - 쇼군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라는,
거대한 양손 일본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왜구들이 거대한 양손칼을 들고 설치자
명나라 장수들이나 조선의 군인들이 일본도를 흉내내어 큰 칼을 만들고,
또 수입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죠.
이순신 장군검을 왜검으로 분류하는 경우는 넓은 의미의 왜검(거대한 양손 곡도)을 의미할 때의 말입니다.

그 중에서 조선의 쌍수도는 국방부 국방군사연구소가 발행한 ‘한국무기 발달사’에서는
이순신 장검처럼 긴 손잡이가 조선식 쌍수도의 특징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에 올려놓은 중국식 쌍수도하고 생긴 건 비슷하지만 손잡이 비율이 다른 것은 그 때문입니다.
(보통 칼날 아래 손잡이 위에 30cm 정도의 동호인이 붙는데, 동호인은 옵션이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검에서는 아주 작습니다.)


현대 일본의 타치
이순신 장군도보다 칼날에 좀 더 굴곡이 있다.

그런데 저번에 전쟁기념관에서 했던
한국의 전통무기 전시회에서 판매되었던 도록이나 전시회 내용에도 쌍수도는 없습니다.
심지어 무예도보통지에도 조선식 쌍수도를 따로 그림 그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리 많이 쓰인 듯하지는 않습니다.
하기야, 이순신 장군검도 배 위에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중장비니까요.
역시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한국 사람들은 환도를 더 많이 썼겠죠.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예도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도라고도 합니다.)


이순신 장군검 - 쌍룡검


태조 어검

그런데 한국 칼 자체가 워낙에 짧고 손잡이 길이는 고정되어 있다 보니,
손잡이 비율이 큰 것이 한국 도검의 특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태조 어검 사진을 보면 이 검 역시 손잡이 비율이 큰 편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전통이 쌍수도를 만들 때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쌍룡검과 태조 어검을 비교해보면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요,
환도가 몽골 검의 영향을 받아서 굽어 있기야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그건 삼국시대의 직도에 비교했을 때의 얘기고,
일본도 같은 도검에 비하면 굽은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환도가 크게 굽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왜구나 왜군이 사용하는 곡도의 이점을 알게 된 이후였죠.

쌍룡검과 태조 어검을 보면,
태조 어검이 가장 직도에 가깝고,
쌍룡검 중에서도 아래쪽 칼은 곧은 반면 위쪽 칼이 더 굽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바다에 떨어진 왜장을 끌어올려 즉각 베어버렸다는 기록의 그 칼이
저 "약간 더 굽은 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보통 오른손에는 항상 자주 쓰는 병장기를 쥐는 법이고,
쌍검을 쓸 때나 남은 한 자루를 뽑는 법이니까요.
보통은 편곤이나 활을 쓰고 임진왜란 후에 협도를 좀 쓰는 게 보통입니다만,
이순신 장군은 해군이었으니 이따금 칼을 잡는 정도였겠죠.

유감스럽게도 쌍룡검은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1910년까지는그 행방을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반출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PS> 사실 저도 보질 못해서 귀도와 참도의 특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언제 한 번 충렬사에 가봐야 겠네요.
레퍼런스

국방일보 연재기사 <한국의 군사문화재> 

 

 http://kr.blog.yahoo.com/dr_kaljaby/1713.html?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