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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탐정' 민간조사원 따라잡기

_______! 2008. 10. 30. 17:10
부산일보

'우리시대 탐정' 민간조사원 따라잡기

기사입력 2008-10-30 11:48 기사원문보기


탐정 홈스·김전일처럼

 부산에 '탐정학교'가 생겼다? 지난 18일 경성대 평생교육원에 개설된 '민간조사전문가 양성과정'이 바로 그것. 한국PI(Private Investigator·민간조사원)협회와 공동으로 실시하는 이번 교육과정은 10주간의 이론 및 실무교육을 통해 말 그대로 민간조사원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수강생 수 10명 직업·나이 제각각

25일 경성대 중앙도서관 건물 14층. 개강일에 이어 두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다. 수업이 시작되는 오후 1시를 즈음해 강의실에는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평생교육원에서 개설한 강좌라서일까? 수강생의 수는 10명뿐이었지만 연령도 직업도 제각각이었다.

고희(古稀)의 나이에도 직접 RV카를 몰고 다니는 '젊은 오빠' 박재호(71)씨는 셜록 홈스를 동경했던 지난 시절의 동심이 떠올라 수강신청을 했다. '좋아하면 닮는다'더니, 베이지색 헌팅캡을 쓰고 콧수염을 기른 모습이 서양 담뱃대만 물면 영락없는 셜록 홈스다. 수강생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어 이것저것 개인신상을 여쭤봤지만 '많이 알면 다친다'신다. 까칠한 포스만으론 이미 홈스를 넘어섰다.

40대 이상에게 동경하는 탐정이 셜록 홈스라면 요즘 20대들은 다르다.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동희(27)씨는 수년간 만화방에 수업료를 지불하고 소년탐정 김전일과 보험수사원 다이치 키튼으로부터 날카로운 추리력을 사사(?)했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범인은 이 방 안에 있다. (김전일이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에서 어김없이 날리는 멘트)" 그런데, 이건 여~엉 현실적이지가 않다. 그래서 실전 '필살기'를 익히기 위해 강의실 문을 두드렸다. 취업준비로 하루 24시간도 모자를 시간에 뭐하는 짓이냐고? 졸업 후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 내린 결론이다. "막연한 이야기 속 탐정의 모습만으론 나의 적성이라고 확신할 수 없어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수업을 듣게 됐어요. 주중에는 남들처럼 영어공부 등 취업준비를 하고 있고요."

현명한 판단이다. 사실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의 모습이란 것이 현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20세기의 셜록 홈스는 명석한 추리력만으로 모든 사건을 해결했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실의 탐정은 그렇지 않다. 은퇴경찰 에르큘 포아르가 늘상 이야기하는 '회색의 뇌세포' 못지않게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요구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범죄유형도 다양해지고 그 수법도 최첨단을 달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 또한 복잡하기 그지없다.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범죄자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관련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섭렵해야 할 교육과목 수두룩

그래서 이들이 섭렵해야 할 교육과목들도 교통사고법에서부터 사이버범죄, 기업회계부정 등 다양하다못해 끝이 없다. 개강일이던 지난 18일의 강의 주제는 '보험범죄'. 복잡한 보험법과 실제 법망을 피해가는 여러 보험범죄 유형을 공부했다. "마치 고시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어느 수강생의 말이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이날의 주제는 '사건현장실습'. 범죄현장에서 직접 증거를 채취하고 범인을 쫓는 시간이다. 평소 소설 속 탐정의 이미지와 가장 비슷한 교육시간. 그래서 수강생들의 기대에 찬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약간의 이론을 거쳐 드디어 실습시간. 수강생 모두 모의범죄현장으로 이동한다. 이론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복도 건너 교수연구실엔 미리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모의범죄현장서 단서 찾아보고

먼저 각자의 역할을 나눈다. 범죄현장을 기록하는 카메라 촬영도 중요한 임무. 그러나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 반면 지문 채취는 가장 인기있는 역할. 소설 속 사건의 기록자였던 왓슨이 되기보단 사건을 해결하는 홈스가 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역할을 분담하고 각자의 역할에 따라 사건현장을 이 잡듯이 뒤진다.

테이블 유리, 빈 음료 캔, 컴퓨터 키보드 등등, 방 안 구석구석에 범인의 지문을 찾기 위해 감식용 분말가루를 묻힌다. 생각처럼 쉽지 않다. 10여분이 지나서야 마침내 음료 캔에서 첫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다. 보물찾기에서 보물 쪽지라도 발견한 초등학생처럼 큰 소리가 터져나온다. "범인의 지문을 찾았다." "그게 왜 범인의 지문인데?" 그렇다. 이제 겨우 범죄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의 지문을 찾은 것뿐이다.

단순히 지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지문이 나왔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특히 서류철이나 영수증 조각에서 발견되는 지문은 가짜 계약서를 이용한 사기극의 전모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천 조각, 영수증 등 사소한 물건들이 종종 미궁에 빠진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핀셋으로 증거품 봉지 안에 주워 담는다. 이후 종이로 된 것들은 다시 특수약품을 사용해 지문 검사를 실시한다. 쓰레기통에서 주은 영수증을 특수약품으로 적신 다음 다리미로 다렸더니 거짓말처럼 빨간색으로 지문이 드러났다. 영수증 속의 지문. 일단 범죄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영수증 속의 물건을 샀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단서들을 모은 후 그 조각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큰 그림을 짜맞추는 과정이 바로 추리요,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얼마나 많은 퍼즐 조각을 찾느냐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가리는 관건. 그만큼 현장조사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같은 일에 유달리 능숙한 수강생이 한 명 있었다. 추리해(59·가명)씨. 알고 보니 부산 모경찰서 간부시란다. 아니 경찰이 여기에 웬 일? 마치 고등학교 선생님이 과외학원의 학생으로 앉아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경찰 사각지대 메울 '민간조사원'

퇴직을 2년여 남겨 둔 추씨는 조만간 '민간조사업법'의 법제화와 함께 민간조사원의 활동 영역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퇴직 후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경우다. 그가 퇴직 후의 진로로 민간조사원을 택한 데는 유사한 직업적 배경이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경찰 생활을 하면서 민간조사원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란다.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 동안 민간조사원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실제 우리 사회에는 경찰 공권력이 닿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경찰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인력 운용의 문제죠. 특히 민사사건의 경우가 그러한데, 전체 사회구성원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력을 개인간의 사적인 시비를 가리는데 집중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런 틈새를 민간조사원들이 메워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비 홈스들, 세상에 발 디디다

10주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10명의 수강생들 중 일정 점수 이상의 평가를 받은 사람에 한해 민간조사원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후 시험에 합격하면 사회 구석구석에서 풀리지 않은 미제사건들을 해결하며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다. 물론 10명 모두가 홈스가 될 순 없을 테다.

굳이 명탐정이 되지 않아도 좋다.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 남은 것, 그것이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아 보여도 결국 그것이 진실이다'라는 홈스의 말은 범인을 쫓는 데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홈스를 꿈꾸는 사람들, 그들은 오늘도 사소한 일상의 진실을 찾아 돋보기를 들이댄다.

글=김종열 기자 bell10@busanilbo.com사진=정종회 기자 j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