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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한국 추리소설' 100주년 맞았다는데…

_______! 2008. 11. 16. 00:22
조선일보

[Why] '한국 추리소설' 100주년 맞았다는데…

기사입력 2008-11-15 18:29 |최종수정2008-11-15 20:58 기사원문보기

1908년 이해조의 작품‘쌍옥적’을 시작으로, 한국 추리소설은 1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사진은 13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추리·스릴러 코너에서 독자들이 책을 고르고 있는 모습. /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1908년 이해조가 쓴 '쌍옥적'이 최초의 추리소설

IMF 후 출판계 불황에 스타작가도 없어 '위기'

'때는 1900년대 초반. 달리는 경인선 열차 안에서 김 주사는 돈가방을 잃어버린다. 가방 훔친 범인은 손가(孫家) 형제. 사건은 사복형사 정순검(鄭巡檢)에게 넘어간다. 신출귀몰한 형제는 오히려 정순검에게 살인 누명을 덮어씌우고 도주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추리소설인 이해조(李海朝·1869~1927)의 '쌍옥적(雙玉笛·1908~1909)'은 피리를 잘 부는 두 형제를 범인으로 설정해 사건을 풀어간다. 이 작품은 1908년 12월 4일부터 이듬해 2월 12일까지 제국신문에 연재됐다. 조성면 인하대 교수는 "사건이 초자연적인 방식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고로 풀리고 해결의 주체가 근대적 경찰의 전신인 순검이라는 점에서 쌍옥적을 첫 추리소설로 본다"고 말했다.

쌍옥적이 탄생한 지 올해로 100년째다. 한국 추리소설은 고사(枯死) 직전의 위기라 할 수 있다. 국내 유일 추리문학 전문지인 계간 '미스터리' 박광규 편집장은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발표된 추리소설 700종 중 한국 소설은 10%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추리소설 100년의 도전은 왜 흔들리고 있을까.

'김성종 독주 체제' 양날의 칼

한국 추리문학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작가는 김내성(金來成·1909~1957)이었다. 추리적 완성도가 제대로 갖춰졌다는 점에서 김내성의 '타원형의 거울'(1935)을 한국 추리의 효시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일본 탐정소설 전문지 '프로필'에 당선된 이 소설은 일어로 된 작품이라는 결함 때문에 한국 추리소설의 시원(始原)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해방 이후 좌우대립과 분단이라는 격변기를 지나며 한국 추리소설은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 그러다 1974년 추리소설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성종이 '최후의 증인'을 내놓으면서 '김성종 시대'가 열린다.

그는'여명의 눈동자' '제5열' 등으로 1980년대 한국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올해 초 신작 '안개의 사나이'를 발표한 작가는 "내가 데뷔할 무렵만 해도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얻기 어려울 정도로 출판을 안 해줘서 문제였는데 요즘에는 작가가 없어 공급을 못해 문제"라고 말했다. 일부 평론가는 "김성종의 독주 체제는 양날의 칼이었다"고 평가한다. 김성종의 성공을 보고 추리 소설에 뛰어든 후배 작가들이 지나치게 아류작을 양산하다가 실패를 반복했다는 지적이다.

1993년 100만부 이상 팔린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과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출판되면서 추리소설의 영토는 비옥해졌다. 1990년대 초반 스포츠신문에서 추리소설을 연재해 고정 독자도 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 작가들과 영미 번역 추리소설의 비중이 비슷했다.

그러나 IMF 사태 이후 출판계 불황과 스포츠신문 연재 중단이 겹치면서 급속도로 힘을 잃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로빈 쿡의 의학스릴러 등 1990년대 들어 쏟아진 영미의 지식 스릴러 소설에 대응할 작품을 내놓지 못해 시장을 잃었다"면서 "작가들이 체계적인 공부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팩션·역사추리소설 대세

최근 시장에는 팩션과 역사추리소설이 주종을 이룬다. 아예 없는 사실을 말하는 것보다 기본 이야기 구성과 역사성 사실성이 갖춰져 있는 사료를 이용해 쓰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소설적 재미와 지적 정보를 동시에 얻을 수 있어 반응이 뜨겁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의 저자 이수광씨는 "신인 작가 7~8명은 정통 추리에 승부를 걸고, 대형 출판사에서도 장르문학에 부쩍 관심을 보여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박광규 편집장은 "대형 스타 작가가 나오기 전에는 영미 추리소설이 득세한 현 추세를 반전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추리작가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뭘까. '진시황 프로젝트'로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유광수씨는 "요즘 추리소설에 아르센 뤼팽이나 셜록 홈스가 나올 경우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지 의문"이라며 "추리문학의 장르적 관습을 따라가지 말고 이 시대 문화지형에 맞는 적절한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면 교수는 "김유정 채만식 김동인 같은 당대의 소설가도 추리소설을 썼고 이청준과 이문열도 추리소설 기법을 활용한 작품을 내놓았다"면서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을 가르는 엄숙주의와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