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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의 품에 들다-순천만

_______! 2008. 11. 21. 12:21
광주드림

갯벌의 품에 들다-순천만

기사입력 2008-11-21 08:07 기사원문보기

와온해변에서 바라본 순천만 갯벌. 멀리 솔섬이 보인다.

▶과거

“거기 암껏도 없는데 왜 가려고 하시오.”

순천 터미널에서 잡아탄 택시의 기사는 의아한 듯 물었다. 일간지에서 오려둔 작은 기사만을 나침반 삼아 찾아 갔던 10여 년 전의 순천만 여행 때의 일이다. 그 물음은 택시에서 내리자 곧 이해가 됐다. 타지에서 온 사람이 그 ‘암껏도’ 없는 곳을 왜 찾는지 의아했겠다. 탁 트인 바다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건물조차 찾아볼 수 없는, 온통 갈대밭과 차가운 바람만 가득했던 순천만…. 그래서 쓸쓸함과 고적한 느낌만을 양껏 담았더랬다.

그저 흔한 갯벌, 특별할 것도 없는 그래서 ‘관광’할 것도 없는 갯벌. 그 즈음 순천시는 갯벌을 그냥 놔두는 것이 아까웠는지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동천 하류 일대에서 하도정비와 골재채취사업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암껏도’ 없는 그 곳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국제희귀조류이자 천연기념물228호인 흑두루미의 한국내 마지막 남은 월동지. 검은머리갈매기의 세계최대 월동지, 황새 저어새 등 국제적 희귀조류의 집단서식지이자 이동중인 물새들의 국제적 중간기착지. 그리고 갯벌에 살고 있는 칠게, 망둥어, 짱뚱어. 칠면초, 갯개미취, 쑥 모양의 비쑥, 갯질경이, 나문재, 해홍나물, 퉁퉁마디 등의 염생식물….


지역민들과 국내외 환경보존단체들의 싸움이 시작됐다. 1998년 순천시는 골재채취허가를 결국 취소한다. 그리고 2006년 1월 순천만은 국내 연안습지로는 처음으로 습지관련 국제기구인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다.

여천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위치한 순천만은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순천 시내를 흐르는 동천과 이사천의 물도 순천만으로 흘러든다. 민물과 바닷물이 동시에 모여드는 곳. 

 ▲ 널배를 끌고 갯벌로 나가는 부부. 이들에게 갯벌은 삶의 터전이다.

▶현재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은 순천만은 지금 많이 다른 얼굴이다. “도대체 왜 그곳에 가려는 것이오” 같은 질문도 받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온다. 흑두루미도 사람을 끈다. 갈대와 바람 밖에 없었던 그 길은 이제 나무데크로 만든 생태 탐방로를 따라 대대포구 갈대밭을 가로질러 용산 전망대까지 편안하게 닿는 길이 됐다. 생태 전시관과 탐조대도 세워졌다. 용산 전망대에서 보는 해지는 풍경은 너무나 유명한 풍경이 됐다.

10여 전에는 보지 못했던 탐조선을 타본다. 보이진 않지만 갈대 너머 어딘가에 흑두루미가 숨어 있다. 탐조선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행여나 새들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다행히 그동안의 경험으로 새들도 탐조선을 인정한다고 했다. 문제는 작은 낚시배와 모터보트. 새롭게 등장한 것들이다.


선장의 안내가 따른다.

“70만평에 이르는 순천만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다양한 것들이 살고 있습니다. 문저리, 망둥어, 칠게가 많이 살고 흑두루미 300여 마리가 매년 시베리아에서 이곳으로 날아옵니다.”

겨울 철새들은 인근 논경지에서 낮 동안 나락이나 벌레 같은 먹이를 먹고 밤이 되면 갈대숲에서 휴식을 취한다.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지만 망원렌즈를 통하니 흑두루미가 보인다. 많다. 자태가 곱다. 매년 10월 중순 전후로 날아와 이듬해 4월 초순까지 순천만에 머물며 새끼를 기룬 후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나 같은 구경꾼 때문에 순천만에서의 겨울이 고되지 않기를….”

대대포구를 벗어나 와온 해변에서 순천만을 만난다. 물이 빠진 바다는 온통 질척한 잿빛이다. S자형 작은 물길이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부부가 널배를 타고 갯벌에 나간다. 꼬막이며 조개며 갯벌이 내어주는 것들로 삶을 지탱해온 이들이다. 갯벌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 탐조선 주위 갈대밭에 흑두루미가 숨어있다.

▶미래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지만 순천만은 앞으로도 개발 논리를 헤치고 나갈 운명이다. ‘생태’가 ‘유원지화’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숙제다. 철새들의 터전인 농경지는 식당이나 숙박시설 같은 것들에 의해 잠식되어 갈 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것들이 들어서고 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눈 앞의 손해(?)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각종 개발로 순천만의 외연이 좁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목포~광양간 고속도로 공사에요. 소음이나 불빛 등으로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완충지역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순천만 지키기에 지속적으로 관여해 온 전남 동부지역사회연구소 김영대 이사의 말이다. 많은 것들을 품고 있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10년 전 처럼, 비움의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글=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여행쪽지: 순천만에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대대포구 쪽에선 생태전시관과 정비된 탐방로가 마련돼 있고 탐조선을 탈 수 있다. 와온 해변이나 화포에서는 또 다른 순천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10월 중순 쯤 순천만으로 와 다시 이듬해 4월 시베리아로 돌아가는 흑두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