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버린 광주의 명소' 시리즈 (1) 경양방죽 부터 시작해 볼까요?
(*여기 나온 사진 자료는 광주시청 홈페이지의 광주100년사라는 항목에 잘 나와있습니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2층의 광주변천사 사진전시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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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경양방죽이 뭐예요?
2. 경양방죽은 지금 어디에 있었나요?
3. 경양방죽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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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양방죽이 뭐예요?
[경양방죽에서 뱃놀이하는 모습-멀리 신양파크호텔 앞 전망대가는 길이 보이시죠? 1940년대 사진]
경양방죽은 조선세종 때 광주에 만들어져 500년을 이어온 광주에 만든 인공호수입니다.
광주고등학교~계림초등학교 앞쪽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펼펴진 아름다운 호수였습니다.
면적 46000평, 수심 10m의 논물대기용으로 만들어져 나중엔 유원지로까지 발전되었습니다.
2~3백년 거목들이 우거지고, 팽나무, 왕버들나무, 수양버들나무가 즐비해 광주시민의 휴식과 낭만공간이었습니다.
1961년 광주여고 졸업앨범 중?
[1959년에 촬영된 경양방죽의 모습. 가운데 조그만 섬이 2개 있었답니다.]
[경양방죽에서 겨울에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입니다. 1940년대 초반 사진]
[물이 빠진 경양방죽. 물이 빠지면 지천에 깔린 팔뚝만한 잉어를 잡느라 광주시민들이 난리가 났답니다.]
[경양방죽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어느 가족의 모습]
2. 경양방죽은 지금 어디에 있었나요?
지금 광주역과 계림초등학교 사이가 옛날 경양방죽이 있던 자리입니다. 표시한 원보다 더 큽니다. 아마도 광주역까지 닿을 듯.
경양방죽을 매우고 그 자리에 광주시청을 세웠는데 그 시청마저 지금은 상무지구로 옮겨가고 그 자리엔 홈플러스가 생겼습니다.
3. 경양방죽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없어졌어요?
1440년, 세종 22년 광주목사 김방의 주도로 3년에 걸쳐 농수공급을 위한 호남최대 인공호수 경양방죽 만듬
1940년, 일제의 일본인 집단거주지 조성 명분으로 2/3 매립
(전남지사 야지마의 일본건국기념사업 일환으로 계림초등학교 뒷산인 경호대를 헐어 그 토사로 매립)
1950년대, 방죽에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로 저수지 기능 상실
1966년, 경양방죽이 수원지 기능이 약화되고 오염 및 도시확장을 이유로 매립공사 시작
(금남로 확장 등 도시발전기금을 중앙정부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신안동 태봉산을 헐어 그 토석을 일부 판매하고 일부는 경양방죽을 매우는데 활용하여
지금의 계림동 일대의 시가지 조성으로 확보된 자금으로 금남로 개발)
1968년, 매립 완료로 지도상에서 경양방죽은 완전히 사라짐
경양방죽은 두 차례에 걸친 매립으로 그 모양과 위치마저 가늠하기 힘든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경양방죽을 기억하는 많은 광주시민들은 아름다운 광주의 명소를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 했고,
지금은 아쉬움과 그리움만을 남긴채 전설인양 희미하게 기억되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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