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지인에게서 아주 재미있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제가 블러그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가끔 제 블러그에서 글도 읽어보았나 봅니다. 그분의 부탁은 문화상품권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궁금하니 알려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또 그 설명을 블러그에 올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문화상품권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런 부탁을 받고 보니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약간 찔렸습니다. 내가 그동안 옛 그림 전문가 행세를 했나 싶기도 했습니다. 제가 블러그에 소개한 내용들은 많은 전문가들이 책과 여러 자료들에서 소개한 내용을 정리하고 제 생각을 가미하여 올린 것뿐인데 마치 제가 전문가인처럼 오해 하시는 건 아닌가 싶어서 입니다. 어째든 문화상품권까지 받았으니 꼼짝없이 숙제(?)를 할 수 밖에 없네요.
한번도 관심있게 본적이 없었는데 막상 상품권을 보니 즉시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도 저처럼 바로 알 수 있는 그림이라서 굳이 설명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부탁하신 분처럼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간단히 설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흉배(胸背)입니다. 사실 그림이 아니라 천에다 수를 놓았던 수공예품입니다.
흉배란 조선시대에 문무신하들의 품계와 서열을 표시하기 위해 관복 앞에 붙였던 것으로 사각형의 수 장식품으로 관복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기 했습니다. 한국학 지식(www,koreadb.net)에 따르면 흉배가 처음 착안된 시기는 1446년 세종28년으로써 관복의 색깔만으로는 상하 구분이 어렵다는 단점을 극복하고자 제안되었지만 당시 정승인 그 후 1454년(단종 2)에 문관 1품은 공작, 2품은 운안(구름과 기러기), 3품은 백한(흰한새) 무관 1,2품은 호표(호랑이와 표범), 3품은 웅표(곰과 표범)으로 정해졌습니다. 그 뒤로 연산군 때 사슴·돼지·거위·기러기 문양의 흉배가 확립되어 1~9품 모두 흉배를 착용하게 되었고 영조 때 이르러 당상·당하 제도가 문란해져서 신분상징이 혼란해지자 당상문관은 운학흉배(雲鶴胸背), 당하문관은 백학흉배를 사용하게 했습니다.
문관용 쌍학흉배 흉배제도가 계속 변경된 이유는 관직의 양적인 증가, 관등의 복잡성으로 인해 이를 정비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1871년(고종 8) 문관 당상관은 쌍학(雙鶴), 문관 당하관은 단학, 무관 당상관은 쌍호(雙虎), 무관 당하관은 단호로 변경했습니다. 따라서 문화상품권의 흉배는 쌍호로써 19세기 당상관 이상의 무관이 사용한 흉배로 지금으로 따지면 아마 최소한 군단장 급(중장) 이상의 관헌들이 사용했던 고위직 무관들의 상징인 것입니다.
무관용 쌍호 흉배
흉배가 문무관의 구별과 상하를 구분하는 것 뿐 아니라 특정 직책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대사헌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상상의 동물인 해치 흉배를, 도통사 즉 무위영을 지휘했던 장수는 사자 흉배를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임금을 비롯한 왕실 인물들도 흉배를 사용했는데 왕실이 사용한 흉배는 특별히 보(補)라 불렀습니다. 보는 특별히 신하들의 사각형 횽배와는 달리 둥글게 만들어 졌는데 이는 아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났다’ 라는 천원사상에 따라 왕실은 만백성의 하늘이기에 하늘을 상징하는 동그란 모양으로 제작한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왕의 보, 1850 왕은 오조용(발톱이 다섯개인 용)보, 왕비는 오조용보나 봉황 보, 왕세자는 사조용, 왕세손은 삼조용 보를 사용하였습니다. 또 대군은 기린을, 공주는 다산을 의미하는 7마리 작은 봉황이 수놓아진 보를 사용했습니다.
대군 흉배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흥선대원군 기린 흉배. 기린은 용, 거북, 봉황과 더불어 사령수에 속하며 수컷을 기린, 암컷을 린이라 한다 보와 흉배를 보면 얼마나 정교한지 모릅니다. 그만큼 많은 정성을 들여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정성이 담긴 흉배를 가슴에 달고 조정에 서면 얼마나 많은 책임감을 느꼈을까요? 그런 관리들의 무한한 책임감이 조선을 500년이나 지탱해온 힘이 아닐까 합니다. 존엄과 품위를 가슴에 아로새긴 흉배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존엄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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