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신항만]용원 안골 풍경
기사입력 2005-03-31 12:12 최종수정2005-03-3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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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후를 맞았다는 망산도가 그 바다에 있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바위 군집들은 그때나 다름없지만 망산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주변이 매립되면서 땅과 이어지고,확 트인 바다 대신 좁다란 물길만 남았다.
바다도 땅도 아닌 갯벌에 '박혀있던' 배들은 버려진 풍경의 일부였다.
바다뿐 아니다.
뭍에 사는 사람들의 풍경도 스산했다.
신항만 공사로 가덕도와 거제도를 오가던 여객선 도선장 마저 녹산과 안골로 옮기고 난 뒤 선창가의 흥청거림은 사그라졌다.
보리새우(오도리)니 조개니 옛날엔 용원 앞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로 넘쳐났다지만,지금은 죄다 다른 곳에서 가져와야 한다.
온갖 해산물을 파는 좌판이 그 방파제 위에 들어섰다.
"1시간을 지켜 보소. 손님이 있는가."
옛날엔 오도리만 팔아도 하루 장사 너끈했다는 한 아낙의 낡은 도마는 세월의 그리움으로 얼룩덜룩했다.
제방을 높이 쌓으면서 용원 땅은 바다보다 낮아졌다.
그 낮아진 틈에 태풍 매미가 덮쳤다.
천장까지 차올랐던 바다는 횟집을 집어 삼킨 뒤 토해냈다.
태풍에 할퀸 너덜너덜한 벽체가 바람에 부딪히며 끙끙댈 뿐 횟집은 텅 비어있다.
"복구 비용도 없고 장사가 된다는 보장도 없어 그냥 방치하는기라." 지나가던 주민의 말에 가시가 돋쳐 있다.
'이순신의 바다' 안골만으로 갔다.
조선 수군의 배를 대던 안골포 굴강이 있는 곳이다.
아직은 한적한 어촌 풍경이 남아있지만 조만간 주머니 모양의 안골만이 매립되면,어촌 풍경도 조선 수군의 수런거림도 찾아보기 어려울 테다.
안골포의 어촌 풍경은 바다 너머 높은 언덕에 도열한 새안골의 아파트 밀집촌과 어색하게 만나고 있다.
새안골로 올라갔다.
10여년전 녹산국가공단 토취장으로 사용하느라 산 하나를 완전히 덜어내고 조성된 새 동네다.
집 서너채 만 드문드문 있던 송곡마을 산이다.
"산 하나 없애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지. 그 산이 없어지면서 주렁주렁 달려 있던 전설도 함께 사라졌고…." 류춘우(60) 웅동중 교장의 낮은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식당(용원낙지)을 하는 허성기(48) 씨도 아련한 기억을 되새김질 하는 사람이다.
식당 벽엔 가로 2m 세로 1m20㎝의 빛바랜 사진을 걸어놓았다.
17년전 용원 일대 사진. 지금은 볼 수 없는 산과 바다,논밭의 풍경엔 그리움과 아쉬움이 켜켜이 쌓여있다.
나무하러 오르내리고 소풍가던 산길은 사진 속에만 남아있다.
"개발로 인해 조류가 바뀌는 바람에 지금은 조개를 볼 수도 없지만, 20년 전에는 하루 2~3시간 조개 잡으면 10만원은 거뜬히 벌었지요." 식당 손님(44)이 "그때 내 한달 월급이 14만원이었다"며 거든다.
호시절이었다.
그산을 허물고 5년 전부터 현대,풍림,부영 등등 5천439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오는 11월 일신님,코아루 아파트까지 분양하면 7천세대가 넘는다고 한다.
그곳에 5일장이 열려 시끌벅적하다.
4일·9일장이다.
과일,생선,채소는 물론 여성 속옷에 학용품까지 없는 게 없다.
순대 파는 아낙이 찬거리를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할아버지의 손을 이끈다.
"할아버지,여기 앉으이소."
채소 팔고 과일 팔던 아낙 둘도 순대에 소주 한 병을 가볍게 비우고,꼬마 둘과 함께 장을 보러온 젊은 부부도 순대 한 접시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했다.
선창가에선 보지 못한 흥청거림이다.
생선 파는 김영철(55) 씨가 갑자기 서류를 주섬주섬 꺼낸다.
"80명의 노점상들이 420평의 개인땅에서 세를 얻어 장사하는데 시청서 과태료를 내라 했다"며 하소연이다.
시장 만들어달라는 주민연대 서명도 보여줄 참이다.
아파트만 들어설 뿐 변변한 시장이 없는 틈을 메우는 5일장은 현재진행형인 새 도시의 단면이다.
새로 생긴 건 아파트와 5일장뿐만 아니다.
러브홀릭,핑크,물보라 등등 야릇한 이름을 가진 6~7층의 모텔 10여곳이 웅동 2동 사무소와 중심가인 농협 사이에 늘어서 있다.
한창 공사 중인 8층 건물 둘도 모텔이다.
2~3개월 전엔 안마시술소도 생겼다.
피트니스센터,찜질방,영어학원 같은 도시 냄새 짙은 상가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여태 상업지구의 30%만 건물이 올라갔다니,듬성듬성 비어있는 나대지는 더 많은 개발의 예고편이다.
그런데 이런 풍경은 토박이들의 삶과는 무관해 보인다.
지난 96년 4천153명이던 웅동 2동의 주민이 지난해 말에는 2만2천334명으로 늘었다 하니.
해가 붉은 무리를 이끌고 바다로 빠지면서 어둠이 몰려왔다.
화려한 네온사인을 밝힌 모텔은 짙은 화장으로 손님을 끌고,5일장 상인들은 전을 접거나 가스등을 켜거나 했다.
얻은 것과 잃은 것.
얻은 건 땅만이 아니었고,잃은 건 바다만이 아니었다.
쇠락한 어촌의 비린내와 욕정에 굶주린 도시의 분냄새가 뒤섞인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쇠락한 어촌의 비린내와 욕정에 굶주린 도시의 분냄새가 뒤섞인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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