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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설화에 한림의 한수리마을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친 풍랑을 만나 이마에 커다란 눈이 하나 달린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흘러들어가는 순간 영등이 어부들을 구해주면서 "앞으로 매년 2월1일에는 나를 기억하라"고 한 뒤 영등은 어부들을 살려주었다는 사실이 발각돼 외눈박이 거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후 영등은 고기잡이 어부들이나 해녀들에게는 안전을 지켜주고 해산물의 풍요를 가져오는 신으로 불려졌고, 제주 사람들은 바다의 재앙을 막아준 영등의 은혜를 생각하여 해마다 음력2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 영등굿을 지내기 시작했다. 제주에서는 영등굿(국가무형문화제 71호 제주칠머리당굿)을 하는 동안 결혼식을 하지 않고, 제사나 장례가 있으면 영등의 몫으로 밥 한그릇을 마련해야 탈이 없다고 믿고 있다. 영등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이 부린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 가운데 우사였다. 이것이 2월에 결혼하지 않는 유례가 됐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 2월에 결혼을 못할 학문적 근거는 없는 셈이다.
역학의 기원이 우리 조상으로부터 라는 설도 있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주역에 의한 음양(陰陽)의 학설이 먼저 존재했고, 춘추전국시대에 비로소 태양계의 오행성으로 운명을 판단하는 오행(五行) 학설이 유포되기 시작했다. 명리학이 역학(易學)의 여러 분야 중의 하나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는 중국의 당(唐)나라 이후로 보인다. 당시까지 연주(年柱:태어난 해)를 위주로 사람의 운명을 분석하던 것을 이허중이 일주(日柱:태어난 날)를 위주로 하여 보는 법을 만들어냄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후 송(宋)나라에 이르러 서자평이 이허중의 설을 근간으로 명리학을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시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명리학이 하나의 고급학문으로서 그 위상을 자리잡아 가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식학과로서 개설되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역술인협회와 한국역리학회에서는 산하에 동양철학 전문대 건립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도 일반인 및 일부 무속인들과 심지어 역학인들 중에서도 학술적`과학적 근거가 없는 허황한 미신 아닌 미신에 목메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생활역학 중에서도 우리가 잘못 알고있는 미신은 과감히 버려야 하겠다. 053)958-7838.
지인(지인역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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