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스크랩] 한국의 군사문화재 - 편전(片箭)

_______! 2008. 10. 29. 15:00


“임진년(1592) 6월11일 왜적이 조총을 가지고 대동강에 이르러 평양성을 향해 총을 쏘았다. 총소리가 매우 크고 탄환이 강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왔고 먼 것은 대동관까지 거의 1000보(步)나 날아왔다.(중략) 나(유성룡)는 군관 강사익으로 하여금 방패 안에서 편전(片箭)을 쏘게 하니 화살이 강 건너 왜적이 있는 모래벌판 위까지 날아갔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의 핵심 인물이었던 유성룡이 ‘징비록’에 남긴 편전에 관한 기록이다.

‘징비록’에 따르면 조선군 군관 강사익이 평양성 연광정에서 발사한 편전이 대동강 건너편에 있는 왜군에게까지 도달했다. 현재의 평양 지도를 보면 연광정 정면의 대동강 강폭은 500m 정도다. 결국 편전이 약 500m를 날아간 셈이다. 일반적인 각궁의 최대 사거리가 200~300m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편전의 사거리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편전은 화살의 종류이기도 하고 동시에 특수한 활 사격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편전은 길이가 20~4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화살이기 때문에 ‘아기살’이라고도 부른다. 편전은 단순히 활로만 쏘는 것이 아니라 ‘통아’(筒兒)라고 불리는 절반으로 쪼개진 가는 대나무통을 추가로 이용해서 사격하는 것이 특징이다.

편전의 최대 장점은 일반 활의 두 배가 넘는 사거리였다. 하지만 상대방이 편전 화살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었다. 편전은 화살 길이가 짧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적은 아군이 화살을 발사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격당했다. 일반적인 활은 표적에 도달할 때쯤이면 화살 속도가 줄어들어 동작이 재빠른 사람이라면 화살을 피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편전만은 속도와 작은 크기 때문에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당연히 편전은 여진족이나 왜구들이 특히 두려워한 무기였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2년의 기록을 보면 “여진족과 교전할 때 처음에는 장전(일반적인 화살)을 쏘자 화살을 피하며 날아간 화살을 주워 쏘기도 했지만 아군(조선군)이 편전을 쏘자 피할 수 없어 두려워했다”는 구절이 남아 있다.

중국에서는 일명 ‘고려전’(高麗箭)이라고 부를 만큼 편전은 한민족 고유의 독특한 무기이자 활쏘기 방식이었다. 중국의 창, 일본의 칼과 함께 조선의 편전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무기로 손꼽히기도 했다. 조선 세종 무렵에는 여진족에게 편전 사격 기술이 유출될 것을 염려해 국경인 함경도 지역에서 편전 연습을 금지한 적도 있다.

실제로 활과 화살, 통아를 동시에 쥐고 편전을 사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는 정확한 편전 사격 방법은 전승이 끊겨 전해 오지 않는다. 현재 국궁인들이 편전 사격법 복원을 시도하고 있으나 복원 방식이 5~6가지로 나눠질 정도로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라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10. 6 >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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