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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군사문화재 - 예궁(禮弓)

_______! 2008. 10. 29. 15:01


예궁(禮弓)은 실제 전쟁이 아니라 특정한 의식에 사용되던 활이다. 조선 시대에는 궁중연사(宮中燕射)와 반궁대사례(泮宮大射禮) 같은 특수한 활쏘기 의식이 개최됐다. 이때 사용하던 활이 바로 예궁이다.

궁중연사는 궁궐 안에서 임금과 신하가 같이 활을 쏘는 행사다. 궁중에서 열리는 행사인 만큼 왕과 신하의 움직임이나 동작이 세밀하게 사전에 규정돼 있었으며 과녁의 형태도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활쏘기 중간에 주왕재지장(奏王在之章) 같은 아악 연주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활 쏘기와는 격이 다른 일종의 장중한 의식이었던 것이다.

반궁대사례는 활쏘기 의식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행사다. 반궁은 유생(儒生)들이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장소인 성균관을 의미한다. 국왕이 성균관에 나아가 유생들을 격려하고 활을 쏘는 것이 바로 반궁대사례다. 궁중연사와 달리 흔하게 개최되는 행사는 아니어서 600여 년의 조선 왕조 역사 중에 여섯 번 정도만 개최됐을 뿐이다.

규모나 참석자의 수준은 달랐지만 지방의 각 고을에서도 반궁대사례와 유사한 행사가 개최됐는데 이를 향사의(鄕射儀)라고 한다. 향사의에서 사용하던 활도 예궁이었다. 굳이 궁궐이나 성균관에서 이런 활쏘기 행사를 개최한 이유는 유학에서도 활쏘기를 매우 중시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공자는 ‘어진 것은 활 쏘기와 같다’(仁者如射)고 말한 적이 있다. 유교의 핵심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인 ‘서경’(書經)에는 “나쁘게 행동하고 올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활쏘기로써 밝힌다”는 구절도 나온다. 역시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를 보면 “자주 행하여 덕행을 베푸는 수단으로 활쏘기 만한 것이 없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기본적인 교양으로 흔히 육예(六藝)를 익혀야 했는데 활쏘기도 육예 중 하나로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정조(正祖)는 규장각에 소속된 문신들을 활터로 데리고 가서 강제로 활쏘기를 가르친 사례도 있다.

다산 정약용도 그때 활쏘기를 배워 이후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선비들이 활쏘기를 배울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활쏘기는 문무를 초월해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익혀야 할 기본 교양으로 간주됐던 것이다.

이런 의식 행사에 사용된 예궁은 우리나라 전통 활 중에서 가장 큰 대형 활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재료의 구성이나 제작 방식 자체는 각궁과 유사했지만 예궁은 아주 큰 활이라는 점이 달랐다.

무과시험에 사용된 정량궁도 대형 활이었지만 예궁은 정량궁보다도더 컸다. 각궁이 보통 2.5척(尺) 내외, 정량궁이 5.5척 정도였는데 예궁은 6척에 달했다. 길이가 180cm가 넘었던 것이다.

예궁은 실물 유물이 흔치 않다. 창덕궁에서 전승돼 오다가 현재 육군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예궁(사진) 1점만이 확인된 유일한 유물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9. 1 >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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