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자료

[스크랩] 한국의 군사문화재 - 목궁(木弓)과 죽궁(竹弓)

_______! 2008. 10. 29. 15:00


조선 시대의 대표적 활인 각궁(角弓)은 성능이 아주 좋지만 중요한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째, 각궁이 매우 비싼 무기였다는 사실이다. 동남아 등에서 수입한 물소뿔로 만드는 흑각궁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국산 쇠뿔로 만드는 백각궁도 일반 병사들에게 지급할 만큼 대량으로 제조할 수 없었다. 각궁은 직업군인이나 장수들 혹은 국경 지역에 근무하는 일부 병사들만 보유했을 뿐 평범한 일반 병사들이 사용할 만한 무기가 아니었다.

특히 18세기 이후에는 중국에서의 물소뿔 수입량이 격감했기 때문에 각궁을 제조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조선 왕조 실록’ 숙종 45년 1월조의 기록을 보면 중앙군 중에서 핵심 부대인 훈련도감의 대장(大將)이 “근래에 각궁은 종자가 멸절돼 각 군문(軍門)의 활을 만들 수 없다”고 보고한 내용이 남아 있을 정도다.

각궁은 습기가 높은 여름철에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또 다른 약점이었다. 각궁은 뿔·힘줄·나무 등 성질이 전혀 다른 재료들을 결합하기 위해 민어부레풀 같은 아교와 유사한 천연 접착제를 사용했다.

때문에 온도·습도가 높아지는 여름철에는 접착체가 녹아내리고 활시위가 늘어졌기 때문에 각궁은 쉽게 부서져 버렸다. 여름철이 아니라도 비가 올 때는 비슷한 이유로 각궁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연히 각궁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하면서도 여름철에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활을 제작·보급하는 것은 조선 왕조의 주된 관심사였다.

각궁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한 활은 기본적으로 목궁(木弓·사진)류의 활이었다. 목궁은 뿔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로만 만든 활을 말한다. 탄력이 떨어져 활 자체의 기본적인 성능은 각궁만 못했지만 저렴하고 여름철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목궁의 장점이다.

목궁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떡갈나무로 만든 ‘경궁’과 뽕나무·광대싸리나무로 만든 ‘호궁’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회나무로 만든 ‘회목궁’도 존재했다.

조선 시대 군대에서 대량으로 사용한 활 중에서 교자궁(交子弓)도 목궁의 일종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왕조 실록’ 숙종 34년의 기록을 보면 “각궁은 습기를 만나면 상해 부러지니 교자궁을 사용하자”는 기록이 나온다. 또 ‘만기요람’이나 조선 시대 각 지방지를 보면 각 군영이나 병영에서 보유하는 활로 각궁 다음으로 교자궁이 가장 빈번히 등장한다.

각궁을 대신해서 대나무로 만든 죽궁(竹弓)을 사용하기도 했다. 죽궁은 일명 ‘벙테기 활’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군대가 아닌 민간에서도 사냥용으로 많이 사용했다.

중종 무렵의 병조판서였던 고형산(高荊山)이 “각궁은 비가 오면 쉽게 파손되나 죽궁은 비를 맞더라도 파손되지 않는다”고 말했을 만큼 죽궁은 습기에 대한 저항력이 높았다.

현대 군대에서도 무기 체계는 ‘하이-로 믹스’(Hi-Low Mix) 개념에 따라 구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고성능의 비싼 무기와 성능이 떨어져도 저렴한 무기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보유한다는 뜻이다. 조선군의 각궁과 목궁·죽궁도 일종의 하이-로 믹스 개념에 따른 무기 체계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재규의 철학사전
글쓴이 : 구름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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