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hy?의 우리 땅 우리 사람] 이 祕境이 2년 뒤면 물에 잠긴다니
경기도 포천에 있는‘비둘기낭’은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은밀한 공간이다. 동굴 천장은 기기묘묘한 돌조각이 가득 붙어 있고, 바깥쪽 낭떠러지 아래에는 잔설 틈으로 푸른 물이 고여 있다. / 박종인 기자 |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상수원 보호구역', 출입금지(出入禁止)를 어기면 벌금을 먹인다는 경고다. 녹색 페인트 칠해진 철망문이 낭떠러지 입구를 가로막고 땅바닥에는 철조망이 쓰러져 있었다.
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오다가 세찬 물소리가 들리는 지점이다.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대회산리, 이 한탄강 지류를 사람들은 '비둘기낭'이라 부른다. '비둘기가 떼로 살았던 낭떠러지'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른쪽은 잔설 덮인 논, 왼쪽은 울창한 숲인데 틀림없이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저 물소리 뒤로 기이한 경치가 숨어 있다고 했다. 그런 경치가 있으리라고 외지인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30만년 전 대회산리는 화산지대였다. 마그마가 분출하고 지표는 요동쳤다. 마그마가 굳어 용암이 되고 식은 용암이 깨지면서 육각형 결정이 생겼다. 주상절리(柱狀節理)다. 비둘기낭은 평지가 아래로 푹 꺼지면서 생겨난 분지다.
용암이 평지 아래 30m가량 꺼져 내리고 강은 폭포가 됐다. 한쪽 벽은 천장이 무너져 동굴이 됐다. 흘러내린 물은 한탄강으로 흘러간다. '풍경'하면 송림(松林)과 화강암에 익숙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비둘기낭 풍경은 낯설다.
"재수가 좋수다." 주민 한 명이 말했다. 지난주까지 입구를 막았던 철조망이 사라져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물소리의 실체가 보인다. 나목(裸木) 가지들 사이로 푸른 연못과 동굴 하나가 있다.
허옇게 마른 폭포 아래 못은 푸르다. 오른편으로는 작은 협곡이 한탄강을 항해 열려 있다. 동굴 입구에는 낙숫물이 얼음기둥을 만들어놓았다. 동굴에 들어가 뒤를 돌아보니―. 세상이 온통 직선과 도형과 색채다.
입체파 화가 작품처럼 만물들이 뾰족뾰족한 다면체다. 무늬도 현란한 천장은, 뭉툭하고 소박한 여느 한국 동굴이 아니다. 은폐된 공간에 별천지가 있다 보니 동굴 벽면에는 무속인들이 다녀간 치성(致誠)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360도 돌아봐도 이런 기이한 곳은 보지 못했다. 산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농로 옆 개울가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TV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인공 천명공주가 비둘기낭에서 독화살을 맞고 죽었다.
드라마 '추노'에서는 추락한 영웅 송태하가 노비 김혜원을 여기에서 치료했다. 모두 시대에 거스르는 이들의 비극을 그렸으니, 비둘기낭에 딱 들어맞는 장면이었다. 홍보를 노렸던 마을사람들 의도는 50%만 적중했다.
몰려온 사람들은 '상수원 보호구역' 플래카드를 뻔히 보면서 삼겹살 구워 먹고 막걸리 페트병과 비닐봉지를 주상절리 틈틈에 박아놓고 죄의식 없이 도주했다. 비둘기낭 입구에는 철문과 철조망이 생겨났다.
출입금지 조치는 2010년 6월에 해제된다. 이유가 있다. 2012년이 되면 금지할 필요가 없게 된다. 현재 진행 중인 한탄강댐이 완공되면 비둘기낭은 수몰된다. 출입 금지가 아니라 출입 불능이다. 수해(水害) 대책이라는 합리적인 이유로 댐이 건설되고 있지만, 30만년 동안 평화로웠던 비둘기낭은 대책이 없다. 주민 박순옥(32)씨는 "댐이 들어서도 수위 조절에 따라 비둘기낭이 살아남을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글·사진=박종인 기자 se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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